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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09.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대전시 유성구 신성동 숯골원냉면]

북한에서 30년, 남한에서 70년. 4대 100년 역사의 냉면 노포집

그늘에 앉아 숨만 쉬고 있어도 주르륵 땀이 흘러내리는 한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쭉 들이키는 냉면 육수의 상쾌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흔히들 냉면은 겨울 음식이라 이야기하지만 요즘과 같이 봄햇살이 점점 날을 벼려 날카롭게 살갗을 쬐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 또한 냉면이기도 하다. 이런 냉면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은 급기야 2000년 대로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냉면 열풍까지 불었고, 이 열풍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냉면의 역사와 유래는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니나 문헌상으로는 조선조 24대 왕인 현종 시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서 그 기록을 볼 수 있는데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관서지방의 냉면,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의 맛이 가히 일품이다"라는 기록이 대표적이며 이후의 기록에도 간간히 등장한다. 초빼이가 보기엔 냉면이라는 음식이 처음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시절은 바로 1920~30년대부터이다.  


냉면의 고향이라는 평양에는 19세기 후반부터 냉면만 파는 냉면 전문식당이 생겨났는데 1920년대에 이르러서 냉면전문 식당들의 단체인 '평양면옥상조합'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또한 평양의 냉면집들은 외연적 확장을 거듭하며 경성(서울)까지 진출, 부벽루(낙원동), 백양루(광교와 수표교 사이), 동양루(돈의동)등이 당시 유명했던 서울의 냉면전문 식당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평양냉면상조합'에 가입한 냉면집의 수가 무려 24개에 달했고 배달 종업원 수는 279명에 달했으며, 1920년대 말 서울 청계천 인근에는 40여 개 이상의 면옥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평양냉면의 인기는 지금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이런 냉면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개기는 바로 한국전쟁이다. 이북에서 많은 피난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며 생계를 위해 자신들이 평소에 먹던 음식인 '국수(냉면, 이북에서는 냉면을 국수라 불렀다.) 집'을 내기 시작했고 그대로 남한의 여러 지역에 자리 잡으며 냉면 노포가 되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들었던 전쟁은, 그것을 피해 남하한 피난민의 유입으로 이북의 문화가 우리나라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원인이 되었으니 이런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대전에도 이런 냉면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을 운영해 온 냉면집이 하나 있다. 전쟁을 피해 남하한 3대 대표가 대전에 자리를 잡으며 세운 냉면집 '숯골원냉면'이 바로 그 집이다. '평양면옥상조합'이 생겨날 정도로 냉면집들이 많이 생겨났던 1920년대 평양에서 '모란봉 냉면'을 열고 2대에 걸쳐 냉면집을 운영하던 곳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남한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4년 대전 숯골(탄동면)에 자리를 잡고 영업을 시작한 후 현재는 4대째 사장님께서 운영하고 계시는 평양냉면 노포 중의 노포. 원조 평양냉면집으로서 '정통성'을 따지자면 이 집도 빼놓을 수 없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 숯골원 냉면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산해진 주차장만큼이나 매장도 여유로운 시간. 바쁜 점심시간을 보내고 직원들도 모여 한숨 돌리는 그런 시간이었다. 직원들을 쉬게 하고 사장님께서 직접 맞이해 주신다. 평양냉면 하나와 만두 한 접시, 그리고 소주 한 병. 대전 취재 중 첫 끼니였다. 가벼운 찬이 테이블에 오른다. 직접 무를 썰어 만든 절임무와 김치만으로도 충분히 냉면 밥상은 충분했다.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밍밍하지도 않은 이 집의 절임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시큼한 절임무 몇 조각에 금세 입맛이 돌아오며 시장기도 돌기 시작했다. 


평양식 만두가 먼저 나왔다. 여백의 미를 살리고자 한 것인가? 큰 접시 위에 자리 잡은 만두는 단 4개. 

순간 '어? 지방 인심이 이렇게 박했던가?'라고 생각을 하다 만두 가격이 8천 원이라는 기억을 재빨리 끄집어냈다. 요즘 서울의 괜찮은 평냉집의 만두 한 접시는 5~6톨 정도 올려주면서 1.4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까지 받으니 이 집의 만두값은 그야말로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일 가격이다. 초빼이가 좋아하는 서울의 어느 냉면집은 마눌님과 가볍게 식사 겸 술자리를 해도 10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제대로 된 냉면집에서 식사와 술자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빈부의 격차를 가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조금은 서글퍼진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잠시나마 오해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만두를 집어 들었다. 초빼이의 주먹보다 조금 작은, 꽤 큼직한 체구를 가졌다. 반투명의 만두피가 에워싼 속을 힐끔힐끔 훔쳐본다. 이윽고 코에 대고 만두의 향을 맡아본다. 잘 쪄낸 만두피 본연의 향과 함께 으깬 두부 냄새가 고기향에 숨어 슬그머니 올라온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무니 고기향보다는 두부의 향이 먼저 입 속을 맴돈다. 적절하게 간이 되었지만 과하지 않다. 이 집의 만두도 담백함이 무엇보다 앞섰다. 양념장을 덜어 만두에 뿌린 후 다시 한 입. 적절히 간이 밴 만두가 꽤 수준급이다. 두부, 당면, 숙주, 부추, 양파, 돼지고기 등의 배합이 좋아 수준급의 만두가 되었다. 

일단 시작이 좋다.  


두 번째 만두를 집어 드니 냉면이 나왔다. 사실 이 집에서는 꿩냉면을 먹으려 했으나,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하다가 일반 물냉면을 주문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주방으로 주문이 들어가고 난 후. 주문을 바꾸기엔 조금 애매했고, 쉬면서 식사를 하는 종업원분들을 번거롭게 만들기 싫어 꿩냉면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달달한 꿩 육수와 탄탄한 식감의 꿩고기를 먹을 이렇게 놓쳐버리다니. 아직은 꿩냉면과 연(緣)을 잇기에 들인 정성이 부족한 듯하다.  


보통의 평양냉면집과 다르게 숯골원냉면은 냉면 육수로 닭육수와 동치미를 배합하여 쓴다. 소고기 육수와 동치미의 조합으로 만든 육수가 소고기의 육향과 슴슴한 맛을 강조한다면 닭육수를 사용한 이 집의 냉면 육수는 자연스러운 단맛과 새콤함을 동시에 품었다. 예전에는 꿩육수만 썼으나 꿩 사육 농가가 줄고 이로 인해 꿩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닭육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꿩육수 본연의 새콤 달콤한 맛을 대체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가 닭육수로 귀결된 것 같다. 물론 별도의 메뉴로 판매하는 꿩냉면에는 아직 꿩육수와 꿩고기를 사용한다. 그야말로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와 탱자가 되었다(橘化爲枳). 

숯골원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보통의 평냉집과는 다른 고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삶은 계란을 대체하고 있는 계란 지단의 존재감이다. 삶은 계란 반쪽을 올리는 것보다 지단을 올리는 것이 더 번거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 번거로움을 택하고 차분함을 얻었다. 조금 더 멋져 보이는 지단 고명은 자칫 육수의 맛을 해칠 수도 있는 삶은 계란의 노른자를 대체하기엔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지단의 푹신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에 삶은 계란의 그것보다 더 호감을 느끼는 편이다. 


더욱이 일본의 '오야코동(親子丼)'***과 같이 계란 지단과 닭육수, 그리고 닭 가슴살까지 모두 사용하여 '부모와 자식(닭과 계란)'을 한 그릇에 담았으니 그 맛과 감정적 풍미는 더욱 풍성해지는 듯하다. 4대째 이어지는 '부모와 자식'의 대물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냉면 그릇에 담았을까?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에서 냉면집을 내며 연명해 온 선대와 후대의 숙명을 담았을까? 냉면 그릇 하나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는 낯선 이방인의 눈에도 굉장히 많을 것처럼 보였다. 


냉면 그릇이 테이블에 오르자마자 그릇째 들고 육수를 마셨다. 진한 소고기향이 넘실거리는 서울의 냉면과 달리 향에서부터 새콤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닭육수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조금은 가벼운 닭육수의 특징 때문에 무게감이 떨어질까 혼자 걱정했지만 그 무게감은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이 적절하게 채웠다. '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고기 육수도 좋지만 초빼이는 오히려 이렇게 잘 우려낸 닭육수의 이런 풍부한 맛을 만나면 더 반갑다. 여의도 백화점 지하의 닭육수가 좋았던 칼국수집 '진주집' 생각도 퍼뜩 떠 오른다.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그런 맛이다. 조금은 햇빛이 강했던 날씨 때문에 육수를 거의 바닥까지 비우고 다시 청했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듯, 딱 떨어지는 느낌이 좋은 육수다. 대전까지 먼 길을 운전해 온 피로가 냉면 육수에 모두 녹아버렸다. 

의외로 면은 조금 평범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워낙 서울의 냉면집들이 메밀 함량을 높여 '툭툭' 끊어지는 식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라, 메밀함량 50%(식사를 마친 후 나와서 기사를 찾아보았다)의 면은 적절한 탄성과 적절한 메밀향을 품은 면 정도로 느껴졌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면. 이 집의 면도 좋은 면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다는 느낌만을 받은 것을 보면 초빼이의 입도 어느새 메밀 함량 70~100%의 면에 익숙해진 듯하다. 


중국 요리 중 요즘 접하기 힘든 요리 중의 하나인 자춘권은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지만 집집마다 그 맛과 향이 다 다르다고 한다. 한국의 냉면도 그런 요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육수의 재료와 재료의 배합 비율이 집집마다 다르고, 면도 메밀과 섞는 재료와 그 재료들의 배합 비율이 모두 다르니 어느 한 곳 같은 맛을 가질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숯골원냉면의 메밀면도 이 집의 육수와 맞는 가장 적절한 조합을 찾아낸 결과일 듯하다. 한때 메밀 함량만을 가지고 면의 좋고 나쁨을 따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런 의미 없는 구분이 냉면에서 우리가 얻는 만족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을 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계절이 되었다. 슬슬 냉면집 문턱이 닳아 없어질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 


대전을 찾는 분이나 찾을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대전의 유서 깊은 냉면집인 이곳을 추천한다. 조금은 획일적이라 있는 서울의 냉면보다 지역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집의 냉면을 경험해 보는 것도 안목을 넓힐 있는 기회가 것이라 믿는다. 


* 이춘호, [김영복, 이춘호 '한식 삼천리'] 여름별미 냉면(2), 영남일보, 2022.05.27, 위클리포유, 참조 및 요약  

** 성현석, 미쉐린가이드 평양냉면 투어는 훌륭한 외식 교과서[성현석 칼럼], 미디어파인, 2019.05.16, 문화칼럼, 일부발췌

*** 오야코동(親子丼)은 덮밥의 일종으로 밥에 닭고기와 달걀, 파를 넣어서 먹는 음식을 뜻한다. 닭고기와 계란을 부모(親)와 자식(子)으로 비유하여 이름을 지었다.


[메뉴추천]

1. 1인~2인 방문 시 : 물냉면(또는 꿩냉면) + 평양식 왕만두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물냉면(또는 꿩냉면) + 토종닭백숙 + 평양식 왕만두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공간이 있다. 건물 앞 주차도 가능하고 맞은편 전용 주차장도 이용가능. 

2. 월~일 11:00~20:00 / 명절 당일만 휴무 / 브레이크 타임 15:30~16:30, 주말엔 브레이크 타임 없음. 

3. 참고 

    - 꿩냉면과 꿩만두가 유명한 곳이다. 진짜 평양냉면은 꿩고기와 꿩육수를 썼다고 한다. 꼭 맛보시길. 

    - 만두의 수준으로 볼 때 만둣국도 굉장히 맛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예약 및 문의 : 042-861-3287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왕관식당, 진로집, 별난집, 명랑식당, 소나무집, 신도칼국수, 개천식당, 형제집, 대전갈비집, 

       태화장, 전통칼국수, 함경도집, 사리원냉면, 한밭식당, 서울북어, 한마음면옥, 오문창순대국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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