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7. 웃지 않으면 불천절

by Zero

인간에게는 누구나 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웃는 것일 수도, 화를 내는 것일 수도, 또는 이도저도 아닌 그저 무덤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가진 다양한 표정은 우리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에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비록 언어, 즉 말이라는 고유 의사소통 기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면대면의 대화에서는 이 표정이 소통의 80% 이상의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표정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것인지 그것은 제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세한 감정들이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분명 인간에게 그것은 뗄 수 없는 그 무엇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보통 어떤 표정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선, 악의가 없어 보이고 부드러우며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돌면 “그 사람 인상 참 좋네”라고 칭찬을 하며 좋은 감정을 가집니다. 또 그와는 반대로 무덤덤하거나 약간 무섭게 생긴 사람들은 그들의 본성이 어떠하든 약간의 거부감을 먼저 갖게 되는 것이고요. 다시 말해 각자의 본모습과는 상관없이 서글서글하니 인상 좋아 보이는 사람은 평가절상, 그와 반대로 유순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도 인상이 나빠 보이면 평가절하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비스 업종들이야 별 반 다르지 않겠지만 은행은 예전부터 서비스의 최전선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나는 이십 대 후반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겸해 그곳에서 4년 넘게 경비원으로 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출근을 하면 영업 전 매일 친절교육을 한 차례 실시 한 후 객장을 오픈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불특정 고객을 상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이니 만큼 친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이슈인지를 보여주는 아주 강한 역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당시, 고객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된다는 사명 아래 일선에서 힘들게 근무하는 직원들을 보며 고객들이 느끼는 친절과 불친절의 모호함에 적잖이 당황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응대하는 직원은 업무처리와는 별개로 대부분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반면 업무처리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어도 표정이 무표정하면 불친절해 보인다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는 불친절하다고 지목된 직원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거나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만큼 인상을 써 기분 나쁘게 응대했다면 그러한 평가를 내렸던 사람들의 말에 아무 이견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직원이 잘 못 한 것은(결코 잘못이 아니지만 고객 입장에서 바라본 잘못) 오로지 웃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고객이 의뢰한 업무에 충실히 최선을 다했고 그에 따라 고객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웃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천성적인 표정, 즉 타고난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객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그러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친절교육을 한 두 번 이상은 다들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강사는 교육생들에게 제일 먼저 웃는 표정을 연습시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생들의 표정을 바꾸려 하는데 그 이유는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표정에는 웃는 얼굴 외에도 다양한 표정이 존재합니다. 웃는 얼굴도 있지만 찡그린 얼굴도 있고 또 이도저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도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록 웃지 않는다고 해서 불친절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불쾌한 표정으로 인상을 쓴 채 고객을 상대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냥 그 사람 천성이 살갑지 못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인간은 누구나 웃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말 특별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세상은 웃지 않으면 곧 불친절하다는 흑백 논리에 깊숙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런 사람들의 논리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웃지 않아도 충분히 친절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성격자체가 선천적으로 사교성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표정 또한 무표정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이죠.



이러한 우리 인간의 다양성을 봤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그 사람들의 타고난 모습과 성격을 외면 한 체 웃지 않으면 불친절이라는 친절의 기준을 왜곡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20.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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