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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아형

잡담

by Zero

나훈아라는 가수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우리나라의 국보급 가수라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직접 작곡 작사까지 곡도 잘 만드니까요. 사실 저는 이삼십 대에는 나훈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냥 고리타분한 트롯이나 부르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나이가드니 이제야 비로소 그의 진가가 보이더라고요. 특히 본인이 직접 만든 노래의 가사들에서 말이에요. 물론 고장 난 벽시계라는 노래는 자작곡이 아니지만요. 그래도 니훈아가 불렀으니 그 곡 포함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찾아낸 인생의 철학적 통찰을 잘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요즘 그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글 좀 써보겠다고 연필 끄적이는 제가 무릎을 칠만큼 기막히고 감탄스러운 문장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저 놀랍죠. 그럼 제가 감탄해 마지않는 그 가사를 몇 개 살펴볼게요.


-냉정한 세상. 허무한 세상.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 팔자라거니 생각을 하고 가엾은 엄니 원망일랑 말어라 -건배-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사내-


-한 두 번 사랑 때문에 울고났더니 저만 큼 가버린 세월

-뜬 구름 쫓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나훈아 자작곡 아님)-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공-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 긴가민가 조마조마 마음 조리며 살아온 인생, 사랑 때문에 울고 뜬구름 쫓다 보니 어느덧 저만큼 흘러간 청춘과 세월. 일러주지 않아도 알게 될 나이가 되니 너와 내가 어리 석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이 역설, 그저 팔자려니 생각하고 가엾은 어머니 원망 말고 남은 생 살아야죠.



젊어서의 나훈아는 가는 청춘이 아쉬워 청춘을 돌려달라는 말로 청춘에 대한 미련을 직설적으로 말했지만 이후 그는 채워져 가는 인생의 연륜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삶과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듯 보여요.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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