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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Oct 30.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09. 타인의 시선과 자리

몇 년 전이었다. 연말 연예인 시상식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진행을 맡은 사회자 모씨가 식장에 자리한 특정 연예인의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며 사건은 벌어졌다. 사회자는 수수한 점퍼차림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연예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연기자가 아닌 스테프인 줄로 착각했다면서 농담의 의도로 말을 던졌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언행 자체가 무례하다며 그 사회자를 강력하게 질타했다.


  나도 문제가 되었던 해당 영상을 보며 당시 사회자를 질타한 시청자들의 편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저 언행은 충분히 무례하고 공인으로 그런 자리에서 할 행동이 아니었다면서.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그 영상을 어찌하다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 내게 든 생각은, 과연 당시 우리들의 생각은 정말 옳았던 것일까라는 의문이었다. (물론 이 생각이 그 사회자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그런 옹호의 뜻이 아님은 분명히 알아주기 바란다. 그 사회자가 분명 잘 못한 것은 맞지만 그런 차림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배우도 딱히 잘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배우측에서는 촬영을 하다 급히 온 관계로 그렇다고 했지만 그 상황의 진위여부를 떠나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시상식 초청이 당일 급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고 최소한 며칠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기에 그날 촬영이 있어 참석 여부가 확실치 않았다면 당연히 턱시도는 아니더라도 일반 정장이나 하다 못해 재킷이라도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우리는 장례식장이나 예식장에 갈 때는 거기에 맞는 옷을 갖춰 입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입고 갈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범죄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것은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상주와 예식을 올리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날 점퍼차림으로 식장에 온 연예인은, 나는 탈 권위적이고 소탈한 사람으로 타인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나름의 철학과 소신이 있어서 그런 차람으로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장례식과 예식처럼 이 자리 또한 나름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임은 분명했다. 이걸 부정하면 갖춰 입고 온 다른 많은 연예인들을 타인의 시선이나 신경 쓰는 몰지각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꼴이 되어 버리기에 말이다.


  나는 외출할 때 옷을 좀 잘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집 청소와 차량 정리는 좀 게으르다. 그래서 가족들은 옷과 외모에 그렇게 신경 쓰는 만큼 이 두 가지도 그런 정성으로 좀 해 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다문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또 자신을 가꾸는데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럴 때 그 사람에게 똑같이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집 청소와 차 정돈을 그렇게 하는 정성으로 외출할 때 외모에도 좀 신경 쓰라”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외출할 때 누구를 만나거나 볼일을 보게 되면 타인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 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꾸미지 않고 나가면 만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이 두 일은 누가 옳고 그르다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다 달라질 것이기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이건 누구의 잘잘 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 그리고 삶의 방식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뭐야. 그건 바로 남의 삶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거나 참견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던 또는 청소를 하지 않던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타인의 시선으로 오지랖 넓게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말자 이 말이다.


  사람은 다 각자만의 자리와 생활방식이 있다. 그러니 그 자리와 생활 방식이 내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굳이 지적을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일에 대해서 지적할 때 지적을 하는 그 사람의 그 지적도 정답이 될 수 없기에 그냥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방식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자. 미로처럼 얽힌 다양한 군상들의 인생에 그러면 되지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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