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Oct 09. 2023

훈아형

잡담

  나훈아라는 가수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우리나라의 국보급 가수라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직접 작곡 작사까지 곡도 잘 만드니까요. 사실 저는 이삼십 대에는 나훈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냥 고리타분한 트롯이나 부르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나이가드니 이제야 비로소 그의 진가가 보이더라고요. 특히 본인이 직접 만든 노래의 가사들에서 말이에요. 물론 고장 난 벽시계라는 노래는 자작곡이 아니지만요. 그래도 니훈아가 불렀으니 그 곡 포함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찾아낸 인생의 철학적 통찰을 잘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요즘 그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글 좀 써보겠다고 연필 끄적이는 제가 무릎을 칠만큼 기막히고 감탄스러운 문장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저 놀랍죠. 그럼 제가 감탄해 마지않는 그 가사를 몇 개 살펴볼게요.


-냉정한 세상. 허무한 세상.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 팔자라거니 생각을 하고 가엾은 엄니 원망일랑 말어라                                 -건배-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사내-


-한 두 번 사랑 때문에 울고났더니 저만 큼 가버린 세월

-뜬 구름 쫓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나훈아 자작곡 아님)-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공-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 긴가민가 조마조마 마음 조리며 살아온 인생, 사랑 때문에 울고 뜬구름 쫓다 보니 어느덧 저만큼 흘러간 청춘과 세월. 일러주지 않아도 알게 될 나이가 되니 너와 내가 어리 석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이 역설, 그저 팔자려니 생각하고 가엾은 어머니 원망 말고 남은 생 살아야죠.



  젊어서의 나훈아는 가는 청춘이 아쉬워 청춘을 돌려달라는 말로 청춘에 대한 미련을 직설적으로 말했지만 이후 그는 채워져 가는 인생의 연륜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삶과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듯 보여요. 참 좋네요.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