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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Nov 20. 2023

20. 현상과 내면, 시각과 청각효과

[ 제6부. 소오생의 耳順 ]

※ 이 글은 앞선 글 〈연지에 띄워보는 그리움의 소리 편지〉의 세 번째 부분입니다. 글의 내용을 부각해 보기 위해 소제목을 타이틀로 내걸었습니다.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의 핵심은 '소리'에 있다. 앞선 글 참조. 


그러나 '소리'는 '이순'이라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필자의 오랜 화두이기도 했다. 

'소리'란 대체 무엇일까?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학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논문으로 발표해 보았다. 


2003년 11월 22일,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중어중문학회 추계연합학술대회에서 '소리'와 '문학의 생명력'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각 분과별로 논문 발표가 진행되었는데, 서울대 중문과 오수형 교수님이 필자의 발표 시간에 맞춰 같은 학교 원로이신 허 모 교수님을 산문 분과로 모시고 왔다. "허 선생님, 이 발표는 꼭 들으셔야 해요." 발표가 끝난 후, 허 교수님이 내게 다가와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주셨다. 


그날 밤, 오 교수님은 평촌 수산물시장 2층 횟집에서 참돔을 사주면서 밤새 나와 함께 통음을 했다. 주로 '소리'와 '문학'에 대한 필자의 발상을 극구 칭찬해 주었지만 비판도 해주셨다. '소리'와 청각효과에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시각효과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그에 대해 다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 글은 그 생각을 정리하여 편지 형식으로 써 본 것이다. 




오수형 교수님과 필자는 국립대만대 유학 시절 함께 뤄롄티엔羅聯添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셨으니, 옛날 무협세계로 친다면 오 교수님은 내 동문 사형인 셈이다. 그 인연 때문이었는지 비재천학非才淺學인 나를 유난히 아끼고 늘 지지해 주었다. 한국중국산문학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던 선배님은, 1년 만에 회장 직을 자진해서 사퇴하고 억지로 나를 2대 회장으로 삼은 후에 뒤에서 적극 후원해 주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서울대에서 세미나를 열고 낙성대 부근에서 회원들과 함께 즐겁게 뒤풀이하던 때가 어제인 듯 생생하다. 


그런데... 2023년 3월 5일 돌연 세상을 떴다는 부음을 전해 들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다급히 영정 앞에 서니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오호, 통재痛哉라!

얼마 전 강원도 산골의 은거 처소로 찾아뵈었을 때가 이생에서의 마지막 인사였다니... 

삼가 이 글을 선배님께 바칩니다. 편히 쉬소서.



연지에 띄워보는 그리움의 소리 편지 (3)



선배님. 우리는 흔히 ‘소리’라고 하면 인간의 귀에 들려오는 ‘현상학적인 소리’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청각 인지능력으로는 미처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냥 느끼는 것이지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들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청각 경험의 기억에 의해 복구되어 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관조觀照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상과 내면의 소리시각효과와 청각효과    


선배님.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 중계방송을 보셨습니까? 경사진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선수들의 일그러진 얼굴 모습, 그 화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마라톤 경험이 풍부한 해설자라면 그 화면만 보아도 심장이 파열되는 듯한 거센 숨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 들었던 소리가 그 화면을 보는 순간 기억에 의해 복구되는 것이겠지요. 해설자는 화면에 담긴 그 ‘내면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마치 자기 자신이 달리는 듯, 진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입니다. 


마라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어느 정도 공감은 할 수 있겠지요. TV나 영화를 통해 그러한 순간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본 간접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직접 경험자만큼은 아닐지라도 함께 흥분하고 함께 감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소리에 대한 그 어떤 간접 경험마저도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선배님. 우리는 흔히 청각효과를 시각효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듯합니다. 사진이나 그림이 지니는 예술효과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각보다는 청각적인 성격이 훨씬 더 강한 것 아닐까요? 소리를 내재하지 못한 그림이나 사진이나 글은 결코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지 못하니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들이 듣지 못할 뿐,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모두 내면의 소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혼의 눈이 뜨이고 마음의 귀가 열린 사람들은 그 무엇을 보더라도 그 속에서 반드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선배님. 제 연구실에 걸린 산수화를 오래오래 바라보시던 선배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점점이 이어진 낙락장송, 기암괴석 사이를 흘러나오는 계곡 물, 그리고 강가에 정박한 나룻배 한 척…. 모든 것이 정지된 채 말없이 벽에 걸려있는 한 폭의 산수화. 

황쥔삐黃君璧(1898~1991) , 〈계두귀래溪頭歸來〉

그 속에서 선배님은 소리를 듣고 있었지요. 그림 안에는 흔적도 보이지 않건만, 저 깊은 산 어딘가에 산사山寺가 있음에 틀림없다며, 그곳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묻던 선배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저 나룻배 선창 안에는 필경 그 누구인가 그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저 그림을 볼 때는 그 나그네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대화를 나누어보라고 권하면서 빙긋 웃던 선배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 폭의 정지된 그림 속에서 바람소리와 새소리 물소리 종소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나그네의 마음속에 흐르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그림과 대화를 나누시던 선배님. 선배님의 그 목소리가 그리워서일까요? 저 역시 요즈음 정지된 모든 것 속에서 그들이 들려주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곤 한답니다. 


책상 위에 동그마니 놓여있는 소라껍질 두 개…. 그 속에서 천만년 유구한 세월의 파도소리와 온갖 사연 가득 싣고 떠나가는 서글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봅니다. 싸구려 달력 속에 붉게 물든 고궁의 가을 단풍 사진 한 장…. 그 언젠가 낙엽을 밟으며 가을 정취를 함께 했던 옛 님의 그리운 그 목소리가 다시금 귀청에 울려옵니다. 방문을 열어 보니 뒤뜰에 대나무 숲…. 삶과 사랑과 인연의 이치를 생각하던 그날 밤, 성긴 대나무 숲을 스치던 그때의 그 신비로운 싸락눈 바람소리가 이곳에도 스쳐가고 있군요. 법당 처마에 소리 없이 매달려있는 저 풍경….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니 수 백 년 세월에 파묻힌 가여운 중생들의 번뇌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스님들의 목탁 소리, 염불 소리가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련하게 들려옵니다.     


이 모두가 시각 효과가 아니라 청각 효과 아닐까요? 내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시각 효과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 내면의 소리는 아마도 그와 유사한 현상학적인 소리를 들어본 직접 또는 간접적인 경험의 기억을 통하여 복구되는 것이겠지요. 그러한 청각적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소리가 내재된 장면을 보더라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파도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다정한 그 님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삶과 사랑과 인연의 이치를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면, 나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번뇌의 울림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렇다면 소라껍질과 단풍과 대나무 숲과 법당의 풍경을 본다 한들 무슨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무슨 감흥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 그래서 저는 늘 선배님처럼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귀에 들려오는 현상의 소리도 곰곰 귀 기울여 듣고, 귀에 들려오지 않는 내면의 소리도 마음으로 듣고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들려오지 않는 소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미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연꽃잎에 맺힌 이슬방울. 대체 여기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는 걸까요…. 선배님. 저는 언제쯤 영혼의 눈이 뜨이고 마음의 귀가 열릴 수 있는 걸까요.


― 계속 ―




[ 표지 사진 (좌) ]

◎ 금동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옛 지정번호 국보 제7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자연스럽다. 신비롭다. 그 미소의 내면에는 어떤 소리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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