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짧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B는 건축사무소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도 설계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였다. 나는 B가 일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직 업체 선정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우리 둘은 그가 만든 연구단지가 현실화되는 것이 기정사실인 듯 여기고 있었다.
“우리 설계안이 유력해. 외국 건축가와는 소통 문제도 있고 대규모 프로젝트라 공사가 끝나기까지 장기간 국내에서 거주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거야. 건축가가 현장에 있지 않으면 설계와 다른 방향으로 일이 결정되는 경우가 매일 같이 일어나. 우리는 건축가가 국내에 있을 수 없을 때 생기는 문제들을 강조할 거야.” B는 자신 있게 말했다.
B뿐만 아니라 영일과 그의 다른 직원들도 막바지 설계 작업에 집중했다. P시 관계자들과의 미팅에서는 영일이 설계안 발표를 하기로 했다. 영일은 신뢰 가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수주받는 것에 플러스 요소가 됨이 틀림없다. 영일의 회사에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면 몇 년 동안 B는 그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직업에 열정을 쏟은 경험이 없었다. 일은 일상 중 하나로,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루틴이었다. 하지만 그 루틴으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는 항상 감사했다. 지속가능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매일 나의 역할을 하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면 그 안에서 성장 없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와 주변이 변한다. 그 흐름에 맞춰 살아내는 것은 여간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었다.
내 몸의 변화 때문에 휴직하고 당분간 쉴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일을 쉰다고 해도 내 몸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술도 무사히 끝났고 이제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담담하게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예전에 난소 적출 수술받은 언니 얘기 했었잖아. 그 언니가 요즘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 모임에 나가고 있대. 성별이 없어지는 병이 있다고 했잖아. 혹시 자기도 관심 있어요?”
마취과 선선생님이 함께 점심을 먹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모임은 어떻게 나가게 되셨대? 나도 나가보고 싶어요. 나도 같은 병이거든요.”
지금이 아니면 그녀에게 얘기할 타이밍을 놓쳐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문으로 퍼져나가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자기 얘기 듣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 언니 연락처 줄게요.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딸도 지금 유학가 있어서 시간도 많고 집에 여유도 있는 언니거든.” 그녀는 바로 나에게 연락처를 보내왔다.
“그리고 남편은 연구원인데, 이 현상 관련해서 프로젝트를 맡았다나 봐요.”
그녀가 비밀 얘기를 하듯 한층 목소리 낮춰 말했다.
“연구가 시작된대요?”
나의 병이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다나 봐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A도 좀 마음 놓아요. A는 혼자가 아니고 이제 연구를 시작한다니 해결책이 나올 거야.”
그녀는 나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이 나의 불안을 안정시켰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간 많이 불안했거든요.”
“응. 이제 언제든 그 언니와 나에게 상의해도 되니까. 자기 남편은 알고 있는 거지?”
“응. 처음 진단을 받을 때부터요. A는 자신이 불임이니 아이를 갖는 거에 대해서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일이 바빠서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잘 됐어요.”
“아, 맞아. 그래서 프로젝트 결과는 언제 나온대?”
“다음 달 중순이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잘 됐으면 좋겠다. 아무튼 그 언니한테 연락 꼭 해봐요.”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여자 1과 2가 얘기했던 대로였다. 병원에는 오래 걸리는 검사가 아니니 아무 때나 와도 괜찮다며, 오기 전날 미리 연락만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취과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번호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며칠 뒤 딸이 있는 호주로 한 달간 떠난다고 했고, 가기 전 얼굴을 보고 싶다며 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녀와는 내일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흘러가는 물살처럼 정신없이 느껴졌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