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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23.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58. 소설가와 만화가

며칠 전 제58회 백상예술 대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1965년, 연극, 영화, TV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 발전과 예술인의 사기진작을 위해 시작된 종합예술상인 백상예술대상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그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계의 권위 있는 시상에서 한 가지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것은 TV부문 대상을 수상한 코미디언 유재석에게 다수의 영화배우들이 축하의 박수를 쳐주지 않고 시큰둥한 모습을 보여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저도 TV 예능을 잘 시청하는 편이 아니라 유재석이라는 코미디언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상식에서 유재석의 수상에 벌어진 영화배우들의 박수 논란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친분 유무와 단순히 박수를 쳐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기본적인 인격문제라고 할까요. 뭐 그런 것 같습니다.

먼저 그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시상식에 자리한 대부분의 영화배우들은 유재석 다음으로 상을 수상한 영화부문 이준익 감독에 대해서는 모두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시상식을 보며 영화배우들이 타 장르 연예인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죠.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일부 네티즌들은 관련 기사에 “대단한 배우들 나셨네. 배우들 인성 오지네”등의 댓글을 올리며 그들의 우월의식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고요.

  그런데 이번 백상예술 대상 시상식과 같은 이런 일은 비단 연예계의 일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문학계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만화가와 소설가일 것입니다.

  사실 만화가 문학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만화도 이야기, 즉 스토리의 창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만화도 소설과 동급으로 보고 싶은데 저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기를 만화가를 소설가보다 한 단계 낮은 급의 하류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너무 비약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 그 의식의 발단이 무엇인지는 조금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만화 보는 자식들에게는 호된 꾸지람을 놓았습니다. “만회책은 보지 마라. 만화는 저급한 것이다. 그런 것은 공부와 담쌓은 속칭 농땡이 들이나 보는 것이다”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달리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명 소설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책은 오히려 더욱더 많이 읽으라고 장려까지 하죠. 그래서 출판사들은 작품성 있는 고전 문학들을 전집으로 내놓았고 그 시절 제법 산다 하는 집들은 한국문학 또는 세계 문학 전집들을 구입해 자식들에게 읽으라며 책장에 빼곡히 책들을 꽂아 놓았던 것이고요.

  돌이켜보면, 저는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또래에 비해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른들이나 알 수 있을 법한 저의 그런 지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늘 궁금해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만화책에 푹 빠져 있어서 그들에게 만화책에서 다 배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른들이 저급하다고 말들 하는 만화책에서 말이죠.

 

  만화책에는 그처럼 또래와 제가 알지 못하는 폭넓은 지식이 담겨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뽐냈던 어른들만이 아는 세상의 법칙은 물론 사랑, 정의, 평화와 행복 그리고 연민과 슬픔 같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나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철학 같은 것들 까지도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이런 알량한 지식과 감정들은 그때 줄기차게 읽어 댄 만화책이 바탕이 된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만화를 소설에 비해 저급하다고 하며 그런 만화가들을 소설가들보다 한 단계 낮은 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백상예술 대상 시상식의 유재석과 영화배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세상의 차별 없는 시선을 이야기하며 왜 굳이 만화가와 소설가를 예를 들어 비교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가수 가운데서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 노래까지 부르는 가수를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며 그들을 진정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고 칭송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대단하게 보는 것은 하나의 능력만으로도 성공하기 힘든 음악에서 무려 세 가지의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를 보면 만화가들 역시도 그렇습니다. 소설가는 허구의 이야기를 문장으로만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그에 비해 만화가는 이야기는 물론 그것을 그림으로까지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작사와 작곡을 직접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고 인정받는 가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영화배우들과 코미디언들의 문제도 같은 이치입니다. 코미디언들을 영화배우보다 절대 낮게 볼 수 없는 것이, 코미디언들은 코너를 구성하고 그에 맞는 대본을 쓰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연기까지 직접 합니다. 즉 주어진 대본으로 연기만 하는 영화배우보다 더 많은 재주를 요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만든 시나리오로 연기만 하는 배우와 또 그림 그리는 능력이 필요 없는, 스토리만 만들어 내는 소설가들보다, 코미디언과 만화가가 결코 낮은 급으로 평가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어린 시절 무의식 중에, 어른들과 사회로부터 만화가와 소설가를 격이 다르게 바라보는 것처럼 무엇을 대할 때 급을 나누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그 유년의 의식 작용으로 저희들 또한 스스로 또는 누군가에 대해 급을 매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렇게 자의적으로 나눈 급 앞에 누군가에게는 윗사람으로 군림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랫사람을 자처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아마 이러한 행태는 저희들 생활 전반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세상의 변화에 맞춰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따라 다른 집단을 무시하는 그런 구태적인 의식의 단단하고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우월의식을 깨부수고 타인을 존중하는 그런 세상으로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2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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