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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26.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86. 늪(입장)

우리나라 사람은 약자보고 강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말을 종종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로자에게 고용주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거나 오갈 곳 없이 쫓겨나야 하는 재개발촌 거주자에게 개발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거나 또는 힘없는 민원인들에게 정치인이나 정부, 지자체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서민에게 재벌 총수의 입장을 그리고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일들 말입니다.


  이 짧은 가상의 글은 그런 그들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옛날 한 마을에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정승반열에 올라 중앙의 요직을 지냈다. 동네 토지가 대부분 자기 것인 만석꾼인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정승으로서의 위세는 물론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 집안이다 보니 곳간에는 언제나 양식이 그득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소중히 여기는 안방 문갑에는 값진 금은보화가 수북하였고 말이다.


  그는 입궐을 하거나 고을 수령을 만날 때 또는 마실을 나갈라치면 늘 최고급 비단옷을 걸쳤고 가마는 옻칠에 자개를 박아 문양을 낸 번쩍이는 것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것조차 성에 차지 않아 네 명이면 충분할 가마꾼을 늘 여덟 명을 거느리고 다녔다.


  그가 행차를 하면 충복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행차를 알려 양반으로서의 위엄을 보이며 고을 평민들은 저 멀리서부터 길을 비켜서게 했다. 동네 궂은일이 생기거나 돈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일절 모른 체 하며 안면 몰 수 하는 그런 그를 사람들은 언제나 인색한 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에 그가 낙상이라도 하길 바라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 양반의 집에는 농사일을 거드는 이름이 “돌쇠”인 머슴이 있었다. 돌쇠는 충직하게 논일이며 밭일을 늘 양반이 만족을 느낄 만큼 해치웠다. 그런데 문제는 돌쇠의 덩치가 크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 항상 밥을 많이 먹는다는 거였다.


  그날도 돌쇠는 한 여름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논일을 하고 돌아와 하녀가 고봉으로 차려준 보리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기생집에서 낮부터 기름진 음식으로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양반이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게걸스럽게 밥을 입에 담고 있는 돌쇠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 언제나 밥을 많이 먹어 집안의 양식을 축내는 돌쇠가 눈엣가시였던 양반은 기생집에서의 흥이 한순간 깨어지며 짜증이 확 일었다.


  ‘저걸 어떡하면 좋을까’ 양반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퍼 김치를 찢어 올려 입으로 넣는 돌쇠를 언짢아하며 불렀다.

  “이 보거라 돌쇠야”

  돌쇠는 양반을 보고 허겁지겁 김치가 올려진 밥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다 황급히 상에 내려놓고 양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혔다.


  “예, 나으리 이제 오십니까요. 헤헤”

돌쇠는 땀에 절어 꾀제제한 누더기 옷으로 입술을 훔치며 양반을 얼굴을 살폈다. 오늘 시킨 일도 요령 피우지 않고 다 마쳤는데 무슨 일일까. 돌쇠는 자신을 부르는 양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신경 쓰여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짚이는 게 없었다. 양반은 밥풀이 입가에 묵은 돌쇠의 얼굴을 보며 못마땅한 심정으로 돌쇠에게 말을 이었다.

  “내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네~나으리”

  “너 내일부터 아침, 저녁 이렇게 두 끼만 먹거라”

  “네?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허 답답한 놈. 말 그대로 내일부터 하루에 아침, 저녁 이렇게 밥을 두 끼만 막으라는 말이다”


  돌쇠는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왜 이 양반이 나보고 하루에 두 끼만 먹으라고 하는 것인가. 돌쇠는 농사일이 고되 사실 하루 세끼도 양에 차지 않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가 매일매일 일을 하려면 그나마 세끼는 먹어야 겨우 그 노동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하루에 두 끼만 먹으라니. 이건 말 그대로 영양실조로 죽으라는 소리와 진배없는 것이었다.


  “나으리! 저더러 내일부터 두 끼만 먹으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어허 이 녀석이 두 끼만 먹으라면 잔소리 말 두 끼만 먹으면 될 것이지 무슨 잔 말이 그렇게 많아”

  양반을 돌쇠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 큰소리로 꾸짖었다.

  “나으리! 그건 아니 됩니다요. 쇤네는 내일 밭에 나가 쟁기질도 해야 하고 돌도 캐내야 하고 논에 김도 매고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몸을 써야 해서 세끼도 부족한데 두 끼만 먹으라니요.. 그건 절 보고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요”

  “어허 이 노~~ 옴~~. 네가 진정 치도곤 맛을 봐야 정신을 차라고 입을 다물 것이냐. 무슨 잔말이 그리 많은고. 너도 훗날 나처럼 양반이 되고 토지를 가지고 머슴을 부리는 입장이 되면 이런 나의 마음을 잘 알 것이니라. 그러니 아무 말 말고 내일부터 내가 이른 대로 두 끼만 먹도록 하거라. 알겠느냐~흠~흠”


  양반은 자신의 결정에 흡족해하며 목청을 다듬은 후 값비 싼 가죽신을 벗고 대청에 올라 넋을 놓고 있는 돌쇠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휑하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쇠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찌 두 끼만 먹고 그 힘든 농사일을 해 낸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보다 더 한 것은 양반의 마지막 말이었다. “훗날 너도 나처럼 양반이 되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거다” 그게 무슨 말인가. 돌쇠는 도무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도 나처럼 훗날 양반이 되면…”내가 살아 훗날 과연 양반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이 정녕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나 한 가. 돌쇠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상에 널브러져 있는 보리밥과 김치가 엉킨 숟가락만을 바라본 체 그저 “허허”하고 실성한 듯 헛웃음만 웃었다.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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