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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ug 05. 2023

01. 저물면서 빛나는 리즈 시절

[1부] 공자의 리즈 시절

“선생님은 언제가 리즈 시절이었어요?”


언젠가 학생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리즈 시절? 가장 잘 나가던 시절,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는 뜻이란다. 어느 영국 축구 선수가 리즈 유나이티드 소속 시절에 가장 잘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라나? 영국 사람도 모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었다. 이런 어휘를 사용하면 젊어지려나?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어요." 어른들은 20대 청춘이 너무 부럽다고 말하는데 정작 대학생들은 대부분 너무 힘들어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런 말 들으면 약 올리는 것 같단다. 20대가 정말로 인생에서 제일 좋은 리즈 시절이라면,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앞으로는 무슨 희망을 가지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한숨을 쉰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진 모양이다.


글쎄, 나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을까? 지난 날을 돌이켜보았다. 길을 걸어온 것 같았다. 길에도 단계가 있었다. 외로움이 그리움을 업고 가던 1단계. 외로움도 잊고 그리움만 더불어 걸어가던 2단계. 아무 생각도 없이 터벅터벅,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3단계. 글쎄, 나의 리즈 시절은 그 길 어디쯤이었을까? 이 길의 목적지는 또 어디일까?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걸까?


가을이 익어가는 어느 날 늦은 오후. 단풍으로 곱게 물든 모악산 금산사 산길에서 여든이 넘은 노부부를 만났다.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여쭈어보았다. 두 분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70대라고 대답하신다. 모든 것에서 다 내려놓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신다. 금산사 가을보다 더 고우신 두 분이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시 구절이 생각났다.


석양이여, 한없이 좋구나!                       夕陽無限好!

이제 곧 어둑어둑 황혼이 아쉬울 뿐.          只是近黃昏.


순식간에 어둠으로 변하는 것이 아쉬울 뿐, 하루의 리즈 시절은 황혼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백세 시대의 상징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65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황금기, 나의 리즈 시절이 이제부터일 수도 있다는 말일까?


황혼이라…. 찾았다, 나의 목적지!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의 시어詩語처럼 저물면서 빛나고 싶다.   



황혼은 하루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이니, 대자연처럼 살면 당연히 노년기가 리즈 시절이다.



학생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정말요?" 희망을 찾은 걸까?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하지만... "대자연처럼 살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있다.


우리 사회는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10대 20대는 진학하느라 군대 가느라 취직하느라 뼈골 빠져 연애도 제대로 못했는데, 서른 되니 기가 막혀, 벌써 잔치가 끝났단다. 30대가 되면 청춘은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데 영혼을 바쳐야 생존이 가능한 사회이며, 40대만 되어도 떠나보낸 인생의 봄이 하염없이 아쉽고 가슴 아픈 감상주의 사회다. 5 · 60대가 되면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노라 발버둥 치며 '까닭 없이(?)' 분노하고, 그 시절 마저 지나가면 공짜 지하철 타고 산지사방 안하무인, 제멋대로 행동한다. 삶의 의미와 가치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회랄까. 이래서야 어떻게 저물면서 빛나는 리즈 시절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야한다고 말해주어야 하는 걸까.


                                                                                        < 계속 >




[ 표제 사진 ]

◎ 인천의 모 고등학교에 재직하는 졸업생 선생님이 제공해준 황혼 사진.

    그대, 꼭 저물면서 빛나는 찬란한 리즈 시절을 맞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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