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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Dec 22. 2023

07. 맑은 바람 솔솔 부니

〈적벽부赤壁賦〉감상 (1)

수천 년 중국문학사 중에서, 아니 동아시아 문학사 중에서 최고의 명작은 무엇일까? 어린아이의 유치한 질문 같지만 의외로 답변이 쉽게 나올 수도 있다. 역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서슴없이 최고로 꼽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쓴 〈적벽부赤壁賦〉와 〈후적벽부後赤壁賦〉, 두 편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전후〈적벽부〉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후세 동아시아 사람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시인 묵객들의 문학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소재로 한 서예 · 회화 · 조각 · 노래 등의 예술 작품이 수없이 창작되었다. 요새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작품 감상 전에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관련 정보부터 알아보자.



1. 기본 정보



( 1 ) 창작 시기


①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동파 나이 46세 되는 해의 음력 7월과 음력 10월에 쓴 글이다.

※ 동파는 음력으로 1036년 12월 생이고, 양력으로는 1037년 1월 8일 생이다. 때문에 계산법에 따라 그의 나이는 두 살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1037년을 1살로 계산하면 1082년은 동파 나이 46세되는 해다.

② 그 해는 동파가 오대시안烏臺詩案의 화를 입고 황주黃州로 귀양 온 지 3년째 되는 해다.


( 2 ) 창작 장소 : 적벽赤壁 


'적벽'은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일어난 장소다. 때는 바야흐로 동한東漢의 마지막 임금인 헌제獻帝 건안建安 13년(208),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이 조조曹操의 백만 대군과 싸워 이겼다는 바로 그 전쟁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적벽'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애매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기 고장의 적벽이 진짜 '적벽'이라고 주장해 온 곳이 너무나 많다. 얼마나 치열하게 주장했는지, 혹자는 그 다툼을 두고 '신新 적벽대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은 적벽이 있다. '적벽'은 왜 그렇게 많을까?


첫째, '적벽'은 단순한 역사적 유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은 무엇일까? 바로 적벽대전 아니겠는가. 신기묘산神機妙算의 지혜와 호풍환우呼風喚雨의 재주를 익힌 청년 제갈량諸葛亮! 그가 동남풍을 일으켜 적벽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화공으로 전멸시킨 장면은 가히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은 모든 동아시아인에게 '적벽'은 신화와 전설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어찌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적벽'은 이토록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치를 자기 고장의 것으로 만들어, 향토의 명소로 애향심도 키우고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둘째, 소설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적 사실을 스토리의 뼈대로 삼고 있지만 허구虛構의 요소가 상당히 많다. 유비와 조조, 특히 제갈량의 소설 속 캐릭터와 이미지는 역사의 팩트 fact와 크게 다르다. 가장 큰 허구는 적벽대전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진수陳壽(221~263)가 쓴 역사책 《삼국지》는 이 전쟁에 대한 기록이 아주 간단하고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적벽대전을 두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추측과 가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조의 백만 대군은 사실은 26만 명이라는 설, 아니 오천 명에 불과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싸움터가 '적벽'이 아니라 '오림烏林'이었다는 설마저 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적벽의 실제 장소가 어디인지 설이 분분할 수밖에 없겠다.


무적벽武赤壁과 문적벽文赤壁


'적벽'의 위치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7가지 설이 존재해 왔다. 그중 가장 유력한 곳은 호북성湖北省 포기현蒲圻縣과 가어현嘉魚縣이었다. 우리나라의 네이버 지식사전과 두산 백과사전에는 '적벽'은 호북성 가어현에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다년간의 고증 끝에 호북성 포기현에 있는 적벽이 진짜 '적벽'이라고 판정을 내리고, 1998년 그곳의 행정 지명까지 '적벽시赤壁市'로 바꾸었다. 이로써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던 '신 적벽대전'은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남은 문제가 있었다. 동파가 쓴 〈적벽부〉때문이었다. 그가 유배를 간 황주에도 적벽이 있었던 것이다. 동파는 현지 주민들에게 그곳이 진짜 '적벽'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3년 세월이 지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믿게 된다. 그래서 글에서도 그곳이 삼국 시대의 격전지라는 언급을 하고 감회에 잠기는 장면이 나온다. 훗날 동파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의 글은 온 천하에 널리 퍼진 뒤였으니, 후세 사람들은 그리하여 황주의 적벽을 진짜 '적벽'으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금金, 무원직武元直, <적벽도>. 동파의 <적벽부>를 읽고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다. 실제 모습은 어떠할까?

동파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그의 글이 어디 보통 글이던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 문인이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하여 쓴 글에 나오는 적벽이니, 황주의 가짜 적벽은 그로부터 진짜 '적벽'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터라 중국 정부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까... 그리하여 나온 해결책이 '무적벽武赤壁'과 '문적벽文赤壁'이라는 이름이었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두 곳의 적벽을 모두 살리자는 묘안이었다.

주유周瑜와 조조의 군사가 싸운 '적벽'은 '무적벽', 동파의 적벽은 '문적벽'! 과연 어느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을까? 아마도 옛날에는 동파의 〈적벽부〉때문에 '문적벽'을 더 많이 찾았고, 1998년 이후에는 점차 '무적벽'을 더 많이 찾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무적벽'이 아니라 '문적벽'을 찾아갔다. 그때는 1996년이라 어디가 진짜 '적벽'인지 중국 정부에서도 아직 확정하지 못한 터라,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든 게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황주를 지나는 장강. 1950년대의 대홍수로   오른쪽 강변부터 적벽까지 약 4Km가 육지로 변하였다
(좌) 포기蒲圻의 무적벽 (우) 황주의 문적벽. 동파 적벽의 실제 모습.

바다처럼 드넓은 장강을 건너 황주의 동파 적벽을 찾아간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게 뭐야? 눈앞에서 어른대던 적벽에 대한 환영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 어이없는 상실감이라니... 천길 낭떠러지 절벽은 어디 가고, 10m가 될까 말까, 야트막한 바위 언덕에 정자 몇 개만이 덩그마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앞에 있는 연못... 호수라기에는 너무 작았으니 분명 연못이었다. 만경창파에 일엽편주는 어디 가고, 더러운 황토물에 어린아이 타고 노는 오리 배 몇 척만이 동동 떠 있지 않은가! 진한 분노와 배신감이 몰려왔다. 설명을 들으니 1950년대에 대홍수가 나서 적벽 앞에 퇴적물이 4km나 쌓이는 바람에 내륙으로 바뀌어서 그렇단다. "산천은 의구依舊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길재의 그 시조는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 3 ) 작품의 장르와 특성 : 부賦와 낭송


'부'는 중국문학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문학 용어이자 아주 독특한 장르다. 여러 가지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조금 전문성을 띤다. 여기서는 대충 요점 정리만 해보자. 골치 아프실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고전에 대한 상식 증강 차원에서 슬쩍 한번 살펴보셨으면.


① '부'는 문학 창작 기법 중의 하나다. 직설법에 나열법을 가미했다고 이해하면 대충 오케이!

 ※ A와 B를 나열할 때, 그 사이에 쉼표 역할을 하는 어기조사語氣助詞 '혜兮'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예] ○○○○兮○○○○!


② '부'는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중간 장르다. 한漢나라 때 유행하다가 사라졌다.


③ '부'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유행한 변문騈文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 변문은 4글자와 6글자로만 글을 쓰는 일종의 지식인들의 문자 유희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문인들은 앞 다투어 변문으로 글을 썼다. 변문은 형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화려해 보였고, 옛날 전고典故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4글자로 된 고사성어가 바로 그 흔적이다.


변문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4, 6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만 글을 써야 하므로, 작가가 주장하고픈 내용을 정확히 서술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때가 되자 문인들은 변문을 사용하지 말고 산문으로 글을 쓰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래야만 시대가 요구하는 유가儒家 사상의 내용을 제대로 전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나라 때의 산문 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유韓愈(768~824)나 유종원柳宗元(773~819)처럼 선천적으로 글재주가 탁월한 문인을 제외하면, 다른 문인들이 산문으로 쓴 글은 형식 면에 있어서 너무나 수준이 떨어졌기에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지적 수준을 과시할 수 있는 4.6변문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④ '부'는 낭송을 중시한다. 반고班固, 《한서漢書 · 지리지地理志》: "노래하지는 않되 입으로 낭송하는 것을 '부'라고 한다. 不歌而誦謂之賦" 참고.


※ 북송 시대에 들어오자 '부'의 이러한 낭송 특성을 활용하여 글을 쓴 문인들이 있었다. 구양수의 〈추성부 秋聲賦>나 동파의 〈적벽부〉가 대표적 사례다. 특히 동파는 〈적벽부〉에서 불규칙한 산문 사이에 4.4.6.6조의 변문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유람을 나간 경쾌한 심정이 담긴 리듬감을 창출해 내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바꿔 말하자면, 독자가 이 글을 낭송하면 동파의 그때 그 심정을 그대로 공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후세 사람들은 〈적벽부〉를 낭송하며 탄복을 금치 못했다. 아하, 산문이라고 해서 무작정 아무렇게나 풀어놓으며 쓰는 게 아니로구나! 사이사이에 운문처럼 글자 수의 장단長短을 적절하게 운용해 주니까 이렇게 멋진 리듬이 탄생하는구나! 감탄하며 소리의 장단과 고저高低를 활용한 글쓰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청나라 때에 이르자 중국 산문의 '낭송' 이론이 일목요연하게 정립된다. "작가는 작품 속에 소리를 주입하여 자신의 정서를 독자에게 전달하 以聲傳情", "독자는 낭송할 때 구현되는 소리를 근거로 작가의 정서를 추적한다 因聲求情"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동파는 비록 이런 이론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적벽부〉는 그 이론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적벽부〉는 가장 바람직한 낭송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더욱 크게 증폭되었다.



2. 〈적벽부〉낭송



그러므로  <적벽부> 감상에 있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낭송'이다.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 및 감상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우선 먼저 작품을 낭송해 보자.


중국어를 모르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싶으신가? 걱정 마시라. 중국어를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 아니, 한국어 한자 발음으로 낭송하면 훨씬 더 멋있다.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은 고대 중국어 발음과 싱크로율 99%다. 당송 시대에 건너온 고대 중국어 발음이 거의 원형 그대로 유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연으로, 한국어 발음으로 낭송하면 그 예스러운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중국 교수님들이 들으면 좋아서 아주 껌뻑 죽는다.


낭송에 정해진 법은 없다. 수백 번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으면서 원문에 담긴 뜻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면, 저절로 그럴듯한 음률이 나오게 마련이다. 인간의 언어는 감정과 기분에 따라 고저와 강약이 거의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옛날 서당에서 운율을 맞춰 떼창으로 글을 읽는 학동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라. 낭랑한 목소리로 도도하게 책을 읽는 선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라. 낭송의 낭창한 즐거움이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아주 독특한 '한문 낭송' 방법이 있다. '송서 誦書'라는 무형 문화유산이다. 일반적인 낭송에 노래를 부르듯 구성진 가락을 집어넣어 읊조리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이른 아침에 산 중턱의 약수터에 가면 송서를 하는 어르신들의 구성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따금 공중목욕탕의 열탕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목청 높여 송서를 하는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이 가장 많이 읊조리는 글이 바로 동파의  <적벽부> 다.

 

<적벽부> 송서에는 경기창京畿唱과 서도창西道唱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경기창은 한문 원본 그대로에 토만 달아서 부르는 거고, 서도창은 원문을 우리말 식으로 재구성하여 가사를 새롭게 만들어 부른다. 또 송서 외에도 정정렬(1876 ~ 1938) 판소리 단가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정정렬 판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lJ8HfpCFk40


우리는 경기창 방식으로 한문 원본에 토를 달아서 낭송해 보자. 우리말도 최대한 음률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이니 그것도 분위기에 맞게 낭송해 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낭송에 정해진 법은 없다. 우리가 송서 예술인은 더욱 아니다. 안심하고 제각기 개성을 살려서 마음껏 흥을 돋우어 연습해 보자. 그렇게 열 번만 낭송해 보시라. 유람 나간 동파의 그때 그 심정과 보름달 밤 장강 적벽의 그윽하고 호쾌한 분위기가 슬며시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 번역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문단] 적벽으로 유람을 나가다


임술년 가을날 칠월 기망일旣望日,

소자蘇子는 객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로 유람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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戌之秋,七月既望,蘇子與客泛舟,遊於赤壁之下。

임술/지추, 칠월/기망(에), 소자(는)/여객/범주(하여), 유어/적벽/지하(로다).

명明, 구영仇英, <적벽도> 일부.


맑은 바람 솔솔 부니, 물결 또한 잔잔하다. 술을 들어 그대에게 권하노니,

 <명월明月의 시가>읇조리고, <요조의 장구章句>노래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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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風徐來,水波不興。舉酒屬客,誦明月之詩,歌窈窕之章 。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이라). 거주/촉객(하니), 송/명월/지시(하고), 가/요조/지장(하세).

조선, 김홍도, <적벽야범赤壁夜泛>

잠시 후였다.

달이 동산東山 위에서 떠올라 북두칠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어슬렁거렸다.

하얀 이슬이 강을 가로지르더니 수광水光이 하늘과 맞닿았다.

이 갈대 한 잎 떠가는 대로 몸을 맡겨, 저 만경창파 아득한 곳을 날아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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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焉,月出於東山之上,徘徊於斗、牛之間。白露橫江,水光接天。縱一葦之所如,凌萬頃之茫然。

소언(하니), 월/출어/동산/지상(하여), 배회어/두우/지간(이로구나).

백로(는) 횡강(하고), 수광(은) 접천(이로다). 종/일위지/소여(하여), 능/만경지/망연(하리라).

조선, 겸재 정선, <우화등선>, 1742.

아하! 이 호호 탕탕함이여, 

허공에 훌쩍 떠서 가이없는 그곳까지 바람 수레 몰고 가듯!

오호라! 이 표표飄飄함이여,

속세를 떠나설랑 홀로이 우뚝 서니, 날개까지 돋아나서 신선으로 변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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浩浩乎如馮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羽化而登仙。

호호호~ 여/빙허/어풍(한데), 이/부지/기/소지(하고),

표표호~ 여/유세/독립(하니), 우화/이/등선(이로구나)!!



[2문단] 동파의 노래, 나그네의 퉁소 반주


그리하여 술을 마시니, 한없이 즐거워져 노래 한 곡 부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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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飲酒樂甚,扣舷而歌之。

어시, 음주/낙심(하니), 구현/이/가지(로다)!

삿대는 계수나무, 돛대는 목란이라! 노래하는 동파. (포토샵, 합성)

삿대는 계수나무, 돛대는 목란木蘭이라!

허공 같이 밝은 물살 헤치고서, 흐르는 저 빛살을 거슬러 오르노라!

아득한 곳 떠나가는 나의 마음이여, 하늘 끝에 계시오는 그 님을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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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曰:「桂棹兮蘭槳,擊空明兮溯流光。渺渺兮予懷,望美人兮天一方。」

가왈: 계도/혜/난장(이요), 격공명/혜/소류광(이로다). 묘묘/혜/여회(구나), 망/미인/혜/천일방(이로다)!

흐느끼는 그 소리,   원망함인가 그리움인가, 흐느낌인가 하소연인가! 퉁소 부는 나그네. (포토샵, 합성)

그때였다. 객 중의 한 손이 퉁소를 불며 노래에 맞추어 화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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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有吹洞簫者,倚歌而和之。

객유/취/통소자(하니), 의가이/화지(라).


흑흑- 흐느끼는 그 소리,

원망함인가 그리움인가, 흐느낌인가 하소연인가!

여음餘音은 실처럼 가냘프게 끊어지지 않으니,

그윽한 골짜기의 이무기가 꿈틀대며 춤을 추고,

외로운 돛단배의 청상과부 숨죽이며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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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聲鳴嗚然,如怨如慕,如泣如訴,餘音裊裊,不絕如縷,舞幽壑之潛蛟,泣孤舟之嫠婦。

기성/오오연(하니), 여원(인 듯) 여모(인 듯), 여읍(인 듯), 여소(인 듯).

여음(은) 요요(하여) 부절/여루(하니), 무/유학지/잠교(하고), 읍/고주지/리부(로다)!



[3문단] '변變', 슬퍼하는 나그네 


소자蘇子는 안색을 바꾸고, 옷깃을 바로 하며 단정히 앉아 그에게 물어보았다.

“퉁소 가락이 어찌 그리 슬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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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愀然。正襟危坐,而問客曰:「何為其然也?

소자(가) 초연(하여) 정금/위좌(하고) 이문/객왈, 하위/기연야(잇고)?

달은 밝은데 별이 드무니, 오작은 떼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간다... (포토샵, 합성)

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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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

객왈:


"달은 밝은데 별이 드무니, 오작烏鵲은 떼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간다!"

이게 바로 조맹덕曹孟德의 시구詩句가 아니오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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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明星稀,烏鵲南飛,此非曹孟德之詩乎?

월명/성희(한데), 오작(은) 남비(로다)! 차비/조맹덕지/시호(잇고)?


저기 서쪽으로는 하구夏口 땅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무창武昌 땅이 보이는 그 사이에,

울울창창 빼곡하게 산천山川이 연이어져 있으니,

여기가 바로 맹덕孟德이 주랑周郞에게 곤욕을 치르던 그 적벽이 아니더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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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望夏口,東望武昌,山川相繆,鬱乎蒼蒼,此非孟德之困於周郎者乎?

서망(하니) 하구 (땅이오), 동망(하니) 무창 (땅이라).

산천(은) 상무(하여) 울호창창(하니),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잇고)?

울울창창 빼곡하게 산천이 연이어져 있구나! (포토샵, 합성)


바야흐로 조맹덕이 형주荊州 땅을 격파한 후

순류를 타고 동쪽 강릉江陵으로 내려오던 그때의 그 광경을 떠올려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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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其破荊州,下江陵,順流而東也;

방/기파/형주 (연후에), 하/강릉(하여) 순류/이동야(할 제),


천리에 줄을 이은 군선軍船 위로 깃발은 하늘을 뒤덮었고,

조조는 강가에서 술잔을 흩뿌리며

긴 창 비껴든 채 시가詩歌를 노래하니,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 아니었소이까?

헌데, 그런 그가, 지금은 어디로 갔단 말이오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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舳艫千里,旌旗蔽空,釃酒臨江,橫槊賦詩,固一世之雄也,而今安在哉?

축로(는) 천리(이고), 정기(는) 폐공(인데), 시주/임강(하고), 횡삭/부시(하니),

고, 일세지/웅야(로다)! 이, 금/안재재(잇고)?

긴 창 비껴든 채 <단가행短歌行>을 노래하는 영웅 조조. 그런 그가 지금은 어디로 갔소이까? 드라마 《삼국지》의 한 장면.

하물며 그대와 나는 어떻소이까?

강가의 모래섬에서 물고기나 사슴 따위와 벗을 하는 어부漁夫 초부樵夫아니오이까?

나뭇잎 같은 조각배에서 표주박으로 만든 잔을 들고 술 권하는 딱한 처지가 아니오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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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侶魚蝦而友麋鹿;駕一葉之扁舟,舉匏樽以相屬。

황/오여자(는) 어초어/강저/지상(에) 여/어하/이, 우/미록(이요),

가/일엽지/편주(하고), 거/포준이/상촉(이로세).

어찌 아니 끝없이 흘러가는 장강의 물결이 부럽지 않으리오?

그야말로 잠시 잠깐 이 세상에 몸을 맡긴 하루살이요,

검푸른 바닷속에 떨어뜨린 한 톨의 좁쌀처럼 보잘것없는 신세 올시다.

어찌 아니 수유 같은 삶이 슬퍼지고,

끝없이 흘러가는 장강의 물결이 부럽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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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蜉蝣於天地,渺滄海之一粟。哀吾生之須臾,羨長江之無窮。

기/부유어/천지(에), 묘/창해지/일속(이로세). 애/오생지/수유(하니), 흠/장강지/무궁(이로다)!


저어기 밝은 달을 꼭 껴안고 천년만년 살고픈 심정이오. (포토샵 합성)

신선의 옆구리에 매달려 거침없이 창공으로 날아가서

저어기 밝은 달을 꼭 껴안고 천년만년 살고픈 심정이었소만,

문득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닌 줄을 깨닫게 되었는지라,

슬픈 바람 위에 여음餘音을 실어본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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挾飛仙以遨遊,抱明月而長終。知不可乎驟得,托遺響於悲風。

협/비선/이/오유(하여), 포/명월/이/장종(이나), 지/불가/호/취득(하니), 탁/유향/어/비풍(이로세).



[4문단] '상常', 위로하는 소동파


소자蘇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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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소자/왈,


그대도 이 물과 저 달을 잘 알고 계시렸다?

흘러가는 것은 모두 다 이 물처럼 흘러가게 마련이오만,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소이다.

차고 기우는 것은 모두 다 저 달처럼 변화하게 마련이오만, 결코 줄어들거나 늘어난 적은 없소이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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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亦知, 夫水與月乎? 逝者如斯,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

객/역지, 부/수여/월호(이렸다)?

서자(는) 여사(하나), 이/미상/왕야(이며), 영허자(는) 여피(지만), 이/졸막/소장(이로다)!

저 달님은 더 이상 줄어들거나 늘어나지는 않는다오.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측면으로 보자면야, 천지 간에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라도 변화하지 않는 때가 없겠으나,

변화하지 않는 측면으로 보자면은 만물이 나와 함께 끝이 없는 법이라오. 헌데 뭘 그리 부러워하신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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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皆無盡也,而又何羨乎!

개장, 자/기/변자/이/관지(하면), 즉, 천지(가) 증/불능이/일순(이며),

자/기/불변자/이/관지(하면), 즉, 물여아(가) 개/무진(인데), 이우/하흠호(인가)?


무릇 천지간의 삼라만상은 제각기 임자가 있는 법.

내 것이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가져서는 아니 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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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夫天地之間,物各有主;苟非吾之所有,雖一毫而莫取。

차/부/천지/지간(에) 물(은) 각/유주(이니), 구/비/오지/소유(이면) 수/일호(라도) 막취(로세)!

조선, 정선, <경교명승첩 京郊名勝帖> 중 <목멱조돈木覓朝暾>. 남산의 일출 장면. 간송미술관 소장.

허나 강 위에 맑은 바람, 산간의 밝은 달을 보시오 그려.

귀로 접하면 소리가 되어주고, 눈으로 만나면 색조色調를 이루나니,

제아무리 마음대로 엄청나게 가진다 한들 그 누가 시빌是非 걸며,

제아무리 마음대로 가져다가 쓴다 한들 없어지질 아니하니,

이게 바로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한 보고寶庫라서 그대와 내가 함께 즐기는 것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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惟江上之清風,與山間之明月,耳得之而為聲,目遇之而成色,取之無禁,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而吾與子之所共適。」

유/강상지/청풍(과) 여/산간지/명월(은) 이득지(하면) 이위성(하고), 목우지(하면) 이성색(이라)!

취지(여도) 무금(이요), 용지(해도) 불갈(이로세)!

시, 조물자/지/무진장(이니), 이, 오여자/지/소공적(이로구나)!



[5문단] 깨달음, 진정한 유람의 시작


이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잔을 씻어 새로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니,

안주는 곧 동이 나고 배반杯盤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서로서로 배 안에서 베개하고 쓰러지니, 먼동이 - 하게 터 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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喜而笑,洗盞更酌,餚核既盡,杯盤狼籍。相與枕藉乎舟中,不知東方之既白。

객(은) 희이소(하며) 세잔(하여) 갱작(하니) 효핵(은) 기진(하고) 배반(은) 낭자(하더라).

상여/침자호/주중(하니), 부지/동방지/기백(이로다)!

조선 초기, 전傳 안견安堅, <적벽부> 세부도


※ 번역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표지 그림 ]

◎ 조선, 겸재謙齋 정선鄭敾 <적벽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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