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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pr 21. 2022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을지로 을지OB베어

[특별판] :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작과 끝.


오늘 우연히, 암울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을지로 3가 노가리 골목의 시작이자 전설이었던, '을지 OB베어'의 철거 소식.


이미 몇 년 전부터 '없어질지 모른다는' 흉악한 소문이 나돌았었다. 그리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서명을 받는다는 연대의 움직임도 알고 있었고 서명도 몇 번을 참여했었다. 또한 최근의 소식으로는 옆집(만선 호프)의 적대적인 경영의 희생양이 되어 강제집행이 진행된다는 등의 소식이었다. 그러던 상황들이 오늘 불현듯, '철거'라는 단어로 모습을 바꾸며 찾아왔다.      


등을 보인체 노가리를 구우시는 분이 이 집의 사장님이시다. 오늘따라 등이 더 굽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뵌 을지로 OB베어의 사장님은 소송과 강제철거 집행 저지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고, 강렬한 의지도 보여주셨었는데. 노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슬프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순서대로 글을 올리려는 계획과 달리 OB베어의 글을 먼저 올리며 그곳을 추억하고자 한다.



1980년 을지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인쇄소, 공구상 그리고 철공소 근로자들이 즐겨 찾던 이곳은 당시 OB맥주가 처음으로 시작했던 호프집 프랜차이즈의 서울 2호점이었다. 당시 이 집의 가장 큰 안주는 100원짜리 노가리. 노가리를 두드려 연하게 만든 뒤 가시를 발라 연탄불에 구워 낸다.

연탄불에 구워 낸 노가리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 집만의 트레이드 마크.

사장님이 직접 개발한 양념장에 노가리를 찍어먹고 500cc '호프' 한 잔 들이키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스르륵'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이 집을 처음 찾았던 것은 2012년인가 2013년 경의 늦은 봄날.

근처에서 친구들과 거하게 술을 마시다 시원한 맥주로 부담 없이 2차를 가자며 찾다가 마주친 곳이 이곳이었다. 을지로를 본격적으로 찾고 탐방하던 시기였는데, 들리자마자 이 집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저렴하지만 맛있던 안주와 타 호프집과는 정말 차별되는 생맥주의 깔끔함(생맥주도 집집마다 맛의 차이가 있다. 맛의 차이를 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생맥주 기기의 청소상태이기도 하다)에 바로 반해 버린 것. 바로 옆의 만선 호프 등을 찾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 자리가 없으면 대안으로 찾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찾는 곳은 역시 이 집이었던 것.


조금씩 찾다 보니 좋아하는 자리까지 생기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가게 입구 바로 옆자리. 이 자리는 이 노가리 골목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며, 바로 옆에서 사장님이 노가리를 구워주시기 때문에 고소한 노가리 굽는 냄새를 가장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자리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자리는 가게 뒤편 넓은 주차장 자리로 넓은 야장이 깔리는데 마치 'ㅁ'자 서울식 한옥의 중정과 같은 느낌이 드는 자리다. 특히나 비가 조금씩 오는 날에는 머리 위로 드리워진 비닐에 '후드득'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데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또한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하는 손님들을 위해 내 놓으시던 '얼음 비닐주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차가운 얼음 주머니를 머리 위에 올리고 뜨거운 여름의 더위를 식혀가며 들이키던 한 잔의 맥주는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메뉴 아닌가?


그러던 어느 순간 이 집이 서울시 지정 '서울 미래유산(2015년)'이 되더니, 몇 년 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2018년)'로 지정받게 되었다. 또 2017년 경부터 불던 '힙지로'열풍으로 정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노가리 골목을 찾기 시작했고, 그 트렌드의 중심에는 을지 OB베어가 당연히 회자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무렵이 '을지 OB베어'의 영광과 쇄락이 교차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몰리면 자본이 몰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

이 사태의 발단은 옆에 있는 만선 호프라고 들었는데, 그때쯤부터 만선 호프는 노가리 골목에서 가게를 늘리고 인수하는 작업을 통해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결국엔 을지 OB베어가 자리한 건물의 지분까지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미래유산이 되나, 백년가게가 되어 백 년을 이어갈 가게로 지정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이익 앞에서는 결국은 문화유산도 부질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이번 사태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서울미래유산이면 뭐하노?


갑자기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더 거리의 오래된 가게들과 교토 산조 상점가의 오래된 가게들이 머리에 떠 오른다.


오늘 또 하나의 노포가 별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내 성격상 더 이상 노가리 골목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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