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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an 11. 2024

10. 그대, 인생이 즐거우셨소이까?

〈후적벽부後赤壁賦〉감상 (1)

※ 번역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적벽부赤壁賦>에 이어  <후적벽부 後赤壁賦> 작품 감상이다. 


전/후편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예술작품을 두고 우리는 흔히 전편 만한 후편이 없다고 말한다.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야 흥행에 성공한 전편의 유명세를 노리고 만든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 고전문학 작품도 별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제갈량의 전후 <출사표出師表>가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상황이 그러하니, 이 작품에 대한 역대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후적벽부>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전편에 비해 상당히 인색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작품 또한 전편에 못지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편을 더 능가하는 재미가 있다. 과연 여러분의 평가는 어떠하실지 궁금하다.  




<적벽부>는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동파 나이 46세 되는 해의 음력 7월에 쓴 글이다. <후적벽부>는 그로부터 석 달 뒤에 쓴 글이다. 전자는 초가을에 썼고, 후자는 초겨울에 썼다. 계절이라는 요인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도 상당히 중요하므로, 그 점도 감안하여 작품을 감상하자.


같은 해의 음력 10월 보름날 밤, 동파는 그를 찾아온 나그네들과 함께 또다시 적벽으로 유람을 나간다. 그가 두 번의 유람을 사전에 계획한 것은 아닐 터.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에 유람을 나가서, 같은 소재의 글을 또다시 쓰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것도 아닐 터이다. 내가 동파라면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했을 것 같다. 독자 여러분이라면,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놓으실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자. 


역대의 논자論者들은 두 작품의 특징을 비교하여, 하나는 '시간'을 다루었고 다른 하나는 '공간'을 이야기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지면 '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동의하기 어렵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는 정적靜的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動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좀 말이 된다. <적벽부>는 가만히 배에 앉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 비해, <후적벽부>는 확실히 움직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30년 동안 가르쳤다. 동파가 이 글을 쓴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늘 학생들에게 고백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노라고. 근데 남들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읽고 또 읽으며 마침내 비슷한 나이가 되자 뭔가 감이 잡히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동파의 필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적벽부>는 설리적說理的이다. 나그네는 수유須臾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인간 존재의 허망함을 토로한다. 동파는 껄껄 웃으며 그를 위로한다. 물은 흘러가지만 여전히 우리 곁을 흐르고 있지 않느냐, 인간도 마찬가지다. 짧은 삶을 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만물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 심오한 과학적 이치를 멋들어진 문학적 비유로 쉽게 설명해 준다. 


<후적벽부>는 서사적敍事的이다. 다시 말해서 스토리가 있다. 당연히 움직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냥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이야기가 휙휙 건너뛰면서도 다 이어진다. 이어지면서도 이건 뭐지? 알쏭달쏭, 신비하기까지 하다.  역대의 논자들이 이 작품을 전편보다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동파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던 탓이 크다. 서사 속에 설리를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서사적인 글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기승전결起承轉結, 4 단락으로 구성된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그에 맞추어 번역문과 원문을 소개한다. 여러분의 편견 없는 작품 감상을 위하여, 필자 개인의 소감은 다음 주에 말씀드리고자 한다. 기존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각주를 해당 단락의 바로 밑에 두었으나, 이번에는 스토리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맨 아래에 달겠다. 



[ 제1단락: 기起 ] 유람의 계기 


그 해 시월 망일望日이었다. 설당雪堂에서 나와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두 사람의 객客과 함께 황니黃泥 고개를 넘고 있었다. [주 1]


벌써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있었다. 대지 위에 어른대는 사람의 그림자. 고개를 들어보니 둥두렷 밝은 달! 사위를 둘러보다 문득 즐거워진 마음에 걸으며 노래를 부르니, 객客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이윽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 2]


귀한 손이 오셨건만 마실 술이 없구나! 마실 술은 있다하되 안주거리 없구나! 

하얀 달에 맑은 바람, 이리도 좋은 밤을 어인 수로 보낼까나!


그러자 한 객客이 말하였다.

“오늘 어스름 저녁 무렵 그물을 올려보니 물고기가 잡혔더이다. 주둥아리 커다랗고 비늘은 잘디 잘은, 그 형태가 영락없이 송강松江 명물 농어와 닮았더이다. 헌데, 술은 어데서 구한다지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상의해 보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영감께서 불시에 필요할 때가 있지 싶어, 오래전에 술 한 말 숨겨둔 게 있지요.”


그리하여 술과 물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 밑으로 유람을 나갔다. [주 3]

--------------

是歲十月之望, 步自雪堂, 將歸於臨皐, 二客從予過黃泥之坂。 

霜露旣降, 木葉盡脫, 人影在地, 仰見明月, 顧而樂之。 行歌相答。 

已而歎曰: “有客無酒, 有酒無肴; 月白風淸, 如此良夜何?” 

客曰: “今者薄暮, 擧網得魚, 巨口細鱗, 狀似松江之鱸。 顧安所得酒乎?” 

歸而謀諸婦, 婦曰: “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須!” 於是, 攜酒與魚, 復游於赤壁之下。



[ 제2단락: 승承 ] 유람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있었다. 절벽은 깎아질러 천척千尺 높이로 솟아있었다. 산은 높아지고 달은 작아졌다. 물은 줄어들고 바위들은 드러나 있었다. [주 4] 도대체 해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산江山이 변한 걸까!     


나는 옷소매를 걷고 육지에 올랐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지나갔다. 포효하는 호랑이 바위에 걸터앉아 보았다. 꿈틀대는 이무기 괴목怪木위에 올라가 보았다. 아찔한 나무 끝 송골매 둥지 위에 기어올라가, 강속 어딘가 깊이 숨어 있을 하백河伯, 풍이馮夷의 용궁을 내려다보았다. [주 5]


두 객客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

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 

予乃攝衣而上, 履巉巖, 披蒙茸, 踞虎豹, 登虯龍, 攀栖鶻之危巢, 俯馮夷之幽宮; 蓋二客不能從焉。 



[ 제3단락: 전 轉 ] 만남



휘- 익, 길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초목이 부르르 떨자, 골짜기 안에 산의 울림이 맴돌더니 홀연 바람이 일어나고 물결마저 춤을 추었다. 나는 슬며시 슬퍼졌다. 문득 숙연해져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시릴 정도로 맑고 차가운 느낌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을 돌려 다시 배에 올랐다. 

강 한복판에 배를 띄우고 파도가 치는 대로 물결이 멈추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때는 바야흐로 한 밤중,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막과 고요함뿐이었다. 


그때였다. 저 동녘에서 한 마리의 학鶴이 강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날개는 수레바퀴, 까만 치마에 하얀 상의를 걸친 듯... 꺼-- 억, 길게 울더니 내가 탄 배를 스쳐지나 서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주 6]    

순식 간에 객客들은 떠나가고 나는 잠이 들었다. [주 7]

--------------

劃然長嘯, 草木震動, 山鳴谷應, 風起水涌, 予亦悄然而悲, 肅然而恐, 凜乎其不可留也! 

反而登舟, 放乎中流, 聽其所止而休焉。

時夜將半, 四顧寂寥。 適有孤鶴, 橫江東來, 翅如車輪, 玄裳縞衣, 戛然長鳴, 掠予舟而西也。 

須臾客去, 予亦就睡。 



[ 제4단락: 결 結 ] 꿈과 현실



꿈을 꾸었다. 우의羽衣 도복道服을 입은 한 도사가 표표飄飄한 자태로 임고정 밑을 지나와서 홀연 읍揖을 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적벽의 노님이 즐거우셨소이까?”

그 이름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하, 그렇구료! 이제 알겠소! 지난밤에 길게 울며 내 옆을 스쳐 날아간 그 학鶴이 바로 그대가 아니시오?”

도사가 고개 돌려 빙그레 웃었다. 


나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는 종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 8]

--------------

夢一道士, 羽衣翩僊, 過臨皐之下, 揖予而言曰: "赤壁之遊, 樂乎?" 問其姓名, 俛而不答。 

“嗚呼噫嘻! 我知之矣, 疇昔之夜, 飛鳴而過我者, 非子也耶?” 道士顧笑, 予亦驚悟。 開戶視之, 不見其處。




[ 각주 ]


[주 1]

▶ 그 해: 동파가 석 달 전, 처음 적벽 유람을 나갔던 해. 즉 동파 나이 46세 되는 해(1082). 

▶ 망일望日: 음력 보름날.

▶ 설당雪堂: 동파가 황주 유배 시기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동쪽 언덕 東坡’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을 때 지은 초막집. 완공한 날 큰 눈이 내려서 ‘설당雪堂’이라고 했다. 당시 가족들은 여전히 임고정에서 묵고 있었다.

▶ 황니黃泥 고개: 설당에서 임고정에 이르는 긴 언덕이다.


[주 2]

▶ 즐거워진 마음: 이때 주변 풍광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하얀 달빛을 맞아 서리가 내려앉아 있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있다. 귀양 온 지 3년째, 또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이런 풍광을 대한다면 어떤 기분이 될까? 최소한 누구라도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동파는 즐겁다고 말한다. 사실은 그 자신도 처연한 심정인데 애써 이렇게 말하는 걸까? 아니면 뭔가 즐거운 요인을 찾아낸 것일까?


[주 3]

▶ 스토리의 전개가 무척 빠르다. 제1단락은 전반부의 풍광 묘사와 후반부에 세 사람이 등장하여 각기 한 마디 씩 하는 걸로 구성되어 있다. 동파는 "오늘 밤, 이대로 보내기가 섭섭한데?" 나그네는 "안주는 있는데 술이 없네요." (술 한 잔 할까요? 그런 말은 생략.)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상의하니, "그럴 줄 알고 꼬불쳐놓은 게 있쥬." (이야, 역시 우리 마누라가 최고야! 그런 반응은 생략.) 그리고는 바로 적벽으로 유람을 나간다. (어디 가서 마시지? 그런 상의는 생략.) 설명은 생략되었지만 그 여백 덕택에 독자는 더욱 많은 장면을 떠올린다. 


[주 4]

▶ 水落石出: 강이나 계곡 물의 수위가 낮아져서 바닥에 있던 바위가 드러나 보인다는 말로, 구양수가 <취옹정기 醉翁亭記>에서 최초로 사용한 표현으로, 후세에 겨울 풍광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요새는 '은폐했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로 더 많이 사용한다.


▶ 山高月小, 水落石出: 여기서 高, 小, 落, 出은 모두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로 사용된 것이다. 단순히 산이 높고 달이 작은 것이 아니다. 석 달 전보다 장강의 수량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밑에서 바라보니 그만큼 산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고 달이 작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초겨울이니까 장강의 수위는 계속 낮아질 것이므로, 산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高, 小, 落, 은 모두 현재 진행형 동사가 되는 것이다. 중국어는 외형적인 모습으로 품사가 명사인지 형용사인지 동사인지 변별하지 않는다. 이렇게 앞뒤의 맥락으로 판단한다. 


▶ 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강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것도, 절벽이 천 척 높이로 솟아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초겨울이라서 강물의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수위가 낮아지면 바닥의 돌이 드러나게 되고, 또 그 물은 그 돌과 부딪치며 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겨울 산수의 그런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한 표현이다. 그 후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이 구절만 읊어도 '아, 겨울이 왔다는 얘기구나.'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만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이 구절이 학문의 깊이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주 5]

▶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꿈틀대는 이무기 괴목怪木위에 올라가 보았다: 역대의 논자들이 가장 탐탁지 않아 하는 부분이다. 갑자기 동파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함께 놀러 간 사람들은 내팽개치고, 절벽 위를 기어 올라가 위험한 바위 위에 걸터앉기도 하고, 용트림하는 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것도 오밤중에 말이다.  <적벽부>에서 우주의 철리를 설명하며 우리를 위로해 주는 동파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동파가 그린 〈고목죽석도 枯木竹石圖〉 과연 호랑이가 포효하고, 이무기가 춤을 추는 모습이다.

이 대목을 원문으로 보면 모두 3언으로 되어 있다. 낭송을 하면 매우 급박한 느낌이다. 짧은 세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이 연달아 네 번 출현하면서, 긴장과 스릴, 초조함과 속도감의 리듬이 탄생한다. 작가가 왜 이런 심리 상태가 되었는지 그 문제와는 별개로, 글로 이런 긴박감을 조성해 냈다는 것 자체가 신필神筆이라 할 만하다.


▶ 하백河伯, 풍이馮夷: 풍이는 황하의 신神인 하백河伯의 이름. 여기서는 장강長江의 신으로 사용했다. 


[주 6]

▶ 한 마리의 학鶴: 판본에 따라서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고 적혀 있어서, 그 숫자를 놓고 쟁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독자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필자는 한 마리인들 어떠하며 두 마리인들 무슨 상관있겠나 싶다.


[주 7]

▶ 순식간에: 원문에는 '수유須臾'로 되어 있으나 우리말 어감 상 '순식간'이 더 나을 듯싶어 이렇게 번역하였다. '순식息'의 '순'은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의 시간', '식息'은 '들이마실 사이의 시간'이라는 뜻으로 '순식'은 '수유'의 1/10이 되는 시간이다. 


[주 8]

▶ 《장자 莊子 · 제물론 齊物論》에 나오는 '나비의 꿈 胡蝶之夢'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 표지 그림 설명 ]

◎ 남송 시대 조백숙 趙伯驌(1124~1182)의 그림을 명대의 문징명 文徵明(1470~1559)이 모방해서 그린 <후적벽부도>의 일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https://theme.npm.edu.tw/exh107/npm_anime/RedCliff/ch/index.html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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