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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26. 2022

초빼이의 노포일기 [군산 한주옥]

전라도 간장게장 백반의 혜자로움

전라북도 군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었던 몇몇 도시중 하나이다. 

그래서 군산의 구시가지에는 마치 시간이 비켜간 도시처럼, 오래된 건물과 일제강점기의 잔재들, 일본식 사찰 등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지금은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구시가의 정취 때문인지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세트장으로도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군산 한주옥은 구시가지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게장정식이나 게장백반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 

내가 찾았던 시간은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저녁식사를 하려는 가족 손님들과 한차례 전쟁을 끝내고 좋은 안주에 편안한 반주를 곁들이고자 하는 주객들(초빼이들)이 점점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해 음식에 재료를 아끼지 않아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말은 어릴 적 외가를 비롯한 전라도 어느 지역을 방문해도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사실 이 말이 전라도 음식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말이기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몇 년 전 구례군 우체국 뒤의 어느 백반집에 들렀을 때도 7천 원짜리 백반 하나에 무려 서른 가지에 가까운 반찬을 올려주는 곳이 있었는데 재료도 아끼지 않을뿐더러, 음식 인심도 박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물론 모든 곳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주옥의 꽃게장 정식과 간장게장 백반은 요즘 젊은 친구들의 말로 정말 '혜자스러운' 차림이다.

간장게장 백반을 주문하면 기본 간장게장에 박대 구이, 동태탕, 광어회, 편육 등 개별 단품 메뉴로도 손색없는 반찬들이 제공된다. 게다가 영혼을 쏟아부은 것 같은 돌솥밥에서 풍기는 '쌀밥 냄새'까지 더해지면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의 끝자락까지 미각을 몰아붙인다. 


상차림이 끝나고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돌솥밥을 한 숟갈 들고 김치 한 조각 올려 입에 넣는다. 젓갈 향 가득한 전라도식 김치향이 따뜻한 온기를 가득 머금은 '밥 냄새'에 향수처럼 퍼져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리고 다음 숟가락은 기름을 바르지 않은 맨 김에 밥을 싸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처음에는 입천장에 붙던 김들이 입안 가득 고인 침과 어우러져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의 맛과 같은 야성적인 힘을 끌어올려준다. 

이 정도 수준이면 완전히 무장해제될 수준.  


이후로 무엇을 입 안에 담던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간장게장의 싱싱한 맛도, 박대 구이의 그 담백한 맛도, 기름기 올라온 광어회의 식감도 동태탕의 그 칼칼한 국물도 무엇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이 집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주연도 조연도 없는 모두가 주인공인 맛. 간장게장도, 회도, 생선 구이도, 하물며 김 한 장까지 기본기 탄탄한 모습을 보이며 제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2.2만 원의 정식 가격도, 1.7만 원의 백반 가격도 그 가치 이상을 하고 있으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이 아깝지가 않다.(코로나 이후 가격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요즘 식당을 나올 때, '정말 잘 먹고 갑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데, 군산에서는 이 집에서 오랜만에 그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잘 먹었으면 예의도 차려야지.


[메뉴추천]

1. 꽃게장 백반을 추천. 정식과 차이는 아귀찜이 추가되느냐 마느냐의 차이임.  

2. 꽃게장 정식. 먹는 양에 자신이 있으신 분이라면, 추천. 음식의 양이 꽤 많음.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군산 구 시가지에 숙소를 정하고 찾으면 참 편하다. 

2. 내 경우는 배우자님과 2명이 갔었는데, 3인 이상의 단체 손님들이 꽤 많았다. 

3.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가족 손님들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4. 마치는 시간이 좀 이르므로(밤 9시) 시간을 꼭 체크할 것. 

5. 근처 도로 및 주차장에 주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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