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2016년부터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대학 인문 역량 강화사업', 이른바 'core 사업'이라는 것을 추진 중이다. 대학 인문학 육성을 위해 매년 6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공학계열에서는 수십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되고, 인문학 계열에서는 수만 명의 인력이 남아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교육부는 몇 가지 인문역량 강화 방안의 모델을 제시한다. ‘글로벌 지역학’ 모델은 인문학(문학·사학·철학 등)과 사회과학(정치·경제·경영 등)을 융합하여 해외 언어권역별로 지역전문가를 양성하자는 것. ‘인문기반 융합’ 모델은 인문대학이 주도해 다른 학문과 융합 교육과정을 만들라는 이야기... 등등.
한 마디로 인문학 살리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무색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인문학만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니까 '끼워 팔기'를 하자는 이야기 아닌가. 이른바 기초 학문이니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는 그 취지는 가상하지만 처음부터 방향이 어긋나 있다. 공자의 '정명正名' 정신대로 '이름名'부터 바로잡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으로 서양의 '인문학 살리기'를 할 게 아니라, 동아시아 '학문 살리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과 대만의 종합대학에는 '인문대학'이란 게 없다. 이에 해당하는 단과대학은 '문학원文學院'이라고 부른다. 중국어로 '단과대학'은 '학원, xuéyuàn 學院'이므로, 결국 중국의 대학에서는 '인문人文'을 '문文'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물론 '인문'이라는 단어도 종종 사용하긴 하지만, 단과대학 명칭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무엇을 시사할까? 자신들이 기본으로 추구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학문'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서양의 '인문학'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 아닐까?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문대학'이라는 명칭이 관행처럼 굳어져서 바꾸기가 힘들까? 하지만 '인문대학'이라는 명칭이 유행하기 전에는 과거 우리나라도 한때 '문과대학'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어색하다면, 좋다. '이름名'을 바꾸기 어렵다면 '실제實'라도 바꿔야 한다. 그 교육 내용을 전통 '학문'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좌뇌 중심 교육에서 우뇌 중심 교육으로. 그게 핵심이다.
'인문학'은 딱딱하다. 좌뇌 중심의 이론과 분석, 암기를 통한 지식 습득 교육을 위주로 한다. 이걸 우뇌 중심의 보드라운 감성과 실천 교육 쪽으로 내용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공자가 지적했듯 '이름'과 '실제'가 다르면 결국 어디서든 문제가 터지게 마련이니, 적어도 대학에서는 '문과대학'이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학문' 중심의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학생들이 배우는 공부와 현실이 괴리되지 않을 수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 인문학이 빚어낸 대한민국의 위기다.
인문학 엑소더스의 길을 떠나야 한다. 인문학에서 탈출하여 우리 고유의 '학문'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 표제 사진 ]
◎ 국립대만대학의 문학원. 전신은 대북臺北제국대학이지만, 동아시아 '학문'을 기반으로 서구 '인문학'을 연구 교육하고 있다. 인문학 엑소더스에 성공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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