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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Zero 연대기 5-군

카키 빛 전개 낭 위로 가지런히 묶인 노란색 생명줄이 유독 눈부십니다. 고도 2500피트의 비행기 문을 이탈할 때 저 한 마디 너비도 안 되는 줄이 나의 이승과 저승을 책임져 줄 것이라 생각하니 몸이 살짝 떨렸습니다.


  기내로 들어갈 때 얼굴에 훅 끼치는 기체 프로펠러의 열기와 쇠냄새, 그리고 기름 냄새가 비릿하게 코를 찔렀습니다. 강하순서에 따라 훈련생들이 자리를 잡자 C-130기의 활주로 주행감이 느껴졌습니다. 주 활주로에 진입한 기체는 이륙을 위한 출력을 높였습니다. 엔진 소리가 요동치고 바퀴 생고무의 마찰음이 커집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압력과 함께 몸이 비스듬히 뒤쪽으로 쏠립니다. 무거운 쇳덩이가 지상을 벗어나자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강하지역 20분 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10분 정도의 수평비행이 이어지고 곧 하늘색 교관모를 눌러쓴 강하조장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집니다. 그들은 서로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은 후 양쪽 기체문을 거침없이 열어 올렸습니다. 문이 개방되자 바깥의 바람이 차가운 소리를 내며 기내를 휘감고 엉켜 돌아 나갑니다. 강하조장들이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드롭존을 확인한 후 완수신호를 보냅니다.


  강하지역 6분 전입니다. 기체가 드롭 존에서 한 바퀴 공회전을 했습니다.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정박줄에 생명줄을 걸고 열린 문으로 나아갔습니다. 문의 돌출된 발판을 딛자 지상은 가깝고도 아득했습니다. 눈 아래 펼쳐진 세상은 금방이라도 손에 쥐어질 것 만 같았습니다. 이대로 추락하면 수초 이내에 내 몸은 땅에 부닥쳐 잠시 솟아올라 부서질 것만 갔습니다. 삶에 있어 지상과 하늘의 경계는 모호하고 아득하기만 합니다.


  멀리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건 곧 강하 시작의 알림입니다. 교관들은 묘지가 끝나는 지점부터 드롭존의 시작이라고 강하브리핑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입시켰습니다. 왜 하필 그 자리에 묘지가 있단 말입니까.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제가 묻힐 곳이 저곳입니까. 특전단 공수교육의 첫 강하에서 교육생들이 자신을 버리기에 이보다 더 절묘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1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헬멧끈이 뺨을 때립니다. 아프다는 감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생명줄을 쥔 손에 땀이 고입니다. 제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요.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시간을 돌릴 수 만 있다면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생은 한 번 발을 디디면 되돌리기 힘든 곳입니다. 그게 세상 이치이자 삶의 길입니다.


  왼쪽 눈으로 빨간불이 점멸되었습니다. 동시에  녹색불이 점등되는 것이 보입니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십니다. 찰나의 시간이 영원 같습니다. 곧 선임교관의 찢어지는 목청소리가 들립니다.


  “고!! “


  “이런 제기랄”


  몸이 프로펠러 후폭풍에 뒤채입니다. 일만 이만을 외칩니다.  곧 공중으로 어깨가 “둥”하고 떠오릅니다. 산개검사.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확인합니다. 이상유무를 확인했습니다. 국방색의 둥근 천이 하늘에 곱게 펼쳐져 있습니다. 어떤 인적도 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소리만이 사각거리며 뺨에 닿을 뿐입니다. 나는 살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중간에서 문득 세상이 고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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