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빼이 Jun 12.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인천 명월집]

오래된 항구의 백반집 이야기

명월(月)은 '밝은 달'이나 음력 8월 보름달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천에서도 인천의 끄트머리 차이나타운 인근 신포동(행정구역상 중앙동)에 자리한 명월집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백반집으로 널리 알려진 집이다. 1966년에 개업하였으니 평범한 백반집으로 56년의 세월을 이어온 집. 


백반집은 예전에는 '상밥집'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손님들이 오면 흰쌀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한 상씩 차려준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여기엔 우리 전통 상인 '반'(해주반, 통영반, 나주반 등)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해서 길어질 수 있으니 패쓰. 이 집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식당 100선에도 선정되었다니 이미 전국구 규모로 성장한 집이기도 하고. 




그러나 사실 가게 자체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여느 평범한 식당과 큰 차이를 못 느낀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기본과 디테일에서 강한 법. 

클래식 마니아들이 베토벤과 모차르트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등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을 선호하면서도 바흐나 헨델의 음악을 그들의 리스트에서 빼놓지 않는 이유는 바흐와 헨델이 클래식 음악의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확립한 작곡가들이었기 때문. 


이 집의 음식 또한 기본에 충실하다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 

그 많은 손놀림이라는 것이 '정성'과 '손맛'이라는 단어들의 의미와 그 끝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우린 이미 어머니의 음식인 '집밥'을 통해 체득해왔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기사식당과 백반집 등의 특별한 한 가지 메뉴(제육볶음이라던가 찌개류 등등)를 중심으로 한 주연과 조연이 나뉜 구성이 아닌 콩나물, 무채 무침, 호박나물, 고구마 줄기, 계란말이 등의 평범하디 평범한 것들이 주연이 되고 조연이 된다. 그나마 조금 특별한 것이라면 어느 집에서는 한 달에 반 이상을 밥 상위에 오르던 메뉴이자, 아버지의 어머니를 향한 흔한 반찬투정 대상이었던 김치찌개 정도?




화려한 기교나 변주보다는 그냥 기본에 충실한, 그러기에는 너무나 심심한 상차림. 

그 무던한 상차림에서 최고의 주제부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을, 70년대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석유곤로' 위에서 하루 종일 끓여내는 김치찌개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 집에도 '후지카 석유곤로'가 있었다) 


총 세 대의 석유곤로를 사용해서 김치찌개를 제공하는데 이 집의 김치찌개 맛이 그리 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 대의 곤로 위에서 하루 종일 뭉근하게 끓여 재료의 맛을 모두 찌개에 우려냈기 때문.    


7~80년대 인천 최고의 번화가였던 이곳을 찾던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허기와 세상 모든 걱정을 온몸에 이고 밤늦도록 술로 달래던 취객들의 상처 입은 속을 편안히 어루만지면서 이 집은 오랫동안 그렇게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 


  


가게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자주 찾는 손님들의 머리와 얼굴에도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더해지고 있다.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부터 이 밋밋한 찬들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른들이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화려했던 시간을 추억할까? 아니면 결혼시킨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할까?'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리에 떠 오르지만 사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이 무에 중요할까.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을 힘든 하루를 달래주던 그 밥집이 아직 남아있고, 오늘도 그 밥집을 찾아 허기를 달래며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현재의 이 여유로움을 아직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마지막 남은 꽁치조림을 반으로 쪼개어 놓고 다시 소주 한잔 들이킨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쪼그라든 위장을 아직 온기가 남은 숭늉 한 대접으로 달래면 아직 남은 하루를 버티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큼지막한 계란말이 한 조각과 꽁치조림 한 조각에서도 이곳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집이다. 


동인천 '명월집'


[메뉴추천]

1. 메뉴가 백반 하나라 들어가서 앉으면 알아서 주신다.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도로에 주차를 할 수는 있으나, 주차할 자리를 찾기 여간 힘들지 않으니 근처 민영 또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밥 한 끼 후 산책 좀 하고 1~2천 원 정도의 주차비를 내면 된다. 

2. 곤로 위쪽에 큰 그릇을 놔두었는데 비빔밥을 좋아하는 분들은 찬으로 나온 나물과 무침들로 비빔밥을 해서 먹을 수 있다.  

3. 김치찌개도 원하는 만큼 퍼서 먹을 수 있다. 무한리필이지만 셀프라는. 

4. 웬만하면 반찬들도 무한리필이지만 계란말이나 특정한 반찬들은 리필하는 횟수에 약간의 제약을 둔다.(내 경우에는) 이 분들도 장사해야지 하는 마음에. 

5. 차이나타운도 걸어서 갈 수 있고, 동인천역이나 조금 무리하면 신포시장까지도 도보로 갈 수 있다. 하루 시간을 내어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인천 月



이전 23화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을지로 을지OB베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