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부. 소오생의 不惑 ]
내 나이 마흔은 '헤어짐의 시기'였다. 젊음과 헤어지고, 부모님과 헤어지고, 익숙한 것들과 헤어졌다. 쓰고, 아리고, 괴롭고, 아픈, 수천만 개의 씀바귀 가시가 사정없이 가슴을 콕콕 찔러댔다. 108 번뇌의 잡념과 함께 아비규환의 무간지옥이 찾아왔다.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쓴 글을 찾아보니, 아버님 상을 당하고 난 뒤 동기들에게 보낸 편지가 동창회보에 실려 있었다. 이곳으로 옮겨 보관한다.
사랑하는 26 동기 벗님들 읽어보소.
정든 모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꽤 오랜 세월이 흘러가 버렸구려. 종종 얼굴 보고 지내는 벗님들도 있겠소만, 이제는 서로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친구들도 있으니 기막힌 일이오.
그래, 아지랑이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이 봄 향기 속에서 어찌들 보내고 계시는가? 혹시 삶이 그저 하염없이 시큰둥하거나, 아니면 괜스레 자꾸만 흘러나오는 “허허!” 헛웃음 뒤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아픔을 가슴 한 구석에 숨겨놓고 계시지는 않으신가?
나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 오만, 우리네 인생에는 사춘기가 두 번 온다 더 구료. 사춘기라면 십 대의 꽃 같은 이팔청춘에나 겪는 것인 줄로만 알았더니, 아니 글쎄 이게 웬일이오? 삶에 찌들어버린 후줄근한 사십 중턱의 나이에도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게 마련이라니...
굳이 그 차이를 말한다면 십 대의 그 사춘기는 봄맞이의 설레임이 빚어내는 씀바귀처럼 쓰디쓴 가슴앓이일 것이고, 사십 대의 사춘기는 떠나간 봄이 마냥 그리워 두고두고 천천히 가슴 저며오게 마련이라니, 직업 티를 내어 문자 섞어 말하자면 하나는 ‘영춘迎春의 사춘기’ 요, 또 하나는 ‘상춘傷春의 사춘기’ 일 것이외다. 다른 말로 한다면 ‘만남의 사춘기’ 요, ‘헤어짐의 사춘기’라고나 할까?
얼마 전 차를 타고 신설동 육교 위를 지나간 적이 있었소. 여러 벗님들을 처음 만난 곳, 존경하는 스승님들을 처음 뵈온 곳, 모교의 그 동산은 서른 번의 성상星霜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곳에 있더구려. 마치 우리가 보내버린 세월이 거짓이나 된다는 듯.
모르겠소. 여러 벗님들은 그 시절을 어찌 보냈는지 잘 모르겠소만, 나는 청춘을 예찬한 어느 수필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오. 참 힘들고 아팠었지... 헌데 그 시절은 왜 그렇게 아파야만 하는 것이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엔 아마도 그때는 ‘만남’에 서툴러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소. 양 갈래로 귀엽게 머리 땋은 여학생과의 만남에도 서툴렀고, 친구 사귀는 일에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학문과의 만남에도 우린 너무너무 서툴러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는 이유 때문에 밤새 고민하고 아파해야만 했소.
그러던 우리가 나이 쉰을 바라보는 사십 대 중턱 고지에 떠억 올라서고 말았구려. 헌데,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되, 사십 고개 넘기기도 왜 그리 힘들던지, 이건 10대의 그 시절 뺨칠 정도로 매일같이 남몰래 가슴이 에이는데, 남사스러워 누구한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라!
나이 사십은 ‘불혹不惑’이라는데 그래서야 되겠느냐 점잖게 나무라는 벗님은 없으신가? 그게 말이오, 내 전공이 중국 문학이라 하는 말이지만, 그 나이엔 세상사에 ‘흔들림惑’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많이 흔들리기 마련이라, 특별히 경계하라는 의미로 공자님이 그리 말씀하신 거랍디다. 그나저나 이 나이의 사춘기는 ‘헤어짐’ 때문에 비롯된다니, 그 사연을 한번 얘기해 봅시다.
‘헤어짐의 사춘기’는 대체로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로 시작되더이다. 물론 이 시절에 이르기 훨씬 전에 일찌감치 부모님과 헤어진 지지리도 복 없는 벗님들도 있고, 아직도 양친 모두 정정하신 행복한 벗님들도 있겠소만, 대충 우리 나이의 자식들을 두신 부모님들은 이 시절쯤 해서 제일 많이 떠나시는 것 같더이다.
“내 죽은 뒤 딱 한 번만 눈 떠봤으면 좋겠다. 누가 제일 슬피 우나 보게...”
이년 반 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런데 난 거의 눈물이 나오지 않습디다. 어머니께서 살짝 눈을 뜨고 살펴보실까 봐 억지로라도 울어보려 애쓰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디다. 여든이 넘으신 아버님은 넋을 잃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시던데 말이요.
두 달 전 돌아가신 아버님 때도 마찬가지였다오. 시신을 추스르고 입관을 할 때도,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나이 많은 형들은 줄줄 우는데 나는 여전히 눈물이 잘 나오지 않더구먼.
“이제 넌 양친을 다 여의었으니 그야말로 천애의 고아일세 그려.”
어느 선배가 하는 말에, 문득 세상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으니까. 이 나이엔 감정도 형광등이 되고 마는 겐지, 부모님과의 헤어짐은 뒤늦게 두고두고 밤마다 천천히, 그러나 몹시도 쓰라리게 다가옵디다.
‘헤어짐의 사춘기’에는 또 자식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오. 그게 무슨 끔찍헌 소리냐고? 어허, 지레 짐작하고 겁먹지 마시오 그려. 부모님 얘기할 땐 그래도 여유작작이더니만, 자식 떠나보낸다니 펄쩍 뛰는 그 모습이 과히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소 그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인간은 대체로 마음이 허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뭣이냐, 심리학적으로는 ‘빈 둥지 증후군 Empty nest syndrome’으로 부른다는구려. 뭔 소리냐 하면 부모는 자신이 못 이루었던 일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라는데, 부모가 이 나이쯤 되면 자식들도 대충 거의 다 크게 마련이니, “그렇게는 못 하겠소이다” 거부하며 품 안에서 떠나가기 마련이라나? 인생 두 번째의 사춘기에는 그러므로 우리 부모 된 벗님들이 욕심을 포기하고 자식들을 각자 자기 갈 길로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는구려 글쎄.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그리운 시절, 청춘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싶소. 오십 문턱을 향해 줄달음치는 우리네 가슴이 가장 아려오는 이유는 바로 그 젊음과의 아쉬운 작별 때문이 아니겠소? 하지만 십 대의 사춘기에 인간관계의 ‘만남’을 잘 배우면 이 삼십 대가 활짝 열리듯, 우리 이 시기에 ‘헤어짐’의 방법을 잘 배우면 오히려 새로운 삶이 싱그럽게 펼쳐지기도 한답디다.
게다가 공자는 나이 쉰에는 천명天命을 알아야 한다 했다오. 그게 무슨 허튼소리냐고? 쉽게 말하자면 ‘이제 언제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니 늘 마음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 이치가 그러하다니 우리 이제 그만 아쉬움을 잊고 떠나보낼 건 보내십시다.
그 대신 늘 우리 옆에 덤덤하게 있어주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봅시다 그려. 우리보다 한 발 더 먼저 늙는 마누라 얼굴의 주름살이 유달리 더 고와 보이지 않소? 친구의 이 쓰라린 속마음도 몰라주고 허벌레 싱거운 소리에 쌍시옷 소리까지 달고 투덜대는 벗님들이, 그저 우리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고맙지 않소이까? 이제는 그래야 될 나이랍디다.
끝으로 인사말 한 마디, 아버님 상을 당했을 때 이모저모로 도와준 우리 26 동기 벗님들, 정말 고맙소이다. 그저 옆에 있어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무 큰 의지가 되더이다...
[ 표지 사진 ]
◎ 동대문구 신설동 어귀에 있는 필자의 모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