우리 역사는 '동양학'에서 벗어나 '학문'과 '문학'의 그 정통성을 회복할 기회가 있었다. 해방이 되었다. 경성제대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나라를 되찾았으니 당연히 잘못된 것을 청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제가 우리 지식인들을 세뇌하던 식민지학문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할 천재일우의 찬스 아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을까? 전통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오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통의 '국립대학', 성균관이 있었다. 그 성균관의 전통 학문에 서양학의 장점을 가미한 제3의 국립대학을 출범시켰다면 어땠을까. 아니, 최소한 경성제대를 흡수 확대하여 출발한 국립서울대학이 '인문학'의 올바른 방향성을 채택하기만 했어도 '동양학'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었어도 우리에게는 자주권이 없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이른바 '국대안(국립서울대학 설립 안)'을 발표한다. 경성제대의 법문학부 · 의학부 · 이공학부에 더하여 수도권 일대의 9개 전문학교를 통폐합하고 국립서울대학을 출범시킨다. 그리고는 초대 총장으로 해리 엔스테드 Harry B. Ansted 해군 대위를 임명한다. 미국의 해군 대위가 우리나라 최고 고등교육기관의 첫 번째 수장이라니, 이 얼마나 치욕적인가! 미군정이 우리 민족을 어떤 수준으로 인지했는지 알려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경성제대와 서울대의 로고. 서울대 초대 총장 엔스테드 미군 대위.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통폐합 대상 학교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미군정의 행위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친일 교수 배격, 경찰의 학원 간섭 금지, 집회 허가제 폐지, 행정권을 조선인에게 이양할 것, 미국인 총장을 한국인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며 무려 2년 동안이나 등록 거부나 동맹 휴학 등의 방법으로 거세게 저항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교수 380명 해직과 학생 4,956명의 퇴학이었다. 남한 학계는 활동 불능의 빈사 상태에 빠졌다. 우리의 정체성과 고유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놓친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경성제대의 인적 자원과 학맥을 그대로 이어받은 학교가 아니다. 경성제대 포함 10개 학교를 통폐합하여 탄생한 학교인 만큼, '일본 제국의 엘리트'를 양성하던 경성제대와는 다른 성격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서울대의 법학대학과 문리과대학만큼은 예외다. 경성제대의 법문학부의 체제와 학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동양학의 함정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증거가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 아닌가! 끝나지 않은 식민지학문 100년이라는 말은 그래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 동양학이 빚어낸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다.
동양학 엑소더스의 길을 떠나야 한다. 동양학에서 탈출하여 '학문'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