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계절] 우주인(2)

by 지수

“뭐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다 있어?!”

함께 맥주를 마시던 우주는 해음의 전 직장 이야기를 듣고서 얼굴이 시뻘게진 채 소리쳤다.

“그러게. 세상엔 참 별별 인간들이 많더라.”

해음은 덤덤한 모습으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취직 전엔 구직활동한다고 힘들고, 취직 후엔 회사생활 한다고 힘들고. 맘 편할 날 없는 청춘이다.”

“그러는 넌, 어떤 청춘을 보냈는데?”

“열심히 씨앗만 뿌리고 다녔지 뭐.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런데 제대로 된 수확이 없어서 이젠 좀 지친다.”

우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이전과는 달리 다소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지쳐있는 건,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다는 뜻일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 수백 번 실패하고 실망하더라도, 언젠가는 네가 뿌린 씨앗의 가치가 알려지고 반드시 꽃을 피울 테니까.”

“뭐야, 울보. 지금 나 위로해 주는 거야?”

“그래, 뚱보. 기운 내라. 너답지 않게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너 씩씩한 애잖아.”

“오냐, 고맙다. 건배 한 번 하자.”

둘은 서로 캔을 마주친 뒤 나란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울이랑 다르게 여긴 별이 참 많네.”

우주가 나직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그러게. 예쁘다.”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반짝이는 날이 오겠지?”

“그렇다고 믿어야지. 희망마저 버리면, 저런 별이 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휴…별 되기 참 쉽지 않다.”

우주는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해음도 고갤 숙인 채, 이런저런 고민에 잠겨 연거푸 맥주를 마셨다.



“초록인 도대체 왜 화가 잔뜩 나 있는 거야?”

다음날, 해음이 숙취로 고통받는 몰골로 란에게 물었다.

“기억 안 나?”

란이 꼬무락대는 새끼강아지 현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뭐 사고 쳤어?”

해음의 질문에 란은 한심하다는 듯 해음을 흘겨보았다.



어젯밤, 열한 시가 되어갈 무렵. 해음의 핸드폰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신 술로 인사불성이 된 해음은 우주와 함께 편의점 앞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이윽고, 정신이 조금 돌아온 우주가 해음을 대신해 전화를 받았다.

“야, 여자 사람! 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밖이야!”

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날카롭게 쏟아져 나왔다.

“박해음…지금 많이 취해서 혼자 못 들어갑니다…….”

우주가 잔뜩 꼬인 혀로 간신히 답했다.

“환장하겠네. 거기 어디야?”

“편의점…해송역 근처 편의점…….”

그 말을 끝으로 우주는 다시 의식을 잃고 해음과 같이 고개를 묻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초록이 숨을 몰아쉬며 해음을 향해 달려왔다.

“해음아. 정신 좀 차려봐.”

해음은 완전히 술에 취한 채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초록은 한숨을 내쉬며, 옆에 함께 널브러진 우주를 쳐다보았다.

“정신 좀 차리지?”

초록이 성가시다는 듯 우주의 왼팔을 툭툭 쳤다.

“응…? 뭐지 이 멀대는…? 나무인가?”

우주가 헤벌쭉 거리며 초록을 올려다보았다. 초록은 생에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을 느꼈다.

“네가 해음이 술 먹였어?”

“에헤이-! 먹이다니! 같이 마신 거지…….”

우주가 해음과 마신 맥주 캔들을 끌어 앉으며 히죽 웃어 보였다.

“알아서 잘 들어가라.”

초록이 해음을 조심스레 업으며 말했다.

“거 참, 너무하네! 이렇게 만취한 사람을 혼자 두고 가다니! 잔인한 녀석…매정한 녀석…이 차가운 세상…!”

우주가 한풀이하듯 하늘을 보며 목청을 높였다.

“제대로 진상이네.”

해음을 등에 업은 초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속 집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초록이가 데리고 왔구나……. 아니, 그럼 우주는?”

란이 조용히 검지로 해음의 뒤를 가리켰다. 해음이 얼떨떨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몰골의 우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초록의 방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미치겠네…….”

해음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우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제 너희 때문에 멍청이가 밤중에 산을 두 번이나 탔어.”

“하…초록이가 좋아하는 민트 초코라도 사 와야겠어…….”

해음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때 우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해음의 옆으로 다가왔다.

“야, 박해음. 여기, 거기 아니야? 예전에 귀신 나온…”

“입 다물고 당장 따라 나와.”

해음은 재빨리 우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우주를 마당으로 끌고 간 다음 빛의 속도로 란의 집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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