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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Sep 15.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서울 방화 고성막국수]

고성인 듯 고성 아닌 서울 같은 막국수   

조금씩 햇빛에도 가을의 풍요로움이 스며들고 있는 지금, 

너무 이른 추석을 맞아 아직도 가을을 받아들이기엔 조금은 부족한 감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가을은, 

기나긴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지겹도록 내리던 장맛비, 무섭게 휘몰아치던 태풍의 거센 바람도 다 이겨낸, 

그야말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거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과 같은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이렇게 '모든 것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는 투명한 가을날 오후'(한영애 작사, 이병우 작곡의 '가을 시선'의 한 소절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강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터.

기억 속에 있는 이 집, 저 집을 떠올리다 마지막으로 떠 올린 집은 [한 그릇 시원한 막국수]를 시원하게 내 주는 집. 


이맘때쯤이면 지난여름 휴가 동안 전국의 유명 면 집들을 순례하며 탐닉했을 '면성애자'들이 슬슬 금단현상을 느끼기 시작할 시간. 그들의 금단 현상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곳 중 이 집은 반드시 리스트의 윗줄에 들어가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서울의 김포공항과 가까운 곳이라 올림픽 대로에 차만 올리면 쉽게 갈 수 있으니, 우리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방화동 고성 막국수는 이미 막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난데없이 방화동 얕은 산자락 속의 막국수 집이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올림픽대로에서 방화동으로 접어들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방화터널 바로 옆에 막국수 집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살짝 얼은 동치미 국물이 마치 만년설처럼 타래 위에 자리 잡고, 동치미 육수는 마치 호수처럼 스댕그릇의 반을 채우고 잔잔한 수면을 보이며 그 자태를 뽐낸다. 한편의 노랗게 잘 삶아진 계란 반쪽은 호수에 비친 달처럼 동치미 육수에 담겨 있다. 마치 여백의 미를 잘 살린 동양화 한 점 보는 느낌. 

한 눈에도 정. 갈. 함. 이 가득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 나오면 우선 면을 흩트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차가운 육수를 부어 그릇째 들고 들이킨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 하나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듯, 차가움의 고통과 이어 찾아오는 두통이 눈 깜짝할 새에 극도의 쾌감으로 치환한다. 국뽕은 아니지만 이런 취향은 아마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힘이 아닐지. 


얕지만 그래도 산자락에, 그리고 주택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주차를 위해선 정말 엄청난 운전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덤으로 삼생의 덕을 쌓은 것과 맞먹는 주차장 운도 필요하고. 가게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은 없으나 억지로 욱여넣으면 두 대정도 가능할까? 나머지는 눈치 보며 인근에 주차를 해야 한다. 이렇게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에 있는 집이지만,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해도 한 번에 입장이 불가능할 수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웨이팅을 하고 있으니. 나도 처음엔 '그깟 막국수 얼마나 맛있다고 저렇게 난리들일까'라고 얕잡아봤지만, 그깟 막국수는 절대 아니다.    


기본 찬은 슴슴한 백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비빔막국수의 고명으로 올라가는 명태무침 한 접시. 

어찌 보면 단출하지만, 그 세 가지 찬에 이 집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들어있다. 

사리 추가를 하면 사진처럼 한 덩어리가 더 나온다. 진정한 사리추가의 정석이랄까?
순서대로 백김치, 명태무침, 열무김치


사실 동치미 국물만 떠먹어보면 그리 큰 감동은 없다. 근데 이게 막국수 그릇으로 자리를 옮겨 메밀의 향을 품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특징 없는 슴슴함이 그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할지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으니. 게다가 잘 익은 시큼 달콤한 백김치도 이 집의 막국수와 그렇게 합이 좋을 수 없다. 약간은 질긴듯한 느낌의 열무도 싱싱한 풋내를 올리며 튼튼히 기초를 다져준다. 

막국수에 대한 더 이상 부연은 사족일 듯싶다. 그냥 한번 드셔 보시라 권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이 아닐까 한다.  

 

편육(소)과 함께 나오는 새우젓

이 집의 편육도 굉장히 매력 있는 메뉴이다. 

딱 적당히 기름기도 품어 있어 맛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얇게 저며 낸 조각들이 마치 한지에서나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정갈함까지 선사해 주기 때문.(얇다는 부정적인 의미는 아님) 

게다가 함께 내는 새우젓도 조금 잘은 느낌은 있으나 그중에서도 꽤 깔끔하고 좋은 품질의 것이라는 것은 한 입만 먹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막국수만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지방에 대한 부족함 2%는 이 편육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는. 흔히들 호사가들이 말하는 선주후면을 즐기기에는 이 집의 메뉴 구성이 너무나 적절하다는 느낌. 


사실 명태무침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될 수 있으나, 찬으로 내주는 것은 처음 딱 한 번이기 때문에 편육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소주 가격이 아직도 혜자스러운 4천 원이니 어찌 술을 찾지 않겠는가? 


이 집의 음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문이 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내 옛 일터(내 인생 첫 공공기관이자 문화예술분야로 전업한 후 보조연구원 신분으로 처음 근무했던) 구.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어르신들도 이 집에서 식사 한 끼 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여전히 불평이시기도 하다.  


가을의 색이 조금씩 드리워져가는 요즘, 지난여름의 막국수와 냉면에 점점 갈증을 느끼시고 있는 분이라면 이곳 방화동 고성 막국수를 한번 추천해 드린다. 꼭 한번 들러 보시길.

 

메뉴판. 단, 메뉴판의 가격은 변동이 있을 수 있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막국수 1 + 소주 1

2. 2인 이상 방문 시 : 막국수 인원수대로 + 편육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이 집의 가장 큰 맹점은 주차이다. 인근 주택가에 차 댈 곳을 찾는 게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2. 인근 전철역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댄 후 조금 걷는 것을 추천드린다. 단 좁은 길 운전과 주차에 자신이 

    있으시다면 가게 앞이나 인근의 주차도 시도해 보시라.  

3. 사리 추가는 정말 한 그릇만큼의 사리를 내주시므로, 식사량이 많지 않으시면 고려해 볼 것.

4. 비빔 막국수의 고명으로는 명태무침(회무침)이 올라가는데, 이게 또 이 집의 별미이다. 

    정말 맛있어서 별도로 구입해서 집에 가져간 적이 몇 번 있다. 

5. 물막국수, 비빔 막국수 모두 훌륭한 수준의 음식이다. 

6. 평일에도 웨이팅이 자주 걸리기 때문에 11시 15~30분 사이에 미리 가서 줄을 서시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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