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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02.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전남 나주 하얀집]

대한민국 헌법에 있을 것 같은 공식  '곰탕=하얀집'

날이 점점 더워지다 보니 무언가 몸에 도움이 될 음식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날들이 많아지며, 오늘은 어떤 집에 대한 글을 올릴까 생각하다 우리나라 최고(古)의 곰탕집으로 알려진 이곳으로 낙점. 


이 집에서 곰탕을 '마시다(?)'보면 어쩌면 대한민국 헌법 조항에도 '곰탕=하얀집'이라는 공식이 나와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전국 팔도에 수백 곳의 곰탕집이 있겠지만 112년(1910년 개업)째의 업력이나 곰탕의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곳은 '나주곰탕 하얀집'이 아닐까.


'소'는 농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었던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주요 생산수단으로 여겨져 소를 잡는 행위가 금기시된 것은 널리 사실이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때는 육식을 금지하고 우금령(牛禁令)을 내려 소의 도축을 금지하기도 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종대왕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우금령을 내려 소의 사적인 도축을 방지하고자 했으니 그야말로 예부터 소고기는 귀한 음식 상징으로 통한 것.

그러나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국가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기어코 해보겠다고 '덤비는'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이에 가장 앞섰던 계층이 바로 조선의 사대부들이었고 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이 소고기였다고 한다. 심지어 우심적(牛心炙)이라는 '갓 잡은 소의 심장을 얇게 저며 불에 구운 고기'는 사대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소고기 요리였다 하니 소고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 



한 마리의 소를 잡아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기에는 '탕'(국물요리)만큼 좋은 음식이 없다. 소의 고기와 뼈를 큰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 그 육수를 내고 삶아진 고기 몇 점을 올리면 소 한 마리를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소고기탕이 바로 곰탕의 시작이 아닐까 추측된다.

곰탕을 사전에서 찾으면 '소의 뼈나 양(羘), 곱창, 양지머리 따위의 국거리를 넣고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인 국'이라고 하는데 '곤다'라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나타내는 동사가 음식의 이름으로 쓰인 형태. 


나주곰탕은 개인적으로 내 외가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어려서부터 접할 기회가 많았던 곳이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며 외가 어른들이 곰탕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찾았던 곳이 바로 '하얀집' 곰탕이었다. 사실 어릴 때는 이 집 곰탕의 진정한 맛을 모르고 귀함도 몰랐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 집이 얼마나 유서 깊고 괜찮은 식당인지 깨닫게 된 경우. 


이 집 곰탕의 매력은 토렴식으로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딱 먹기 좋은 온도로 상에 올려진다는 것이다. 대략 한 75도 정도의 온도가 적정선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국밥 집들을 보면 토렴 방식으로 국밥을 내는 곳이 많다. 예전에는 갓 지은 밥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보온밥솥 같은 것들이 없어 밥을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어려웠었고, 매번 손님이 올 때마다 밥을 갓 지어 내놓을 수 없었으니 차갑게 식은 밥을 데울 수 있는 테크니컬 한 방법이 필요했던 것. 

토렴식 국밥은 이런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방법으로 추정된다. 차가운 밥을 그릇에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서너 번 데우면 밥과 음식을 담는 용기도 데워지고 밥도 국물을 머금어 먹기 좋은 상태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


이 국물에 토렴을 해서 국밥을 내고 좌측편의 소고기를 국밥에 올려준다.


요즘의 국밥집들은 밥 온장고가 있어 미리 공깃밥을 놓고 내어 '따로국밥' 형태의 국밥이 많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상에 올려진 국밥을 보면 맑은 국물 위에 잘게 썬 파가 떠 있고 노란색 지단이 풀어져 있다. 그리고 그 위를 장식하는 빨간 고춧가루와 깨 등의 맛도 맛이지만 시각적인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미각과 시각, 그리고 달콤함이 느껴지는 이 집 곰탕 특유의 향기로 인해 후각적인 만족감까지 더해지니 정말 천의무봉 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국밥을 앞에 두고 어찌 술 한병 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허겁지겁 소주잔을 채우고 국밥 한 수저를 든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희석식 소주가 잘 벼려진 날처럼 식도를 긁고 내려갈 때,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어느새 고통은 희열로 치환된다. 아니 어쩌면 사디스트와 같이 고통을 쾌락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하얀집 곰탕의 매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 


곰탕 국물이 참 맑은데 어떻게 이런 진한 맛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곰탕 그릇에 담긴 소고기 조각은 어찌 그리 부드러운지.  



몇 년 만에 찾은 기념으로 소 수육도 주문한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접시에 올려진 수육이 절로 다음 잔을 부른다. 

'아껴서 한 점씩 한 점씩'

잘못 실수하여 고춧가루 하나 묻어 오점을 남기지나 않을지 조심하면서 수육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이 집 수육의 좋은 점은 정말 잡내 하나 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소고기를 삶아서 잘라낸 모습이 예전 어머니가 집에서 해 주시던 그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 추억을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수육은 어머니의 그것보다 이 집의 것이 더 맛있다.) 또 한 잔.


그리고 아끼고 아껴 둔 우설 한 점을 들어 올린다. 어떤 조화를 부렸기에 한 점의 우설에 이런 탱탱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할 수 있는지 이해 불가. 일단 이해되지 않는다면 몸으로 느껴야 하는 법. 

혀끝에 감기는 우설의 촉감은 입안에서 탱글 거리다가 치아에 닿으면 이내 곧 푸딩처럼 녹아버린다. 아니 푸딩보다 더 부드럽다. 이내 터져 나오는 한 숨 "하아~" 

우설을 맛보았으니 소주는 두 잔. 



이번에 새삼스레 느낀 점은 이 집의 곰탕이나 수육도 좋지만 반찬으로 내는 전라도식 김치가 내 생애 최고의 김치 중 하나였다는 것. 솔직히 깍두기보다는 조금 묵은 전라도식 김치가 더 굉장하게 느껴지더라. 이 김치는 어떤 미사여구나 수식으로도 그 맛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다만 사족을 덧붙이자면 '김치가 이런 다양한 맛과 향을 품을 수 있구나'하는 수준의 표현 정도? 


예전 어머니의 김치가 이와 비슷한 맛을 냈었는데, 점점 나이 들어가시고 몸도 불편해지시면서 김치 맛이 변하기 시작했었다. 딱 건강을 잃기 전의 어머니 김치와 같은 맛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던.(어머니에게 김치 맛이 변했다고 한 소리 하다가 등판짝 스매싱도 맞았던 적도 있다) 이번 전라도 식도락 여행 중에 맛본 김치 중 가장 맛있었던 김치였다. 



마지막으로 이 집의 오픈형 주방에서 느껴지는 깔끔함에도 또 한 번 놀랐다는. 오래된 음식점들은 보통 정리가 안되거나 지저분한 위생상태를 당연시 여기는 집들도 꽤 많은데 이 집은 정말 미치도록 깨끗하다. 아마도 사장님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너무도 존경스러운 부분. 이런 점은 다른 노포들도 정말 많이 배워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애주가라면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필수 코스. 

전남 나주시 하얀집 곰탕.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국밥 1 + 소주 

2. 2인 방문 시 :  국밥 2 + 소주, 조금 더 드실 수 있다면 수육 추천 

3. 3인 이상 : 국밥 + 수육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인근 금성관 공영주차장을 이용. 굉장히 넓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2. 사실 수육 정말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우설은 반드시 맛보실 것. 

3. 이 집에서도 밀키트와 같은 제품을 판매한다. 본점에서 직접 구입하는 포장 제품은 추천. 단 인터넷 주문용 제품은 본점의 맛은 흉내는 내지만 조금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4. 본점에서 포장 판매하는 제품은 밀키트 제품과 달리 본점 판매 제품을 용기에 담아서 준다. 그러나 가급적 거기까지 갔는데 본점에서 드시고 가시길 추천한다.  

5. 나주의 금성관 관광, 영산포 홍어거리 관광 등 연계해서 주변에 즐길 거리가 많다. 식도락 여행지로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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