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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19.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경동시장 안동집]

배춧잎 한 장의 그 순수함

원래 경상도 음식은 과하게 맵거나 짠 그런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내겐 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년을 살다 서울로 올라온 내게 경상도 음식의 기억은 어릴 적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기억들도 전라도 나주 출신의 어머니 덕분에 집에서가 아닌, 친척집의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한정된 기억이다.

여하튼 우리 친척집들의 음식은 아직도 내겐 정말 '더럽게 맛없는(?)' 맵고 짠 음식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런 기억은 경북의 음식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경북 음식도 꽤 맛없는 음식으로 낙인찍고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딱 이 집에서 처참히 무너지게 되는데, 그 음식들은 바로 투박한 칼국수(안동국수)와 배추전 때문이었다.



경동시장의 안동집은 경동시장 신관, 옛 이마트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30여 년을 시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한 자리에서 꾸준히 시장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이곳은 소박하게 멸치와 채소로 우려낸 국물에 밀가루와 콩가루를 배합하여 만든 면을 풀어 국수를 낸다. 특히 배추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연결선상에 있는 배추전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의 배추전은 아마도 내가 먹어 본 배추전 중 가장 '아무 맛없어 최고인' 그런 배추전.


큰 배춧잎 두어 개 숨을 죽여 팬에 올리고 묽게 푼 밀가루 한 국자 떠서 엷게 부어주면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음식이 맛은 그리 간단치 않다. 겉면을 덮은 밀가루는 밀가루 풋내가 나지 않게 잘 섞어주고 잘 익혀야 하는데 또 이 와중에 배추도 너무 익혀 식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배추전이 사실 음식 하는 사람의 실력을 단숨에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이 집의 배추전은 와인에도 굉장히 잘 페어링 될 것이라 예상하고.


이 집의 배추전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딱 배추라는 재료 맛에 충실한 그런 음식. 잘라져 나온 배추전을 젓가락으로 집어 양념장에 담가 입안에 넣으면 [참 순수한 맛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처녀지와 같은 느낌? 그 완벽한 순수함에 가까운 맛을 내가 이 자리에서 느끼게 되는 구나하는 생각이 음식을 먹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이 집에서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아이템은 바로 칼국수를 내주기 전에 내는 [조밥].


다른 칼국수 집에서 내는 밥은 보통 보리밥이 일반적이고, 또 조밥을 낸다고 해도 일반 쌀밥에 '조' 몇 톨 찾아보기 힘든 상태로 내나, 이 집의 조밥은 그냥 조밥 자체이다. 내 세대는 이 조밥을 일반적으로 맛볼 수 없는 특별식과 같이 여기며 한 끼 정도는 그 거친 식감과 까칠함을 참고 새로운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부모세대에게는 '춘궁기'가 오면 쌀 이외의 다른 곡식(조, 수수 등등)으로 밥을 해 기니를 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으니, 그 세대들에겐 아마도 추억의 음식이 될 듯.  고추장에 조밥을 비벼 먹는 경험도 색다르다.


함께 살아주시는 마눌님과 함께 이 집에 가면 항상 과식을 하게 되는데, 그 주범 중 또 하나는 수육이다.

정갈하게 삶아져 나온 수육을 배춧잎에 얹고 구수한 된장과 다진 마늘, 고추를 올려 먹으면 이 또한 막걸리나 소주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수육 한 접시에 단돈 만원이니 누가 시키지 않을까?


코로나19 상황에 접어들며 한동안 찾지 못하였는데, 시간 내서 한번 찾아야 할 듯하다.

옆쪽 가게 좌석이 아닌, 앞쪽 시장 매대에 앉으면 배추전 지지는 소리도, 칼국수 내는 모습도 모두 앞에서 듣고 볼 수 있다. 시장 음식의 매력이 백삼십만 퍼센트 정도 살아 있는 집이다.



[메뉴추천]

1. 1인 : 손국시 + 배추전

2. 2인 : 손국시 + 배추전 + 수육

3. 3~4인 : 손국시 3 + 비빔밥 + 배추전 + 수육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 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찾아가기 힘든 장소에 있으나, 블로그나 인터넷에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길

2. 주차는 경동시장 신관 건물 바로 옆 지하 주차장에 하면 되는데, 이곳의 입구 양쪽에 가게들이 있어서

   헷갈리기 쉬움. 사전에 정보를 찾아서 주차장 입구 사진들 보고 가실 것을 강추.

3. 음식들이 와인 페어링에도 어울릴 것 같으나,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시도해보지도 않았음.

   영세한 시장의 밥집이라 민폐 끼치지 않고 가게의 주류를 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함.

4.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은 휴무이고 저녁 8시까지 영업해서 퇴근 후 가기엔 조금 시간이 촉박함

5. 평일이나 낮 시간에는 어르신 손님들이 많더라는 것.

6. 이 집의 비빔밥은 특별히 소개하지 않았으나, 손국시만큼 매력적인 음식이라는 것을 보장함.

     (술안주 위주의 소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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