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2024.11.03.

by 이영수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청량산은 해발 172m의 소박한 높이로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이다. 이 산의 정상에 서면, 서해 바다와 인천 항구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청량산은 등산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인천둘레길 9코스의 일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편,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동명의 청량산1)은 해발 870m 높이로, 험준한 암릉과 웅장한 봉우리들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청량사2)와 하늘다리 등의 볼거리가 있어,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힌다.


오늘은 경상북도 봉화의 청량산을 채움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탐방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인천의 청량산과 봉화의 청량산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등산을 통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원효대사, 최치원, 김생, 퇴계 이황 등이 수행하며 학문에 정진했던 곳으로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조선 12대 명산 중 하나로 꼭 사면의 석벽이 높고 위엄이 있으며 기이하고 험준하다’고 평하였다.


산행을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며, 카카오택시를 호출해 산악회 버스 탑승지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도 설렘은 가득했다.


버스에 올라서는 순간, 눈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 옆 좌석에는 인형을 꼭 안고 잠든 어린 소년이 있었다. 선학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최종 인원 확인이 이루어지는 동안, 소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어머니를 따라 산행에 참여한 소년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했다. 나와 무려 54살이나 차이 나는 그는 내가 산악회에서 만난 가장 어린 참가자였다. 그의 용기와 호기심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오늘의 등산은 선학정에서 시작하여 응진전, 풍혈대, 총명수, 어풍대, 김생굴,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하늘다리, 장인봉, 뒷실고개, 청량사를 지나 선학정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예상 등산 거리는 약 8km, 예상 소요 시간은 휴식을 포함해 약 4시간이었다. 하지만 선학정에서 청량산박물관 앞 버스 주차장까지 약 2.5km, 35분을 이동하고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5시간 25분 동안 약 10km를 걸었다.

선학정에서 버스를 내려 약 1km 거리의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길을 걸어 입석 주차장에 도착했다. '평지에 솟은 바위'라는 뜻의 입석 안내판에는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가 새겨져 있었다. 이황은 청량산에 대한 시를 51편 지었다 한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峯)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뿐이로다

백구(白鷗)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입석(立石)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라 불리는 등산로의 시작점인 입석에서 약 100m를 올라 응진전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을 노란색과 붉은색 단풍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금탑봉 중간 절벽에 자리한 청량사의 부속 건물인 응진전은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이 함께 있었으며, 주변에는 작은 텃밭과 약수터도 있었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
응진전

응진전에서 약 700m를 이동하여 데크 계단을 30m 올라 '바람이 통하는 문'으로 알려진 풍혈대에 도착했다. 이곳은 신라 시대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독서와 바둑을 즐겼던 곳이다. 최치원이 수도하며 마셨던 물로 인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총명수를 지나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라고 전해지는 축융봉을 마주할 수 있었다.

풍혈대
축융봉

금탑봉 중층에 위치한 '어풍대'는 내외 청량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기서는 청량사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었다.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 잡은 청량사가 한눈에 들어오며, 정면에는 연화봉이 우뚝 솟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문필봉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길은 원효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경로였다.

연화봉과 청량사
청량사

김생굴은 경일봉과 금탑봉 사이에 위치한 넓은 천연 암굴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김생이라는 인물이 이곳에서 10년 동안 글씨를 연습했다고 하여 김생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김생굴 옆에는 김생이 글씨를 연습할 때 사용했던 물로 붓을 씻고 마셨다는 김생폭포가 있었다.

김생굴
김생폭포

김생굴에서 자소봉으로 가는 길 중간쯤부터 아침 내내 흐렸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김생굴에서 약 600m 떨어진 자소봉 갈림길에 배낭을 풀어놓고 가파른 길과 급경사의 철제 계단을 따라 50m를 올라 자소봉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소봉의 정상은 오를 수 없었고, 정상석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소봉

자소봉에서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하늘다리 방향으로 약 100m 이동을 하니 정면에 ‘생김새가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해서 주세봉이 이름 붙인 ‘탁필봉’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탁필봉

탁필봉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연적을 닮은 연적봉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탁필봉과 자소봉을 일렬로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을 볼 수 있었다.

연적봉예서 바라본 탁필봉과 자소봉
연적봉에서 바라본 풍경

연적봉에서 내려와 하늘다리와 장인봉 방향으로 향했다. 연적봉에서 뒷실고개로 내려가기 위해 엄청나게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뒷실고개에서 약 20m를 올라 자란봉에 이르러, 해발 800m, 높이 70m, 길이 90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산악 현수교인 하늘다리에 도착했다.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청량산 계곡의 가을 풍경은 사진이나 말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란봉에서 바라본 하늘다리
하늘 다리
하늘다리 아래 계곡
하늘다리 아래 계곡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조망

하늘다리에서 약 200m 떨어진 장인봉 갈림길에서, 가파른 경사를 약 200m 올라야만 장인봉에 오를 수 있었다. 모든 산이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듯이, 비록 길지 않지만 가파른 철제 계단을 통해 청량산의 정상인 장인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량산의 장인봉 정상은 기대와 달리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정상에서 약 50m 떨어진 전망대에서는 낙동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모습과 함께 능선 위에 펼쳐진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청량사로 가기 위해 하늘다리를 지나 뒷실고개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가는 데크 계단으로 되어 있는 가파른 경사길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청량사에서 공민왕이 친필로 쓴 유리보존과 지불을 볼 수 있었다. 유리보존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고, 지불은 원래 종이로 만들어진 부처상이지만 현재는 금칠이 되어 있다고 한다.


청량사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유리보존을 비롯해 보호수 소나무와 5층 석탑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유리보존
청 량사 오층석탑

이후 날머리인 선학정으로 내려가면서 지리산 백중종주 때와 같은 긴 여정의 하산을 시작하였다. 날머리인 선학정에서 2.5km를 더 이동하여 청량산박물관 앞에 위치한 하산식 식당에 도착해서 청량산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청량사 경내
청량사 일주문

청량산박물관은 청량산과 조선시대 유산문화에 특화된 박물관으로, 봉화군의 역사와 인물, 민속자료의 전시뿐만 아니라 향토사 연구 및 교육활동도 병행하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유익한 탐방문화를 제공하고 있었다.


1)청량산: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 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청량사도립공원홈페이지


2)쳥량사:청량산 한 가운데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동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고찰로 한때는 연대사를 비롯한 27개의 암자가 있어서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증·개축하였다고 전해져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물의 구조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포계인 듯하면서 주심포계와 절충한 양식을 하고 있어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공포는 외1출목 내 2출목의 형식으로 첨차의 짜임이 고졸하고 쇠서의 내부 끝은 연화 및 용수형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정면 중간기둥위에는 용두와 용미를 주두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다. 내부는 판상이고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천장에는 운궁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건물의 큰 보 밑에 간주를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특징은 다른 건물에서 보기 드문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불단에는 건칠불로 알려진 약사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인 지장보살과 문수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온다.

[출처] 청량산도립공원 홈페이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