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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Sep 01.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동인천 신성루]

중국엔 자춘권, 한국엔 김치찌개?

짜장면이 시작된 인천에는 차이나타운에서부터 동인천, 그리고 부평까지 굉장히 많은 중국집 노포들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 '중화루', '혜빈장', '동락반점', '보화장', '연중반점', '복성루', '용화반점' 등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중식 화상 노포들이 즐비한 것. 이 노포들은 인천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추억거리는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런 가게들이기도 하다.


그 수많은 강자 중 오늘 소개할 곳은 바로 동인천의 '신성루'이다.

화상들이 운영하는 많은 중국음식점이 모여있는 차이나타운과는 조금 떨어진 인천지하철 수인 분당선 신포역과 신포시장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이미 많은 방송과 입소문을 통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은 삼선 고추짬뽕과 탕수육인데, 오늘 소개할 요리는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자춘권'(자춘걸).


자춘권 -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두 손을 포개고 있는 미인도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음식 중 계란말이를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비주얼을 갖춘 요리인데, 이 음식의 맛이 의외로 매력적이다. 갖가지 채소를 수분을 빼고 튀기듯이(炸) 볶아 최소한의 '간'만 하고, 계란 지단을 얇게 부쳐 그 속에 넣고 말아 내는(捲) 음식인데 요즘은 이 음식을 내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이 음식은 재료 속에 있는 수분을 빼는 것이 관건인 요리이다. 

속재료인 버섯과 죽순, 고기, 해산물 등을 적절히 튀겨 수분이 나오지 않게 한다. 그리고 계란 지단도 얇게 부친 후 그 위에 속재료들을 올리고 말아서 완성시키는 방식. 손님상에 올릴 때는 마치 김밥을 썰듯 두툼하게 썰어내어 층층이 접시에 담는다. 그 후 온기가 있는 상태에서 즉시 손님에게 내어야 한다. 음식의 향을 제대로 맡기 위해서는 적정한 온기도 필요하기 때문. 


이렇듯 음식을 만드는데 손이 많고 시간도 꽤 요구되기 때문에 요즘은 일반 중국 음식점에서는 만나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계란 지단이 찢어지지 않게 모양을 잡는 것도 어려워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기도.

각각의 재료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어려운 기술인데 이 속재료들의 맛을 다 살리면서 계란의 향도 함께 내야 한다고 하니 말로도 표현하기도 어려운데 만들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누군가의 글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음식은 중국인 가정에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의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소울푸드와 같다고 한다. 음식의 향과 맛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는 그런 음식. 그래서 각 가정마다 자춘권을 만드는 방법들도 다르고 맛도 제각각이었다니 우리네 어머니가 해주시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와 같은 소울푸드의 느낌이랄까?


자춘권(자춘걸) : 중국인의 소울푸드이다.

우선 한 점을 집어 들면 잘 볶아진 속재료들의 고유의 향이 올라온다. 그리고 곧이어 바로 계란 지단의 냄새가 올라오는데, 그 향이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듯 낯설지 않은 냄새다. 잠시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보니, 오래전 부산 동래의 동래파전에서 맡을 수 있던 파전 위에 한 겹 올려진 그 계란 향과 거의 흡사하다.


거침없이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처음엔 담백함이 입 안 전체를 맴돌다 이내 다양한 속재료의 개별적인 맛과 향이 올라온다. 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린다는 뜻이 바로 이런 의미이지 싶다. 함께 내 준 간장소스를 찍어 맛보면 또 다른 맛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어찌 술을 멀리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음식에는 소주보다는 중국술이 더 잘 어울린다. 특히 나는 공부가주나 연태 고량 등의 고급지고 부드러운 술보다는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싸구려 이과두주를 더 선호하는 편. 특히 이런 거칠고 뒤끝이 살아있는 술들이 잘 어울리는 요리가 있다. 이 부드러운 자춘권도 이과두주가 잘 어울리는 요리(개인적인 사견이니 너무 구애받지 마시길). 게다가 함께 주문한 '여덟 가지의 진귀한 재료와 채소'로 조리하였다는 '팔보채'도 나와 결국 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제부터 운전은 함께 하신 마누라님의 몫. 

이런 좋은 요리에 술 한잔 곁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주방장님에게도 예의가 아닐 테니. 

우리가 달리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팔보채의 해산물과 채소들도 굉장히 선도가 좋아 잡내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오징어나 다른 재료들에 들어간 칼집을 보면 이곳 주방장님의 칼 쓰는 스킬과 정성이 범상치 않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부분.    

팔보채라지요.
이 집의 또 다른 비밀무기 삼선고추짬뽕과 간짜장

화교 상점의 대표적인 특징들처럼 이 가게에도 붉은색과 황금색이 곳곳에 녹아있다.

그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층 가게 안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옛날식 계단. 내 고향인 마산의 시골집에도 다락으로 올라가는 이런 계단이 있었는데 하는 추억까지 곱씹게 하는 모습에, 이곳도 오래된 노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이곳 신성루도 한 때 번성했던 '청요리집'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흔적을 메뉴판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상 요리' 메뉴.


옛날 학교 앞 중국집에서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함께 십시일반 하여 먹었던 '상 요리' 메뉴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상요리’를 먹는 날은 정말 큰 행사가 있거나 뜻하지 않던 돈이 생기거나 하는 날이었다. 

(예를 들자면 학기초에 '사전'과 '콘사이스'와 '딕셔너리'를 한꺼번에 구입한다며 부모님께 '사기 쳐서' 책 살 돈을 받는 날이나 새 책 값으로 책 값을 받은 후 중고 책으로 대신하고 돈을 남기는 경우 등) 

오랜만에 낡은 중국집에 앉아 빛바랜 추억들과 잊고 지내던 이름들을 다시 한번 입 안에서 굴려 본다. 


메뉴판 위 쪽에 요즘은 찾기 힘든 '상요리' 메뉴가 있다.  


이과두주의 진한 향이 아직 입 안에 남아 있을 무렵,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포만감과 행복감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다는 욕심에 물 한잔 들이키지 않는다. 점점 태양이 그 높이를 더하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옛 정취가 물씬한 청요리 집에서의 좋은 식사와 낮술 한 잔에 딱딱해진 마음도 조금 풀어놓는다. 

그렇게 한 나절이 흘렀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삼선 고추짬뽕이나 간짜장 + 소주(또는 이과두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삼선 고추짬뽕이나 간짜장 + 요리 1 + 소주(또는 이과두주)

3. 3인 이상 방문 시 : 요리 1~3개(팔보채, 자춘권, 난자완스 추천) + 소주(또는 이과두주) + 식사 메뉴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대로변 입구도 있으나, 뒤편 입구를 많이 사용하는 편. 건물 뒤편으로 가면 바로 가게 옆에 주차 공간이 넉넉히 있다.  

2. 식사로는 볶음밥도 좋고, 삼선짬뽕이나 간짜장도 괜찮다. 요리로는 자춘권과 난자완스, 팔보채 등이 유명하다.

3. 이 집 종업원이 불친절하다고 오해가 많은 부분도 있는데, 가끔 중국인 직원이 불러도 대답 안 할 때가 있다.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가 서툴러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이때는 카운터에 계신 여사장님께 이야기하면 사장님께서 직접 친절히 대응해 준다.

4. 주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웨이팅 할 수도 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찾아가시길.

5. 인근에 인천 여행의 핵심 코스가 꽤 있다.

  - 근처의 신포시장에서부터 동인천 조금 더 걸으면 차이나타운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 신포시장을 지나 길 건너편 인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이나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 교회'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조금 더 발품을 팔면, 개항로 거리도 구경할 수 있다.(단 조금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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