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바람은 날카로웠다. 찢어진 문풍지로 파고드는 그것에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겨우내 지치지도 않는 그의 끈질긴 집요함에 늘 무너졌다. 그날도 우리는 살을 찢으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저녁을 먹었다. 밥상에는 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보리밥이 한 움큼씩 그릇에 담겨있었다. 가족들 모두는 아무 말 없이 그 꽁보리밥을 묵묵히 먹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이어지는 그 보리밥 앞에 끝내 숟가락을 들지 않는 오기를 부렸다. 어머니는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지만 나는 나의 고집을 꺽지 않았다. 정말 철없는 나이의 철없는 고집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람소리는 한참을 이어졌다. 내가 그 차가움에 몸을 움츠려 떨 때쯤 어머니가 장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있었다. 그리고 두 손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그 얼어붙은 두 손에 밥그릇이 하나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밥그릇엔 누가 먹다 말았는지 흰쌀밥이 반쯤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내 앞에 그 밥공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모처럼의 쌀밥에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개눈 감추듯 주린 배를 채웠다. 나는 어머니가 그날 밤 동네를 돌며 어느 집에선가 그 밥을 얻어 온 것임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겨울만 되면 그 시린 어머니의 손에 들렸던 흰쌀밥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 십 년. 어머니는 내가 누군지를 자꾸 잊어버린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 기억 속으로는 그 옛날 철없던 아이의 똥꼬집에 이웃에 가서 밥을 구걸했을 어머니의 그 시린밥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드니 날 보며 웃는 어머니의 얼굴에 그 밥 맛이 너무 시리고 차갑다. 그날 내가 쌀 밥을 씹어 넘길 때 동물처럼 꿈틀대던 내 목울대를 바라봤을 을 어미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