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화목한 시간

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by 새아

어느 때와 같이 6시 조금 넘어 잠에서 깼다.


침대를 정리하고 푸르스름한 창밖을 적막 속에서 보고 앉았다. 잠이 조금 모자란 듯 눈꺼풀이 무거웠으나 다시 눕는다 해도 소용없이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한번 잠에서 깨면 그걸로 그날의 시작이다. 팔벌려뛰기를 몇 번해 몸을 풀고 방 밖으로 나와 식탁을 바라보았다. 말끔하게 치워진 빈 식탁은 변태한 동물이 벗어놓고 간 허물 같았다.

새벽에 사둔 바나나와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먹고 8시에 집을 나섰다. 나오기 전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B를 억지로 일으키고 씻기 시작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눈도 못 뜨고 잠이 덜 깬 B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지각하는 일 없었다.





금요일의 출근길은 다른 요일보다 도로가 한산하다. 내가 일하는 Y성형외과는 아침 10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첫 타임 수술도 오픈과 동시에 10시에 시작하므로 나는 매일 9시 전 병원에 도착해 수술을 준비한다.

병원에 들어서 원장 선생님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간호사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 병원의 마취과 간호사는 나 혼자이고, 역시 한 명뿐인 마취과 전문의 선생님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마취과 선생님은 항상 내가 출근한 후 20분 뒤 병원에 도착했다.


그녀는 3살짜리 남자아이 현이의 엄마로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 후 수술 시작 전 30분 간이 그녀가 여유를 되찾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 병원에서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다. 비슷한 나이 또래이기도 하고, 함께 일 한지 5년째이니 일과 일상을 서로에게 공유하곤 한다.

“현이가 아침에 열이 있길래 등원 못 시키고 어머님한테 연락드리려다가, 간신히 열이 좀 내려서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왔어.”


사무실에 가방을 내려놓은 그녀가 휴게실로 나왔다. 아침에 그녀와 나는 휴게실 테이블에서 만난다.

“6시까지 괜찮겠어? 오늘 일찍 나가봐야 하는 거 아냐?”


그녀는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이 못 오시거나 아이가 아플 때는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하곤 했다.

“선생님이 연락 주신다고 했는데 상황 봐야겠어.”

“친구들이랑 있다 보면 상태 좋아질 수도 있겠네. 현이는 친구들이랑 노는 거 좋아하잖아.”

“맞아. 자기 아빠보다 친구를 더 좋아해. 하원시킬 때 가끔 아빠가 가면 친구들이랑 놀다가 모두 돌아가고 나서야 맨 마지막에 나온대.”

“아빠가 워낙 바쁘시니까 아들 얼굴 볼 일이 너무 없어.”

“응. 주중에는 거의 못 보고, 주말에는 골프 아니면 친구들이랑 약속이잖아. 아들한테 자기가 해준대로 받는 거지 뭐. 그 탓에 나만 힘들어.”

“그래서 현이가 엄마만 좋아하잖아.”

“그니까,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렇지. 커서 학교 가면 현이도 바빠질 텐데, 그전에 아빠 하고도 더 친해지면 좋겠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양육 계획이 뚜렷해 현이의 유년시절은 학업으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그전에 그녀는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쌓고 싶어 했다. 퇴근한 이후 그녀의 시간은 아들에게 저녁을 만들어주고 영어동화를 읽어주는 둘만의 화목한 일상으로 채워졌다.





퇴근해 집에 도착하고 나서 다시 외출할 채비를 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소파에 앉아 있으니 머지않아 B가 돌아왔다. B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함께 집을 나섰다.


집에서 걸어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M레스토랑은 프랑스 요리를 파는 곳으로 자체 개발한 메뉴가 많아, 이곳에서만 만드는 음식을 먹기 위해 자주 가게 되는 식당이다.


자리를 안내받고 메뉴판을 보자 새로운 시즌 요리가 올라와있었다. 봄철 한정 메뉴들에 원래 먹던 메뉴를 시키고 샴페인 한 병을 주문했다.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 큰 프로젝트가 있어서 설계부터 합류하기로 했어”

메인디쉬까지 주문한 메뉴가 모두 서빙되고 샴페인을 몇 모금 마시자, 오늘따라 유난히 말수가 적던 B가 갑작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적당한 타이밍이 될 때까지 머뭇거리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몇 번을 고민했을 그였다.


예상치 못한 선언이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채끝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면서 대답했다.


“학교에는 이야기했어? 회사에는 계약 끝나는 대로 12월부터 들어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