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빼이 Jun 16.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의정부 오뎅식당]

한국의 음식 플랫폼에 서양의 식재료를 품다

사실 이 집의 이름이 왜 [오뎅식당]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오뎅파는 포장마차로 시작한 이 집의 기원에서 오뎅식당이란 명칭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

의정부 오뎅식당은 부대찌개를 최초로 내놓은 원조 식당으로 이름이 높다. 말 그대로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 햄, 베이컨 등에다 김치와 장을 더해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1960년도에 내놓았다. 



20대 초반 부대찌개를 처음 접해 본 나는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음식은 뭘까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던 것 같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이 모여 기가 막힌 맛을 낸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가 가볍던 대학생들에게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안주거리로 인기 높았다. 게다가 육수를 리필하고 일부 재료만 추가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 


따지고 보면 부대찌개야 말로 찌개라는 한국적 플랫폼을 활용하여 다양한 세계의 식재료가 결합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그런 음식이 아닐까 싶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따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한국 전통음식인 김치찌개에 서양식 음식재료인 소시지, 햄, 베이컨, 베이크드 빈이 주재료가 되고, 일본이 원류라 할 수 있는 라면이나 우동면 등이 부재료로 역할을 하니 이처럼 글로벌한 음식이 어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의정부 오뎅식당은 한국의 술과 음식문화에 굵은 획을 그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말 시간을 내어 의정부 오뎅식당의 본점을 찾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송도에서 무려 두 시간이 넘는 거리. 요즘 KTX를 타면 두 시간이면 대구를 갈 수 있는 시간이니 의정부로 차를 몰고 가는 내내 '나도 참 어지간하다'라는 생각에 잠긴다. 


숱한 부대찌개 집으로 가득 차 있는 의정부 부대식당 골목에서 오뎅식당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많은 식도락가들 때문인지 부대식당 골목에는 오뎅식당의 분점이 크게 있었고, 전용 주차장까지 완비되어 있으니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생각이 들기도.  

   

주말 저녁이라 한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갔던 본점은 기대와는 달리 웨이팅 줄이 조금 있더라. 

오래된 시간이 눌러앉은 단층 건물은 그 시간의 무게가 얹어져 있어 천장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곳곳에 시간의 흔적이 살포시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끌던 것은 8~90년대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업소용 주물버너가 터줏대감처럼 앉은뱅이 상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눈을 돌리니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곳곳에 상처 나고 찌그러져 움푹 패인 냄비 뚜껑과 색이 바래고 불에 그을린 흔적마저 정겨워 보이는 찬 그릇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대할 것들이 없었다.  


높지 않은 전골냄비에 담겨 나온 부대찌개를 주물버너 위에서 데우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허기진 식객에게 찌개가 끓어오르는 시간까지의 기다림은 세상 무엇보다 더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 섣부른 조바심에 국자를 들어 빨리 끓어오르길 염원하며 휘휘 저어 본다. 그래도 음식은 내 마음처럼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애꿎은 동치미 국물과 김치 그릇만 다 비우게 한다.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뜨거운 김을 보고 뚜껑을 열자마자 '어머니 진로 한 병요'라고 조건반사와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온다. 같이 간 마누라님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소주병이 상에 오르자마자 마누라님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바로 한 잔을 원 샷! 이제부터 집에 가는 길은 마누라님의 책임. 


햄과 스팸이 뜨거운 국물에 들어가 끓으면서 만들어 낸 향과 케미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마치 사이렌의 노래와도 같은 마력을 가져 향을 맡자마자 절로 술을 주문하게 된다고 하면 사람들은(마누라님을 제외) 믿을 수 있을까? 


과감히(나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두 시간 내내 운전하는 마누라님의 잔소리를 감내하기로 했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아니 이곳의 부대찌개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메뉴추천]

1. 1인 : 부대찌개 1인분(근데 혼자 온 분은 한번도 못봤다)

2. 2인~4인 : 2인세트~4인세트와 추가 사리와 모둠사리 등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차를 가지고 가신다면, 1인은 본점에 내려주고 웨이팅 시키고 다른 분은 전용 주차장으로 가실 것

2. 본점은 낮고 오래된 건물이다. 깔끔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근처의 분점으로 가시길. 

3. 주말 저녁에도 웨이팅 걸릴때가 있다.  

4. 의정부가 멀다면, 프랜차이즈로 나간 가맹점을 가 보시는 것도 방법. 풍미와 맛은 개인적 판단으로는 본점의 80% 정도 수준임




 

이전 19화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광화문 평안도 만두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