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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Oct 26.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5.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 이 어령 교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한다”라고 말하는 일터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대개 그런 회사는 일을 시켜 먹을 때만 가족이고 월급이나 복지를 지불해야 할 때는 가족이 아닌 철저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을 취한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라 할 수 있었던 그분은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보다 더 돈독할 수 없을 “가족 같은 관계”를 회의적으로 보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이어령 교수가 말한 상황과 똑같은 일을 겪었던 적이 한 번 있다. 이십 대 후반 중고 자동차 매매 상사에서 근무하며 차를 관리하고 이전 등록 업무를 하면서 말이다.


  사장은 처음 면접을 볼 때 나에게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한다”라고 말하며 내일부터 출근하고 앞으로 잘해 보자는 덕담을 했었다. 월급도 3개 월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올려 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면서.


  그렇게 나는 가족 같은 회사에 취업해 다음날부터 일을 했다. 일주일에 6일을 일하며 열심히 뛰었다. 옆에 자리한 다른 상사보다 판매 매출이 월등히 높았다. 매출이 올랐다는 말은 내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월급 인상은 고사하고 주중에 볼일이 있어 휴가라도 하루 낼라치면 어김없이 그 주 쉬는 일요일 출근해서 하루 쉰만큼의 일을 하라 했다. 월차도 안 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있어 다른 나라보다 친밀도가 매우 높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한 친밀성 높은 가족관계의  정서 때문인지 우리는 늘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사용한다. 가족 같은 회사, 형제 같은 친구와 동료라는 말을 쓰면서.


  이러한 우리의 “가족 같은”관계망은 며느리와 사위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모두 알다시피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한 창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이어령교수의 말이나 내가 겪은 회사처럼 필요할 때만 딸 같은 며느리이자 아들 같은 사위일 뿐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남의 자식이 내 자식과 결혼한 그저 그런 며느리와 사위일 뿐이다..


  비근한 예로, 딸 같은 며느리라면서 명절날 자기 딸은 친정에 오길 바라며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지 않고 아들 같은 사위라면서 금전적인 문제라도 생길라치면 친 아들에게는 아낌없는 지원을 하면서도 사위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습들.


  사실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라는 말은 어찌 보면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억지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생물학적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와 사위가 딸이 되고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냥 자신들이 여태껏 그들에게 며느리와 사위로서의 지위를 존중하지 않고 저지른 실수나 잘못들을 조금이라도 용서받고자 하는 자기기만이고 위안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일부는 진짜 며느리와 사위를 친딸이자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의 감정과 관계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도 겨우 일부일 뿐 다수는 그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며느리는 그냥 딸의 자격이 아닌 순수한 며느리로서 또 사위는 아들의 자격이 아닌 순수한 사위로서 그렇게 인정하고 대하자는 것이다. 괜히 억지스럽게 되지도 않을 딸 같은 며느리니 아들 같은 사위니 하지 말고 말이다. 그냥 객관적으로 며느리는 내 아들과 결혼 한 내 아들의 아내이자 다른 부모의 딸인 며느리일 뿐이고 사위는 내 딸과 결혼 한 내 딸의 남편이자 다른 부모의 아들인 사위일 뿐이다. 그러니 더는 말도 안 되게 딸 같은 며느리니 아들 같은 사위니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며느리와 사위는  그저 며느리이고 사위일 뿐 결코 내 딸과 내 아들이 될 수 없으니.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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