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열두 개의 변주 (8)
로댕의 다른 유명한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그의 모뉴멘탈한 미완성 거작 <지옥의 문>의 한 부분으로 스케치되어 발전된 것이다. 부둥켜안은 두 연인의 주제는 로댕이 여러 작품에서 다루었던 주제이긴 하지만, 두 인물은 본래 단테의 '지옥편'에 나오는 비운의 두 연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였던 것 같다. (…) <키스>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이 작품의 주제가 너무나 기본적이고 원형적이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로댕의 방법이 야하고 감상적이며 심지어는 저속하게까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낭만적인 사랑의 이상적인 표현으로서 이제까지 그 누구도 표현하지 못했던 감각과 정신의 본질 모두를 포착해 내고 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든지 두 인물은 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움직임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둘을 떼어 놓거나 잊을 수 없도록 한다. 어쩌면 로댕은 이렇게 사적인 애정을 대담한 공공 조각의 영역으로 고양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조각가였을 것이다. (주1)
데이비드 파이퍼가 제시하고 있는 세 번째 주제는 '연인의 쌍'이다. 이 소제목은 원문에서는 'Couples'라고 간결하게 적혀 있는데, 1990년대에 출간된 한국어판에서는 '남녀의 쌍'으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꼭 '남녀'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늘날의 소위 계몽된 시선으로는 부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남녀'를 '연인'으로 바꿔서 표기하기로 했다. 사실 이것은 후술하겠지만 우리 근대미술에서 연인의 도상 자체가 너무나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명 범위를 넓히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기도 하다.
첫 번째 주제인 '인간의 신체'와 두 번째 주제인 '인간의 얼굴'은 개개 인간의 구성 요소와 성격을 드러내 주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 다음으로는 이 개개의 인간이 다른 인간과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상황이나 모습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의 서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개개의 인물을 다룬 초상화들은 보는 사람과 작품 사이를 1:1 대면 관계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작가가 회화 공간이나 조각 공간 내에 하나의 상이 아닌 미묘한 관계 속에 있는 여러 인물들을 묘사해야 되는 경우 문제가 한층 복잡해진다.'(주2) 이때의 최소 단위가 바로 한 쌍을 이루는 두 명의 인간일 것이고, 특히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계가 바로 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연인을 다음 주제로 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그의 글에서는 '사랑'의 표현 문제와 '성'의 표현 문제라는 두 가지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사랑과 성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문제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먼저 사랑의 표현 문제를 다루면서 그는 부부의 초상을 주로 다루어 설명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부부의 초상은 뒤에 설명되는 성을 다룬 작품들에 비해 한결 덜 직설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소위 플라토닉한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사랑의 진지함을 더 강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오래 사귄 부부가 흔히 그렇듯이 한결 평범해 보이는 모습 속에 오히려 깊은 사랑이 들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등장하는 결혼식과 같은 공적 상황에서의 부부 초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등장하는 영정사진을 연상케 하는 경직된 부부 초상은 이를 표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두 가지 도상이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뒤러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이 그린 아담과 이브의 상을 비롯해,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이나 렘브란트의 <유태인 신부>와 같은 작품은 전자의 경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 꼽힌다. 반 아이크와 렘브란트의 작품 속 부부는 그저 손을 맞잡고 있을 뿐인데도 진실한 사랑의 전범을 가장 뚜렷하게 이루고 있다. 한편 현대의 전형으로 언급된 헨리 무어의 <왕과 왕비>나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의 경우, 후자의 영정사진식 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현실감을 가미해 마치 가족사진을 볼 때처럼 일견 딱딱한 구성 속에 부부의 정감을 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인도의 회화를 비롯한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 우리는 플라토닉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소 구별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순진무구한 즐거움이다. 사랑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반드시 에로티시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작품들을 볼 때, 우리는 이른바 인간미를 느끼게 되고 저것이야말로 어쩌면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사랑은 무게감 있는 모습이나 평범한 모습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래야 하기도 하다. 하지만 즐거움이야말로 사랑을 하는 가장 확실한 목적인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사랑의 모습을 정신적 또는 사회적인 도상으로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쾌락적 또는 개인적 도상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곧바로 성의 문제와 이어지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은 정신적인 동시에 쾌락적이고 사회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로 모습을 결정 짓고자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랑을 쾌락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면 성을 표현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로티시즘 대신 플라토닉을 취하고자 할 때 성은 골칫거리처럼 여겨지기 쉽다. 서구 미술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육체적 사랑의 현실성을 묘사하는 것은 서구 미술가들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일로 잘못하면 외설적이 되거나 우스꽝스럽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주3).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모순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앞서 서구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누드였음을 살펴본 바 있다. 종교화와 같은 상당히 공적인 주제에서 누드의 사용은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생활에서 누드를 가장 많이 접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테마에 오면 누드는 곤란한 소재가 되는 것이다. 논리의 비약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면, 이러한 모순은 서구 미술에서 에로티시즘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어떤 관음증적인 시선을 조장한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쿠르베의 <잠>과 같은 작품은 성적인 즐거움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예외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히며, 위에서 소개된 로댕의 <키스> 역시 이와 비슷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육체적 사랑을 곧이곧대로 표현하기가 꺼려지던 서구 미술의 사회상 속에서, 성의 문제는 오히려 현실적인 면면을 다루는 쪽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성행위 직전과 직후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18세기의 윌리엄 호가스의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현대에 와서는 성을 주제로 다루면서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없이 표현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뭉크와 실레의 작품이 꼽히고 있다. 결국 서구 미술의 전통에서 플라토닉한 사랑과 성적인 테마는 거의 극단적인 불화와 양립하는 작품의 양상을 낳은 셈이다.
사랑이나 성과 같은 소재는 우리 쪽에서도 꾸준히 풍미된 바 있다. 이 중 조선시대에는 부부 초상화와 사랑 소재의 풍속화가 각기 발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중 초상화의 경우 여성 초상화가 한동안 거의 그려지지 않다가 거의 20세기가 되어서야 다시금 등장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앞서 19세기를 풍미한 풍속화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1800년이 되었을 당시,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화 작가였던 신윤복과 김득신은 40대를 넘어갈 무렵의 나이였다. 19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이 두 화가는(주4) 김홍도의 바로 다음 세대로서 소폭 풍속화에서 각기 자기 세계를 개척해 간 작가들로, 특히 연인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각각 성적인 사랑과 플라토닉한 사랑의 한 전범을 남기고 있다.
우리 미술에서 사랑을 소재로 하여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작가는 신윤복일 것이다. 그는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을 직접적으로 자신의 주제로 채택함으로써 기존의 풍속화의 영역을 확장시킨 공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새삼 강조될 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의 시도는 풍속화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을 방패로 삼아, 현실의 여러 부정한 행위들을 그려도 된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실을 더욱 있는 그대로 긍정한 그의 태도는 풍속화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연인 소재와 같은 새로운 소재들을 본격화한 업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월하정인>을 필두로 한 그의 2인 풍속화는 사랑의 즐거움을 그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도 직접적이고 훌륭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윤복과 활동 시기가 거의 비슷한 김득신은 신윤복만큼 개성적인 주제를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신윤복이 즐겨 다루었던 주제 밖에서(즉 전통적인 주제 가까이에서) 새로운 보충을 하고 있다. 그의 거의 유일한 부부 소재의 작품인 <파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 속의 부부는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신윤복 작품에 그려진 어떤 연인들보다도 일심동체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풍속화의 세계에서 표현될 수 있는 플라토닉한 사랑의 극치를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으며, 신윤복의 작품 못지않게 불멸의 도상을 이루고 있다.
19세기를 여는 신윤복과 김득신의 풍속화는 이후 19세기 중반과 후반에도 나름대로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신윤복에게서 그 효시가 엿보이는 성적 소재의 취득은 이후 1장에서도 언급했던 성풍속도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시대 미술의 흐름에서 성풍속도의 등장은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신윤복 이후 이루어진 풍속화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이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현실의 단면으로서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신윤복 이후, 이러한 인식은 점차 발전하여 결과적으로 성행위 또한 현실의 모습이며 작품으로 다루어서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 쪽의 성풍속도가 성의 어두운 측면이 아닌 긍정적 측면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구 미술에서는 누드를 그렇게 중시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사랑 소재에 접목시키는 데에는 곤란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성행위와 관련된 어둡거나 우스꽝스러운 현실적 감정들을 다루는 쪽으로 이어졌다. 반면 우리 쪽에서의 성풍속도의 경우 목적 자체가 모범적인 사랑과 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쪽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서구에서처럼 사랑의 문제와 성의 문제가 별로 구분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 덕분에 한국의 성풍속도는 성을 소재로 한 세계의 여러 미술작품 중에서 가장 건강한 축에 속하는 것으로 꼽히곤 한다.
19세기에 이렇듯 성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성풍속도가 등장한 것에 비해, 같은 시기의 일반 풍속화로 가면 오히려 연인 소재의 채택이 점차 뜸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가령 19세기 중후반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화 작가라고 생각되는 유윤홍이나 백은배의 경우를 보면, 화풍에 있어서는 신윤복과 같은 조선 후기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지만 연인 소재는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 엿보인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백은배의 <탄금야흥> 같은 작품 정도에서만 그 영향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당시의 주류적 화풍과는 거의 무관하게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김준근의 풍속화로 가면 사정은 더더욱 그렇다. 그의 그림들은 거의 기록화에 가까운 것이어서 인물의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화첩에는 <신부신랑 초례하는 모양>이 실려 있지만, 이 그림에는 연인의 감정을 연상시킬 만한 어떠한 장치도 없다.
19세기의 서민 사회를 풍미했던 또 다른 장르인 민화로 가면 몇몇의 새로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사랑과 연인을 소재로 다룬 대표적인 민화 작품으로는 경희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10폭으로 된 <춘향도 병풍>을 들 수 있어 보인다. 이몽룡이 그네를 타던 성춘향의 신상을 알아보는 장면으로부터 이후 사또 변학도를 단죄하고 재회하기까지의 각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의 화풍은 물론 화원화가의 작품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민화로서는 그럴듯한 인체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병풍의 가령 네 번째 폭은 출세를 위해 이몽룡이 성춘향을 두고 떠나가는 장면으로 그래도 상당히 직접적인 연인의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전문 화가의 작품을 보고 구도를 참조한 것이라고 생각되며 소재만 놓고 보면 훗날 이중섭의 <돌아오지 않는 강>을 연상케도 하지만 작가의 기량의 한계 때문에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병풍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주인공들의 사랑에 관련된 장면이 아니라 변학도의 연회가 이몽룡에 의해 박살이 나는 여덟 번째 폭이라고 생각된다.
이 밖에 무속화에서도 몇 점의 독특한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맹인부부상>과 같이 설화 속 범인(凡人)들을 무속 신으로 설정한 일련의 부부상들은 기량이 많이 떨어지기는 하나 일반 초상화에 비해 한결 자유로운 자세가 구사되고 있어 재미있게 느껴진다. 또한 이례적으로 수염이 없는 미남 미녀의 모습으로 그려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일월성신도> 역시 비약이 허락된다면 일종의 연인 도상을 이루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설화에서 소재를 얻은 부부상과는 달리 이 작품의 경우 일월성신 자체의 모호한 성격에 기반하여 남성과 여성 모두로 해석될 수 있을 만한 중성적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주5)
1) 데이비드 파이퍼 외, 손효주/유시주/양건열 역, 『미술의 이해』(시공사, 1995), 34쪽.
2) 위의 책, 37쪽.
3) 위의 책, 38쪽.
4) 신윤복의 기년 작품 중에서 제작 시기가 가장 내려가는 것은 1811년과 1817년의 작품들로, 그의 사망 시기가 1810년대 이후임을 가리켜 준다. 황효순, 「혜원 신윤복 연구」(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49~50쪽.
5) 김태곤, 『한국무신도』(열화당, 1989) 참조.
도판 출처:
1) 김준근, <신부신랑 초례하는 모양>: 우리역사넷 홈페이지
2) <춘향도 병풍>: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