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Nov 16.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3. 일조량과 일교차

나는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한다. 추운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여름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풍성해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이다.


   여름에 맛볼 수 있는 과일은 실로 다채롭다. 살구, 복숭아, 자두, 수박, 참외, 멜론, 포도 등 노랗고 빨갛게 잘 익은 과일들이 강렬한 모습으로 나를 유혹한다. 나는 마트와 시장을 둘러보다 가판대와 난전에 쌓여있는 이런 제철 과일들을 보면 가슴이 말할 수 없는 흐뭇함으로 한가득 풍성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요즘 과일은 당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농부들은 어떻게 이런 달고 맛있는 과일들을 경작해 내는 것일까. 실로 그들의 능력이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과일 생산에 있어 나를 의아하게 만드는 한 가지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라는 말이다. TV뉴스에서 기자가 과일이 어떻게 이렇게 달고 맛있느냐고 산지를 찾아 전문가와 생산자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서로 말이나 맞춘 듯 하나같이, 자기 지역의 지리적 여건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가 발생해 이렇게 달고 맛있는 과일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청도의 복숭아도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 나주의 배도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 그리고 강원의 사과, 충청의 포도, 제주의 귤 할 것 없이 과일이 나는 모든 지역이 다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 덕분이리니.


  어떻게 위치적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찾아, 왜 이 과수가 맛있는지를 묻는데 전문가와 생산자 모두에게서 이렇게 똑같은 대답이 나 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의 말대로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 때문에 맛있는 것이라면 청도에 귤이 나도 맛있고 나주에 복숭아가 나도 맛있고 제주에 포도가 나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누군가 이 과일이 왜 유난히 이 지역에서 맛있느냐고 물어오면 방대한 전문 지식을 쏟아 놓을 수도 없고 간략하고 만만한 말이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라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지역의 다른 과일인데 앵무새처럼 일률적으로 이와 같은 동일한 말만 내 뺏는다면 그 지역의 특정 과일이 맛있다는 이유로서는 너무 궁색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진짜 다른 지역과의 차별이 전혀 연구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주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 지역의 과일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더 맛있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 보고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아! 저래서 저 지역의 더 과일이 더 맛있는 거구나”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2022. 7. 4



작가의 이전글 모자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