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될 모든 순간

by 흘흘

제가 명상을 하면서 느낀 바는 명상이 미래의 언젠가 내게 안길 어떤 효용을 생각하면서 하려고 하면 그냥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거였어요 명상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괴로운 마음들이 많지만 명상을 할 때 그런 마음이 해소되길 바란다는 생각(기대)을 하는 건 명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상하긴 하지만 명상은 모든 판단이 없는 상태가 이렇게 괴로운 와중에도 우리에게 결국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결국 그렇게 울고불고 하다가도 어느샌가 창밖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이 있을 수 있고 바람소리에 갑자기 마음이 놓이는 순간을 내가 인정하고 아니고를 떠나 갑자기 맞닥뜨리기도 하고 하지 않아요? 명상에서 늘 지금에 집중하라는 말은 결국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이것도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다는 것이지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것은 그냥 지침 정도로만 '눈치채는' 수준일 뿐, 거기에 또 매달려서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고 아등바등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도 대부분의 시간은 명상이 잘 안 되는데 아마도 뭔가 갈급하는 마음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그런 마음들 때문이겠죠. 결국 명상하는 모두가 하는 말이지만 벗어나고자시고 할 게 없어요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벗어나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나는 로마시대의 예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그 시대에서는 볼 수도 없던 명상의 의미를 전파했을지 짐작해보기도 해요. 내가 저 산 더러 바다로 던져져라라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리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매우 명상적이에요.

결국 명상은 명상을 하려는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의 명상화를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의 본질이 뭘까요? 늘 그렇지는 않지만 내게 있어서 그 일을 통해 온전한 지금을 체험할 빈도 수가 각별히 높아서가 아닐까요? 시공과 내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고요하고 나라는 존재조차 희미해져서 무언가를 판단할 여지도 없는. 하다못해 그릇을 씻는 순간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순간, 나물의 줄기를 꺾고 다듬는 순간, 어딘가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순간에도 문득 그런 걸 느낄 수도 있죠. 결국 좋아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위계도 사라지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명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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