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밥 한 그릇을 주문하면 세 가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초빼이의 입장에서 인천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노포 중식당의 천국'이라 말할 수 있다. 흔하디 흔한 동네 중국집들도 기본 30년이 넘는 곳들이 많고(사실 인천에서 30년 정도 된 중국집은 노포라 부르기에 상대적으로 애매한 편이다) 50년에서 60년에 이르는 노포들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1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집도 있으니 초빼이의 이런 정의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이 오래된 중국집들은 주로 구 인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인천, 숭의동 인근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집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각자의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백짜장과 북경오리가 좋은 '연경'이나 볶음밥이 예술적이던 '용화반점', 유니짜장이 좋았던 '신승반점', 고추짬뽕과 자춘걸이 유명한 '신성루', 황두면과 누룽지탕이 좋았던 '중화루', 고기튀김과 깐풍꽃게가 유명한 '중화방' 등 도저히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이 모든 곳을 경험해 보기 위해선 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정도이다.
인천이 중국 요릿집의 기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청나라 말기 중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으며 후에 중국의 대총통이 되었던 '위안스카이(袁世凱, 원세개)'와 관련이 있다.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으로 부임해 온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을 빌미로 흥선대원군을 본국으로 압송하였고, 2년 후 발생한 갑신정변 때는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해 납치된 고종을 구출하기도 했다. 당시 청나라군과 함께 들어온 청국의 상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선의 중국요리 역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1882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맺어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 의해 인천(1884년)과 부산(1886년) 그리고 원산(1888년)에 청나라의 조계가 설치되었고 청나라의 조계가 설치된 곳은 '청관'으로 불리며 우리나라 중국요리의 거점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인천시와 산하 자치단체들의 구도심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차이나타운을 주목하게 되었고, 차이나타운의 정비와 활성화, 인천 누들로드 프로젝트(아시아 누들타운 조성 등)를 통해 관광상품화가 시작하게 되었다. 2001년 경 5개 정도 남아있던 차이나타운의 중국요리점은 2007년도에 이르러 30여 곳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인천에 남아있는 오래된 노포 중국집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처음엔 차이나타운에만 국한되었던 호기심은 어느새 범위를 넓혀 동인천과 인천의 구도심까지 확대되었고 백운과 부평까지 영역을 넓히며 당시까지 살아남은 노포 중국집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천 노포 중국집들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
인천의 구도심과 조금 떨어진 주안동에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 중국집 하나가 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바로 석바위 역 인근의 노포 연중반점(連中飯店). 연중반점은 수준급의 요리를 내는 집으로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몇 년 전 초빼이도 연중반점 인근에 살았던 적이 있어 마치 동네 중국집처럼 자주 다니며 해장을 위해 찾던 곳이기도 하다.
연중반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 하면 초빼이는 아마 연중반점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짬뽕밥'을 가장 먼저 얘기할 것이다. 이곳의 면 요리는 굉장히 높은 수준을 보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짬뽕이 굉장히 좋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과 재료를 넣고 30년은 우려냈을 것 같은 진한 국물이 일품인 음식이다. 연중반점의 짬뽕밥은 짬뽕의 국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다른 지역의 짬뽕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볶음밥'을 함께 낸다. 보통의 중국집에서 짬뽕밥을 주문하면 나오는 '공깃밥'에 비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 게다가 볶음밥에는 웍에서 튀긴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별도로 짜장 소스도 함께 내주기 때문에 짬뽕 국물을 한식의 국처럼 먹을 수도 있고 볶음밥처럼 먹을 수도 있다.
연중반점 짬뽕밥의 핵심은 바로 당면과 볶음밥으로 나오는 밥에 있다. 짬뽕국물을 숟가락으로 뒤적이면 딱 먹기 좋을 만큼 들어 있는 당면을 볼 수 있는데 짬뽕밥을 주문하게 되면 면을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나쁘지 않다. 국물을 흠뻑 빨아들인 당면이 입천장을 치면서 입안에서 구르는 그 식감이 굉장히 좋다. 일반 면보다는 더 부드럽고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감으로 해장에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 초빼이는 보통 해장을 위해 짬뽕밥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짬뽕밥이 나오면 국물부터 우선 들이켠다. 그리고 함께 나온 볶음밥과 계란 프라이를 모두 짬뽕국물에 넣고 먹기 시작한다.
여기서 볶음밥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짬뽕밥에 함께 나오는 볶음밥은 일반 볶음밥보다는 간이 조금 덜 된 상태로 나온다. 짬뽕국물에 기본적인 간이 되어 있는 상태라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신경 쓴 노력이 보이는 것. 게다가 기름으로 잘 코팅된 밥 알갱이가 짬뽕국물과 만나 딱 적절한 정도의 양만 국물을 머금기 때문에 한 수저 뜰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맛과 식감은 최고의 수준이다. 다른 중국집의 짬뽕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러움마저 담아낸다. 일반 공깃밥을 짬뽕국물에 말아먹을 때와는 천양지차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이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쓴 짬뽕밥이라면 굉장히 수준 높은 요리이자 과학의 영역까지 넘보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초빼이가 들은 바로는 인천의 오래된 중국집들 중 몇몇 곳은 아직도 짬뽕밥에 볶음밥을 내준다고 한다. 짬뽕밥이라는 음식이 생긴 초기에는 볶음밥을 내주는 방식이 아마도 업계의 기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중국집을 찾고, 손님의 주문을 주방에서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하면서 이런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초빼이와 같이 짬뽕밥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아쉽게만 느껴지는 음식 수준의 하향 평준화라고 할까? 반면 아직도 이런 옛 방식으로 짬뽕밥을 내는 집들을 발견하면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연중반점은 타 중국집에 비해 주문할 수 있는 요리의 종류도 굉장히 많고 그 완성도도 꽤 높다. 요즘의 중국집들이 식사류 위주의 배달 음식 전문점으로 바뀌며 제대로 된 요리를 내는 중국 요릿집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요리를 메뉴판에 올린 곳에 가면 그 집에 대한 신뢰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연중반점의 탕수육은 케첩을 쓰지 않은 투명한 소스와 함께 나오는데 다른 집의 그것에 비해 맛이 고급스럽다. 탕수육이라는 음식의 기원상 '부먹'이 요리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 집은 다른 이들의 의견도 반영하여 소스를 별도로 내준다. '찍먹'도 가능하게 음식을 낸다는 뜻. 난자완스도 초빼이가 자주 찾는 음식 중 하나다. 꽤 큼지막한 난자의 표면은 조금 거친 식감을 느끼지만 입으로 베어 물면 한없이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이질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옛날 마징가 Z에 나오던 아수라 백작의 얼굴과 같은 양면성이라고 할까? 이런 이질적인 식감을 낼 수 있는 것은 돼지고기를 뭉쳐 튀기는 과정에서 요리사의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 이질적인 식감을 구수한 소스와 큼직하게 썬 채소들이 잘 품어 맛이 유별나다.
초빼이가 추천하고 싶은 이 집의 요리는 해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한 요리. 좋은 해산물을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을 음식을 먹는 도중에 바로 느낄 수 있고, 그 식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방법까지 잘 구현되어 있는 음식을 낸다. 팔보채를 한 술 뜨면 바다의 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잘 볶아내고, 깐소 새우도 새우의 형태와 향을 잘 살리며 바삭한 식감까지 덧붙였다. 특히 삼품냉채나 해파리냉채와 같은 냉채류에서는 해산물의 신선함을 잘 살리면서도 식재료가 가진 향과 맛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로 요리해 주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시원한 연태고량이나 이과두주 한 잔이 잘 어울리는 메뉴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연중반점을 찾아 오랜만에 짬뽕밥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짬뽕밥의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해 금요일에 술을 마시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이것이 초빼이의 삶이다.
*,** 이와미 가즈히로, 최연희, 정이찬 역, "중국요리의 세계사", 서울 : 도서출판 따비, 2023.10.10, P.413~515. 일부발췌 및 요약
[메뉴추천]
1. 1인 이상 방문 시 : 짬뽕밥 + 소주 또는 이과두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요리류 + 짬뽕밥 + 소주 또는 이과두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이 있으나 차량 4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식사 시간에는 매장 앞 대로변에 주차를 하거나
인근 골목에 주차를 한다.
2. 월~토 11:30~21:00 / 정기휴무 매주 일요일 / 브레이크타임 14:30~17:00 / 라스트 오더 20:00
3. 참고
-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메뉴에 만두류가 없다. 참고하시길.
- 2~3년 전부터 짬뽕이나 짜장에 들어가는 면을 세면(細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초빼이는 굵직한 면의 식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점을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청해김밥, 용동칼국수, 변가네옹진냉면, 용인정, 홍성각, 석정껍데기소금구이, 충남곱창, 일미
분식, 길목, 풍전식당, 청실홍실, 서문삼계탕 등
- 주안역 인근 상점가에서 2차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