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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Sep 22.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인천 용동 새집 칼국수]

쇄락해 가는 용동 권번 골목의 마지막 칼국수 집    

2010년 초반 인천 중구에서는 개항기 인천의 역사를 바탕으로 '아시아 누들로드' 타운 조성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가루 공장인 '대한제분'에서 시작하여 차이나타운의 '짜장면'과 신포시장의 '쫄면', 화평동의 '세숫대야 냉면' 그리고 용동의 '칼국수'골목을 잇는 중구의 면 특화 거리를 엮어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문체부의 지원을 받아 누들 플랫폼을 만드는 그야말로 거창하고 웅대한 계획이었다.


그중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인천 용동의 칼국수 골목이었다. 

인천 용동은 큰 우물이 있던 곳으로 '용동 큰 우물'이라 하면 인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은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지역.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에는 기생들의 조합인 '권번 조합'이 자리 잡았던 유흥의 중심이었던 지역이다. 1970~80년대에 접어들며 이 일대에는 칼국수 집들이 많이 생겨났고, 골목 전체가 국수 끓이는 냄새로 가득 찰 만큼 호황도 누렸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성할 때가 있으면 기우는 때도 있는 법.

지금의 용동은 아주 오래된 구도심의 뒷동네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흥했던 칼국수 골목은 이젠 칼국수를 내는 집이 단 두 집만 남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골목이 되었다. 게다가 중구의 누들로드 프로젝트도 시간이 지나자 시들해진 듯 관리나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 


다행히 두 곳만 남은 칼국수 집은 손맛도 좋아 아직까지 칼국수 골목을 잊지 못하고 찾는 분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오늘 찾은 집은 그중 하나인 '새집 칼국수'


새집 칼국수라는 상호가 '궁서체'로 이쁘게 적혀 있다


외관은 손을 보아 조금 현대적인 간판이 달려 있지만 가게 문을 열고 한 발을 들여놓으면 시간의 흐름이 켭켭이 쌓여 있는 가게의 속 모습을 보게 된다. 사장님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깔끔한 주방에 걸린, 지금은 만드는 사람조차 사라졌을 아크릴 메뉴판이 이 집의 오래된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주방과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이 가게와 함께 늙어오신 듯한 나이대의 분들. 


세숫대야보다는 조금 작은, 그러나 요즘은 보기 힘든 저 에나멜 식기에 찍힌 '새집 칼국수'라는 상호명을 보면 이 집을 스쳐간 시간만큼이나 빛바래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아직도 이 집은 이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 


요즘의 칼국수 집들이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칼국수 외의 요상한 값비싼 메뉴들을 제공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꾸준히 한 자리에서 기존의 메뉴를 지키며 오랜 시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장님은 돈 욕심이 없었을까? 아마 그렇진 않을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을 이 분들은 보신 게 아닐까 하고 지레짐작해 본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 보리밥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보리차를 마신다. 

수돗물의 품질이 좋지 않고, 정수기란 것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 가장 흔하던 물이었던 보리차의 구수한 맛과 향이 나를 80년도 중반의 고향집으로 던져 놓는 것 같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있으면 바지락을 잘 우려낸 육수에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칼국수 면을 끓여낸다. 


이 집 칼국수는 바지락 육수 국물이 굉장히 깔끔한 것이 특징. 전분이 풀어진 걸쭉한 국물을 들이켜면 뜨거운 무언가가 입부터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내려가는 '바로 그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집 칼국수 국물도 진정 해장각이 나오는 작품 중의 작품. 


여기에 함께 나오는 삭힌 고추를 갈아놓은 고추 다재기 한 스푼이면 칼국수의 품격은 단번에 천상계에서나 맛볼만한 음식으로 격상된다. 이 삭힌 고추 다재기는 워낙 만들기도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 요즘은 내는 집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정말 매력적인 천연 조미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사실 이 집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만두였다. 칼국수 집에서 만두가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내게는 이 집 만두는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맛있는 만두였던 것. 정확하게 말하면 이 집 만두는 아무 맛이 없다. 거의 간도 되지 않았고 후추 맛도 느낄 수 없는 재료의 맛만 맛볼 수 있는 그런 맛. 


보통 우리가 '담백한 맛'이라 뭉뚱그려 부르는 그런 맛인데, 이북이 고향인 만두들은 이런 맛들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조금은 옛날식의 두터운 만두피에 각종 채소와 두부, 고기가 들어 있는 만두에서 슴슴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도저히 소주를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평양냉면과 만두에 소주를 마시는 것도 즐기는 편이지만, 칼국수와 만두에 술을 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물론 정말 잘하는 집이라는 전제하에서.  

     


서울의 내로라하는 평양냉면집들처럼 이 집도 대를 이어 누군가가 운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제는 칼국수 골목이라는 간판도 사라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은 칼국수 골목이지만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사라져 갈 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적어도 이곳에 '소주가 잘 어울리는 정말 맛있는 칼국수와 만두를 하는' 좋은 가게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바로 앞 집인 '큰 우물 칼국수'도 마찬가지고.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칼국수 1 + 소주(추가 만두도 권함) 

2. 2인 방문 시 :  칼국수 2 + 소주, 조금 더 드실 수 있다면 만두도 추천 

3. 3인 이상 : 칼국수 + 만두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인근 용동 공용주차장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음. 도보로 2분 거리 

2. 정말 이 집 만두가 슴슴하니 괜찮다. 

3. 개인적인 호불호지만 가게의 청결함은 새집 칼국수가 그리고 맛의 농도는 '큰 우물 칼국수'가 좀 더 낫다

4. 칼국수 먹을 때 고추 다재기는 필수. 맛이 천상계 수준으로 승격된다. 진정한 레어템. 

5. 식사 후 바로 앞의 용동 권번 계단을 걸어 보는 것도 좋고, 이 칼국수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아직도 서 있는 일제강점기 건물 인천 흥업 주식회사 건물이 멋있게 서 있다. (빚을 내서라도 이 건물을 사고 싶었다.)

6. 식사 후 인근 개항로 산책도 추천. 요즘 인천문화재단의 개항로 프로젝트가 조금씩 빛을 발하는 중이다. 

7.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인천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 답동성당 > 신포국제시장 > 차이나타운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명소를 도보로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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