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세발 낙지 요리를 먹고 싶다면 지금 당장 목포로 가자!
원래 시작은 영암이었다.
영산강이 서해로 흐르며 목포와 갈라놓은 땅이 바로 영암이다. 동으로는 장흥군이, 남으로는 해남군이 자리 잡고 있어 해남과 장흥에 비해서는 바다를 접한 지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신은 공평했다. 영암군이 품은 바다는 좁았지만 영산강과 서해가 만나는 돌 천지의 갯벌엔 다른 지방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막힌 선물 하나를 숨겨 두었다. 영암호가 하구둑으로 막히기 전까지 영암군 독천리와 인근 미암면은 갯벌 가득한 최고의 돌낙지로 유명했던 지역이었다. 그곳의 갯벌은 진흙이 아닌 돌 천지의 갯벌. 뻘 밭에서 나는 낙지와 돌을 품고 자란 낙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영암군 독천리의 낙지가 돌낙지였다.
이번 초빼이의 노포일기에서 소개할 집은 바로 목포 독천식당이다. 목포의 독천식당을 소개하면서 뜬금없이 영암의 갯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목포 독천식당의 기원이 바로 영암이기 때문. 아직도 영암군 독천리 독천낙지거리에는 원조 중의 원조 ‘영암 독천식당’이 영업 중이기도 하다. 초빼이가 목포의 독천식당을 처음 찾았던 것은 10년이 훌쩍 넘어지난 2010년대 초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업무상 출장으로 찾은 목포에서 업무 관련 미팅을 마친 후 손님맞이를 하겠다는 이 지역분들의 초대로 찾았던 것이 바로 목포의 독천식당이었던 것.
사실 낙지로 만든 요리는 꽤 많이 접해 본 음식이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 전라도 출신 어머니의 손맛은 어지간한 식당 주방장보다 더 맛깔스러워 다양한 전라도 음식을 집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엔 당연히 낙지로 만든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곧잘 해 주시던 음식은 낙지볶음이었다. 다양한 채소와 낙지, 그리고 매콤 달콤한 양념이 넓은 팬 안에서 제대로 합을 맞춰 꽤 맛이 좋았었다. 때로는 반찬이 되고, 때로는 아버지의 술안주가 되었으며, 때로는 비빔밥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실력의 주방장이 내는 음식에는 사실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어 자주 찾지 않았던 음식이기도 하다.
첫날 미팅에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협의가 잘 이뤄졌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목포에 계시던 관계자분들이 꽤 공격적으로(?) 술을 권하셨다. 당시 함께 출장길에 올랐던 본부장님이나 초빼이 모두 어지간해서는 남들에게 술 못 마신다는 소리를 듣지 않던 사람들이라 덤덤하게 술잔을 받았다. 상대편 본부장님과 우리 본부장님이 서로 술잔을 돌려가면서 흥을 돋웠다.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바로 독천 식당의 낙지볶음과 연포탕, 낙지 탕탕이, 낙지 호롱구이였다. 그리고 술자리의 마지막에 그분들이 주문해 주신 안주가 세발낙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아있는 세발낙지 한 마리를 나무젓가락에 끼워 돌돌 말아먹는 바로 그 안주. 가끔 집을 찾으시던 외삼촌 덕분에 몇 번 먹어본 기억이 있어 초빼이에게는 그만한 진수성찬도 없었다.
아마도 목포분들이 '서울 촌놈'들의 기를 죽이고, 목포의 진미를 뽐내기 위해 주문해 주신 안주였는데, 낙지가 꿈틀대는 대접이 상에 오르자마자 덥석 집어 나무젓가락을 끼워 맛있게 먹으니 '이 양반 낙지 좀 먹을 줄 안다'라고 연신 감탄만 쏟아 내셨다. 그 당시 워낙 맛있게 먹었더니 당시로서도 꽤 비싼 세발낙지를 추가로 주문해 주셨던 기억도 났다. 타 기관과 성공적인 협력관계도 구축해 사업의 성과도 얻게 되었고, 목포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음식도 접할 수 있었으니 이곳 독천식당의 이름이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었다.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써 가며 반드시 제목에 올리고 싶었던 식당의 이름이기도 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24년 6월의 어느 날 아침, 혼자 독천식당을 찾았다. 목포역에서 버스를 내려 독천식당 인근 동네를 걸었다. 골목 한 편을 돌 때마다 목포가 간직한 주옥과 같은 노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달콩물]이 아직 셔터를 열지 않은 채 나를 반겼고, 그 옆 길로 조금만 더 걸어 내려가니 정말 흔치 않은 식재료로 음식을 내는 [동궁 가물치]의 간판도 눈에 들어왔다. 이내 독천식당에 다다르니 아침 10시가 안 된 시간. 독천식당을 다시 찾는다는 설렘에 너무 서둘러 찾았다. 매장 오픈 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던 것. 인근 카페에서 노포일기를 조금 끄적이다 11시에 다시 갔더니 이미 식당은 반정도 사람들로 차 있었다.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초빼이의 기억으로는 예전엔 모든 좌석이 좌식 테이블로 되어 있어 음식을 먹으면서 꽤 여러 번 자세를 가다듬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의 좌석이 입식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노포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단체 손님들은 좌식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는지 방처럼 꾸며진 룸도 꽤 시끌벅적했다. 옛 추억을 하나씩 떠 올리며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는 그 시간도 행복했다. 첫 끼니로 이 집을 찾은 것은 독천식당의 낙지요리에 소주 한 잔을 아침나절부터 기울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낙지 비빔밥과 연포탕, 그리고 보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마치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수저는 언제 꺼낼까?, 수저받침은 티슈를 쓸까? 안주가 나오면 소주부터 먼저 한 잔 할까?' 등등 오만 잡생각이 머릿속을 떠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미 이 집 음식에 졌다. 패배감에 마음이 흔들리려 할 때 즈음, 찬을 실은 카트를 밀면서 직원분이 다가오셨다. "10년 만에 왔어요, 저. 여기" 묻지도 않은 말을 입 밖으로 냈다.
"아, 네~" 겸연쩍음에 무의식적으로 애꿎은 소주병을 돌려 땄다. 소주잔은 부끄러움이 차오르는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오늘 첫 음식이 소주가 되었다.
오이냉국은 낙지 비빔밥에 딸려 나온 국물이다. 소주 안주 겸 민망함을 감추려, 냉국을 그릇째 마셨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시큼한 맛이 정말 기막힌 밸런스를 보여준다. 마산 어머니가 한참 음식을 잘하실 때 해주시던 냉국도 이런 밸런스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나이 들며 미각과 후각을 잃으셔서 그때의 음식 맛을 내지 못한다. 어머니의 나이쯤이면 절정기를 지나 내리막을 걷고 있는 시간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늙어 간다. 내 어머니도, 나도 그 흐름을 비켜가진 못할 게다. 언젠간 나도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을 잃을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다양한 맛을 경험해 봐야 한다.
김치를 집어 들었다. 김치가 많이 쉰 것은 아니나 꽤 강한 젓갈을 써 굉장히 맛이 진하다. 전라도 김치를 꽤 많이 먹어본 초빼이조차 깜짝 놀랄만한 수준. 이 집의 김치는 마치 잘 삭은 홍어와 같다. 김치에 놀란 입에 다른 찬들은 순순한 반찬이 된다. 심지어 평소 손이 가지 않던 콩자반마저 너무 잘 졸여 뜨거운 밥에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시 소주 한 잔을 보탠다. 소주잔을 채우니 낙지 비빔밥이 나왔다. 큰 대접에 하얀 밥이 담기고, 그 위로 콩나물과 낙지를 잘 볶아 올렸다. 스테인리스 대접 안에 빨간 꽃이 피었다. 붉은색 꽃이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독천식당은 여전히 '독천식당'했다. 수저 한 번 대지 않았어도, 그 맛은 모양과 향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래야 제대로 된 음식이다. 이 집을 다시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가?
마음을 가다듬고, 경박해 보이지 않게, 천천히 밥을 비볐다. 수저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밥 알갱이 한 톨 한 톨 사이로 스며드는 낙지볶음의 국물의 번짐이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 뜨겁고 하얗던 순백의 쌀알이 붉게 물든다. 금세 맛있어졌다. 낙지 비빔밥 한 수저를 들 때마다 한 접시의 반찬들이 사라졌고, 또 한 수저에 소주 한 잔이 사라졌다. 비빔밥이 나온 지 5분을 넘기지 않아 이미 소주 한 병이 증발해 버렸다. 목포의 소주는 왠지 빨리 증발해 버리는 것 같다. 게걸스럽게 비빔밥을 먹어치운 후 어느새 테이블 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연포탕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공깃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 추가.
연포탕은 주방에서 나오면 주방 바로 앞에서 사장님이 가위질을 해 내준다. 손님들이 질긴 낙지와 씨름하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한다. 연포탕 특유의 향과 부드러움이 그릇 가득 담겨있다. 연포탕 또한 그 향에 미리 그 맛을 알 수 있다. 탕 속에는 야들야들한 낙지다리와 양파 등이 꽤 많이 들어있다. 이 또한 한 그릇의 끼니이자 안줏거리. 낙지 비빔밥으로 예열을 시작한 초빼이는 연포탕에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연포탕 국물은 해장 기능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연포탕을 한 수저 뜨면 금세 원상태로 돌아간다.
세발 낙지 특유의 가느다란 다리와 그 다리의 쫄깃한 식감이 뜨거운 국물 속에서도 제대로 살아있다. 문어나 낙지는 너무 오래 끓이면 질겨지는데 그 시간을 잘 계산한 듯한 느낌. 연보라색 낙지의 빛깔이 연포탕 국물에도 그대로 스며들 정도만 끓인다. 음식도 과학이다. 수많은 시행과 착오를 통해 가장 적절한 시간을 찾아내는 그런 지난한 과정이 이 연포탕 한 그릇에 들어있다. 짠 음식을 즐기지 않는 초빼이의 입에 딱 맞게 간도 적절하여 더할 나위 없다.
마지막 피니쉬는 갓 나온 뜨거운 밥 한술에 젓갈을 올리는 것으로 했다. 남도의 밥상을 앞에 두고 젓갈 올린 밥 한술을 먹지 않는다면 그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이니, 나름 배운 사람으로서 비례(非禮)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직원분들이 너무 바빠서(11시 30분이 되지 않은 시각에 이미 14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떤 젓갈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밴댕이 젓 또는 갈치 속젓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정말 향이 기가 막혔다. 뜨거운 밥에 올린 젓갈이 피워 올리는 향은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꼬리한' 정취가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천국의 느낌을 더욱 살리는 것은 소주 한 잔이다.
식당에 들어와 4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소주 두 병을 비워버렸다.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에 혼자서 소주 두 병이라니. 조금 과한 듯했지만 목포 시내를 걸으며 술기운을 걷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방문은 혼자 찾은 길이라 예전에 먹었던 요리들을 다시 찾을 순 없었지만 낙지 비빔밥과 연포탕만으로도 독천식당의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찾았을 때도 손님을 맞으시던 남자 사장님의 얼굴엔 주름이 더 깊어졌고, 허리는 더 굽었지만 여전히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이 식당도 따님이 대를 잇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연포탕의 가위질을 하는 이가 그분 이리라. 다음엔 낙지 좋아하는 마눌님을 모시고 이곳을 찾아야 할 듯하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낙지 비빔밥(또는 연포탕)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낙지볶음 + 연포탕 + 추가메뉴(낙지호롱구이, 낙지 탕탕이 또는 계절에 따라 산낙지)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매장 바로 앞 전용 주차장이 있다. 가게 앞에 2~3대 정도 주차 가능.
2. 월~일 11:00~21:00 / 휴무일 매달 2,4째 일요일 / 브레이크타임 15:00~17:00
3. 참고
- 영업시간 및 휴무일은 목포 독천식당 기준이다. 10시 50분 정도에 가서 미리 기다려야 한다.
- 매장 내에 딱 1개의 1인용 테이블이 있다. 초빼이는 그 자리에서 먹었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김정림 선지해장국, 선경준치횟집, 유달콩물, 코롬방제과, 대청, 영암갈비, 중화루, 청자횟집,
동궁가물치, 원조제일돌곱창, 너구리식당, 태동식당, 장터식당, 만선식당, 영암식당, 덕인홍어집, 섬마을
식당, 춘광식당, 해남해장국, 영암떡갈비, 명신식당, 삼학복집, 유달콩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