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겨울이었다. 24살. 제대 6개월 후 백수. 선배를 만나러 대구에서 경기도 구리에 갔다. 혼자 사는 선배집에 며칠 머물렀다. 소주를 밤마다 마셨다. 선배도 그때는 이직으로 쉬고 있을 때였다. 술 마시고 잠든 다음날 아침. 문득 동해에 살고 있는 선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즉흥적이었다. 우리는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가서 강릉행 고속버스표를 끊고 동해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해선배는 구리 선배와 동기였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고 강릉 터미널로 마중 나오기로 했다. 우리는 3시간 정도 달려 강릉에 닿았다. 미리 마중 나온 동해 선배와 강릉 시내로 나갔다. 90년도 후반의 강릉 번화가는 겨울의 낭만이 넘쳤다. 음악이 거리를 채우고 젊은 연인들과 삼삼오오 동성친구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삼겹살도 먹고 소주도 마시고 호프집에서 맥주도 마셨다. 큰소리로 떠들고 건배를 외치며 신나게 술을 마셨다. 나는 초저녁부터 감기기운이 슬슬 올라오는 상태에서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고주망태가 되어 세 명이서 여관에 가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에 깨고 나니 머리와 몸에 열이 올랐다. 정신이 몽롱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먹었다. 하지만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선배들은 하루 더 놀다 가자고 했고 아니면 구리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대구의 집에 그렇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강릉터미널에서 포항행 버스를 탔다. 선배들은 아쉬워했다. 나는 버스 좌석에 앉아 열이 오른 몸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지도 상으로는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대구로 오는 게 빨라 보였다. 그런데 무정차라고 쓰인 버스는 중건중간 계속 섰고 한 시간을 정차시킨 채 보내기도 했다. 몸은 열이 올라 엉망인데 좀처럼 포항에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대충 한 4시간 정도면 집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강릉에서 포항까지 오는데 8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기다려 대구에 와 시골 집으로 오는데 3시간 정도 더 걸려 총 11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하! 죽을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로 터미널로 가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오는 것이 훨씬 빨랐을 텐데 생각이 짧아 그 고생을 했다. 역시 인생은 지혜와 경험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믿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 아님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분명 내가 생각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임 있음을 난 그때 겨울 아픈 몸으로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을 거쳐 집으로 오며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