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무렵, 미래가 새끼 한 마리를 건강히 출산하였다. 미래와 똑 닮은 귀여운 하얀색 진돗개였다. 해음과 초록은 머리를 맞대어 새끼에게 지어줄 이름을 고민하였다. 그 결과, 이름은 해음이 제시한 ‘현재’로 결정되었다.
“영어에서 현재는 지금의 시간이라는 뜻 외에 선물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앞으로 미래에게 이 아기는 현재를 살아가게 할 선물이 될 거야.”
해음의 말에 초록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은행 앱을 통해 통장 잔액을 확인한 해음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론 안 되겠어.”
“응? 뭐가?”
해음의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초록이 해음을 바라보며 물었다.
“파트타임 일이라도 구해야겠어.”
“일하러 가겠다고? 괜찮겠어?”
“이대로 있는 게 더 안 괜찮을 것 같아.”
“그럼 나도 새로운 걸 시작해 봐야겠다.”
“생각 중인 게 있어?”
초록이 손에 쥐고 있던 책의 표지를 흔들어 보였다.
“…뜨개질?”
“응. 이제 곧 더 추워질 테니까, 미래랑 현재한테 따뜻한 옷을 선물해 주려고. 그리고…”
“그리고 뭐?”
“아니야, 아무것도.”
초록은 흐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선 다시 책을 펼쳤다. 해음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르바이트 앱을 열어 파트타임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박해음.’
해음은 익숙한 건물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곳은 우진을 처음 마주쳤던, 바로 그 편의점이었다. 잠시 주저하던 해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 너머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이력서 제출하러 왔는데요…….”
“어…? 너…!”
직원이 검지로 해음을 가리키며 두 눈을 크게 떴다. 해음은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저 아세요?”
“야! 나 강우주야, 박해음!”
“강우주…?”
“그래! 해송초등학교 강우주!”
“아…! 그 강우주! 와…너 살 다 빠졌다. 완전 다른 사람 같아.”
“그게 벌써 이십 년 전일이야. 어쨌든 다시 보니 반갑다. 넌 여전히 울보냐?”
“그래, 울보다. 그런데 넌 계속 이 마을에 있었던 거야?”
“아니. 한 달 전쯤에 내려왔어. 그전엔 서울에 있었지.”
“…무슨 일 있었어?”
“말하자면 길다, 휴. 이력서 내려온 거 보니까 너도 나랑 비슷한 처지인 것 같네.”
“그래. 나도 말하자면 길어.”
“내가 사장님한테 잘 말해줄게. 울보인데 꼭 뽑으시라고.”
“장난칠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뭐 생사까지야. 야, 이따 저녁에 시간 되면 여기 앞에서 맥주나 한잔할래?”
“맥주? 음…그래. 이따 보자.”
“오케이. 어, 손님 들어온다. 그럼 여덟 시쯤에 다시 보자.”
“알았어. 나 간다. 이력서 잘 좀 전달해 줘.”
“당연하지.”
해음이 나간 후, 우주는 재빨리 해음의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몇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해음은 꽤 오랜 공백기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 우주의 마음속에 적막이 스쳤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다 문득,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취직 한 번 못한 나보단 나은 삶을 살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곧 우주의 입가에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주는 고개를 저으며 해음의 이력서를 조심스레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