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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Oct 14. 2024

같은 습관의 사람들

평생 잊지 못해

 “모리와 난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어요. 친한 무리 안에 속해 있었긴 했지만, 나는 모리랑 있을 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모리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말하는 동안 그는 팔리아멘트 담배를 연신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한 개비 꺼내어 물고 불을 붙인다.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는 한 줄기로 올라가다 얼마 안가 공중에서 흩어진다. 옆 사람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모리와 같은 습관이다.


 모리와 처음 데이트한 날, 모리의 이런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지적했지만 그는 그때에만 ‘오! 미안, 미안.’ 하고 웃어넘길 뿐 계속해서 같은 무례를 되풀이했다. 나는 원래 담배연기는 물론 담배 피우는 사람 역시 싫어했으나, 그 기혐의 정도에 비해 빠르게 모리의 습관을 인정했다.


 지연은 전형적인 미남형의 얼굴이다. 하지만 그런 미남들이 풍기는 강압적인 분위기는 만들어내지 않는다. 선이 도드라지지 않은 동그란 얼굴형에 하얀 피부가 흐릿한 인상을 만드는 덕분이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별안간 마주친 그의 커다란 눈은 유난히 그윽해서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려는 듯하지만, 돌연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고 그것은 백치로 보일 정도로 가볍게 느껴진다.


 그가 담배를 끄려는지 테이블 위의 재떨이를 바라보았고, 아래로 깔린 그의 눈 밑에는 애교살인지 아님 나이 때문인지 모를 주름 하나가 생긴다. 그것이 그를 피곤해 보이게 만드는 반면, 마냥 어린 느낌은 주지 않아 마음에 든다.


 모리가 이 사람과 제일 친하게 지냈다니. 자질구레한 생필품을 쇼핑할 때에도 깐깐하게 실용성을 따지던 모리의 옆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이 사람에게서 자신의 단짝으로 삼을만한 어떤 유용성을 발견한 걸까.


 “여기 정원이 좋은데 좀 나갈래요?”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머리를 가볍게 만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나보다 한 템포 느리게 몸을 일으키더니 길을 안내하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은혜가 분위기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우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눈썰미 좋은 탐정처럼 유심히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과도한 관심의 눈초리에 압박감을 느꼈지만, 그대로 슥 지나쳐 지연의 뒤를 따른다. 흰 티를 입은 그의 넓은 등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은 손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형태였다.


 그는 현관까지 가서야 나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유리문을 열었다.

 해가 넘어간 지는 오래였으나 땅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아서 공기는 미지근한 채였다.


 “괜히 나왔나. 후덥지근하네.” 그가 무안한 듯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바깥공기 쐬는 게 건강에 좋아요.” 나도 덩달아 무안해져 지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 말한다.


 “아. 그렇죠.” 지연은 작은 목소리로 안도하고 다시 담배를 꺼내 문다.

 나는 높게 자란 버드나무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그도 나를 뒤따라 넓은 보폭으로 느리게 한발 한발 걸어온다.


 “다들 헤비스모커들이네요. 모리랑 그 주위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꺼내 물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서 때낸다.


“미안해요. 워낙 습관이라서. 다들 그래요. 다들 흡연이 습관이에요.”


 실례 불구하고 솔직하게 한마디 던지긴 했지만, 그다지 질책하는 투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는 조용한 벌판에서 천둥소리라도 들은 초식동물처럼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본다. 그 동그래진 눈을 보자 자연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분 나빠서 말한 거 아니에요. 진짜 기분 상했으면 상대한테 말 못하죠. 담배연기는 이미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그냥 가볍게 말 한 거예요. 미안해요.”

 말 한마디에 어색해진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재빨리 이야기의 주제를 바꾼다.


 “정원 관리는 은혜 선생님이 다 하시는 건가요?”


 “전체적으로 은혜 누나가 관리 하긴 하는데, 워낙 크기도 하고 여자 혼자하기엔 힘든 일이 많으니까 전문 업체에서 아저씨 몇 분이 나오세요. 누나가 까다로워서 아저씨들 항상 고생이 많아요.”


 “하긴 혼자 하기에는 규모도 크고 하나하나 신경 쓸 것도 많긴 하겠어요.”

 “그죠. 그래도 식물들은 공들인 만큼 보답을 하는 거 같아요.”


 음력 보름 즈음인지 달은 살짝 찌그러진 동그라미이다. 달빛으로 푸르스름해진 정원의 흙 위로 나와 내 옆에 나란히 선 그의 그림자가 비춰진다. 그의 그림자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향하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다가, 별안간 허리께쯤 오는 수국의 하늘색 꽃잎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손을 뻗을 뿐, 가까이 가져간 채로 멈춰 있다가 단념한 듯이 손을 내린다. 난 그것을 빌미로 그를 바라본다.


 “담배 핀 손으로 꽃을 만지는 건 실례겠죠.” 그는 무표정으로 웃지도 않고 서있다. 웃지 않는 그의 얼굴은 화난 것처럼 보였고 그것에 동요된 나의 마음은 조금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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