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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Sep 29.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광화문 평안도 만두집]

마음이 복잡할 땐, 슴슴한 만둣국 한 그릇

일반적으로 겨울에 많은 사람들이 따끈한 국물 음식에 많이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 가을이 따끈한 국물 음식이 더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한여름의 날카로운 햇빛에 한없이 고생하다 어느새 겨드랑이 밑으로 스윽 고개를 들이미는 가을바람은 언제나 예사롭지가 않기 때문. 가을바람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몰아치는 요즘과 같은 때, 이럴 때 자연스레 스스로를 위로해 줄 소울푸드를 찾게 된다. 내게는 만둣국이 바로 그런 존재.


전라도 나주 출신 어머니를 둔 경상남도 마산 사람인 내겐, 스무 살을 기점으로 만두라는 음식에 대한 의미가 나뉜다. 스무 살 이전, 만두는 집에서 가끔(일 년에 한 번?) 만들어 먹는 별미 정도였으나, 스무 살 이후 서울살이가 익숙해질 무렵의 내게, 만두는 서울 사람들처럼 명절 음식이자(그러나 명절에 고향에서는 먹을 수 없는) 하나의 요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음식이 되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자취생활의 한 켠에는 학교 근처 식당의 인스턴트 만둣국(고향만두였을)이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만둣국 집은 내겐 숨겨둔 비장의 무기와 같은 곳. 사실 광화문에 있는(정확히 세종문화회관 뒤편 국민카드 빌딩) 이 만두집은 내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꽤 자주 찾았던 곳이다. 처음 찾았던 것은 2005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때도 이 집에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던 직장동료들이 많지는 않아 혼자 따로 찾아가 '혼밥'을 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젊고 세련되었던 직장 동료들이 만둣국이란 메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 집의 음식은 익숙한 전라도 음식의 기준으로 대자면, 

멀건 국물에 모양도 이쁘지 않은 만두 대여섯 덩어리가 둥둥 떠 다니고, 무심하니 손으로 찢은 양념된 소고기 살이 성의 없게 고명으로 얹어진, 그냥 볼상 사나운 음식으로만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맛을 아는 사람에게 이 집의 음식은,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고집 있는 한 남자의 등'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맑지만 가볍지 않은 고깃국물에 손으로 대충 주무르다 던져 넣은 것 같은 이 집 만두는 정말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진미이다. 좋은 재료를 잘 다져 숙성시키고 얇게 피를 떠 그 재료들을 담아내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쿰쿰한 냄새까지 슬그머니 올라오니 어쩌면 이런 게 '어른들의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만둣국을 주문하면 내는 반찬들은 처음 방문했던 2005년도에도 그리고 가장 최근에 찾았던 2022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강하지 않은 간에 메인 재료인 만둣국의 향과 맛을 해치지 않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찬들. 

자극적이지 않은 무채와 사라다(이건 사라다라고 불러야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전라도 김치와 비교하면 뭔가가 부족한 듯싶은 히멀그레한 김치까지 딱 세 종류. 기가 막힌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사라다의 마요네즈 맛도 이 집 만둣국의 국물과 잘 어울린다고 하면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음식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음식을 만들고 조리하고 설계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고민과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한 과정이다. 재료들의 궁합과 양념의 종류, 재료의 수급, 간의 세기 그리고 음식의 양 등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그러니 퇴직하면 우리 마누라가 칼국수 잘하니 무조건 칼국수집이나 하지 그런 무책임한 소리는 말라는 것이다)


피곤에 지친 저녁, 가끔 이 집을 찾아 만둣국에 빈대떡을 시키거나 제육을 시켜 소주잔을 들이켠 적이 자주 있었다. 30대 중반이었던 당시의 나에게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뤄내라고 요구했었고,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과 좌절감에 조금씩 물들 때면 이 집에 들러 한 숨 푹 내쉬며 평안도 만둣국의 밋밋함에 잠깐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이 정도면 소울푸드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별미는 김치말이 국수인데 한 여름 더위를 잠시 잊게 하는 데는 안성맞춤인 녀석이다. 주황색 김치 육수 국물 위로 타래를 틀고 하얗게 들어앉은 국수가락과 그 위에 살포시 얹힌 삶은 계란 반쪽의 자태에 반해 음식을 먹기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술이나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이 집에 들러 제대로 된 이북식 만둣국과 음식들이 어떤지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만둣국 + 빈대떡 또는 제육

2. 2~3인 방문 시 : 만두전골 2인분 + 제육 + 빈대떡

3. 4인 이상 방문 시 : 만두전골 3~4인분 + 빈대떡, 제육, 접시만두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이곳의 만둣국은 꼭 먹어봐야 함. 

2. 김치말이 국수와 빈대떡 세트도 나쁘지 않으나, 김치말이 국수는 양이 많지는 않음   

3. 기본적으로 만두전골은 양이 많은 편임. 

4. 세종문화회관 뒤편 대우프라자(세종로 대우아파트) 지하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에 어려운 점이 있으니 

    유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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