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 가스 빼기

빵반죽의 글

by 흘흘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을 떠올리면 거의 동시적으로 엄마한테 엄청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뒤따르는데 그저 엄마가 '필요'한 순간을 떠올릴 때라 그런 거 같아. 근데 그 순간은 이제 과거의 일이지.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했던 일들이 아니라 이미 과거 시점에서도 그보다 더 과거의 일이었다는 거라. 그러니까 몇 년 전, 본가에서 살던 2019년 이전의 일들이니까- 그때 빵 반죽을 하고 외출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단 말이야. 가급적 빵은 내 손에서 다 해결했었지만 일교차가 커져서 온도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오르거나 하면 반죽이 과발효되어서 부풀다 못해 꺼진단 말이지. 그럼 빵이 나중에 제대로 안 부풀어. 그때 나는 엄마한테 '반죽 가스 좀 빼고 냉장고에 넣어줘'라고 문자 보내거나 반죽 상태 어떤지 사진 좀 찍어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었어. 엄마는 그래, 하고 폰카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었지. 엄마도 젊은 엄마 시절, 움터골에서 뒷집 부부가 DIY로 제작한 솥으로 식빵을 만들었던 시절이 있어서 빵반죽에 대해 잘 알았지. 나 혼자 살고부터는 그냥 처음부터 냉장고에 넣어서 발효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조절했었는데 마음 한켠으로는 어쩌다 한번은 밖에다 내놓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래도 어쩌다 한번은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마음이, 본가가 아닌 서울 집에서조차 남아있었던 것 같아. 가끔 아침에 일어나 밤새 과발효되어서 가스가 꺼진 반죽을 보는 일은 혼자 살던 중에도 가끔 있던 일들이지만 이젠 갑자기 그때 생각들이 나. 이제 그런 부탁을 들어줄 사람은 없어, 그래도 어쩌다 한번도 이젠 없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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