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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Aug 26. 2023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복수

샤론 테이트를 추모하며


직장동료 L은 재작년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볼만한 좋은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권했는데 L은 보고 나서 큰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이 영화는 배경을 알고 봐야 하는데. 사실 나도 영화에 나오는 영화 속 영화와 음악 중 이해하는 부분이 적었으니까. 그래도 분명히 알고 봐야 하는 사전 지식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면 이 영화의 핵심을 놓치는 거니까. 점심 먹고 이어진 나의 수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일단 유튜브로 핵심 장면에 나오던 노래를 연속 듣기로 틀었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Twelve thirty. 이 음악은 그 자체로 그날 밤을 일깨워 주니까.


https://youtu.be/1xa7NWRJjPQ?si=y40y93P2Ddq7GXib



Q: 근데 마지막 장면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A: 사실 영화는 할리우드의 60년대 역사를 꿰뚫는 많은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어. 그런데 초점은 바로 샤론 테이트라는 여배우에 맞춰져 있어. 그걸 잘 못 느끼겠지만. 중간에 이소룡에게 무술을 배우는 샤론의 모습 기억하지. 정말 빼어난 미모의 여배우였어. 1969년 당시 막 스타덤에 오르려는 그런 배우였지. 훗날 <피아니스트>를 연출한 로만 폴란스키(당시 36세) 감독과 결혼해서 임신 8개월 중이었어.



Q: 마고 로비라는 배우가 맡았던 배우군요.

A: 맞아. 실제 샤론과 많이 닮았어. 당시 샤론은 26살이었고 임신우울증이 있었어. 그래서 그날 오랜만에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저녁을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먹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갔지. 애비게일 폴저라는 친구가 그녀를 위해 피아노를 쳐주지. 폴저커피회사의 상속녀였어. 그 밖에도 보이텍이라는 로만 감독의 친구도 있었고 제이 세브링이라는 헤어디자이너도 같이 있었어.


제이 세브링과 샤론 테이트


Q: 그날밤 남편은 없었나요?

A: 로만은 영화 스케줄 때문에 런던에 있었어. 제이 세브링이 LP판을 턴테이블에 걸 때 나오는 음악이 지금 흐르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Twelve thirty"야. 이들이 부른 "캘리포니아 드리밍"도 영화 속에 흐르지. 하지만 그 더운 밤에 제이는 샤론을 위해 이 곡을 틀어줘. 그때 차 한 대가 집 앞으로 올라오지.




Q: 옆 집 디카프리오가 나와서 막 욕하던 그 장면이죠?

A: 맞아, 그날 릭 달튼도 만취상태에서 자기 집 앞 사유도로에 고장 난 머플러를 달고 들어온 차를 보고 짜증이 난거지. 게다가 창으로 내다보니 히피들이었거든. 마가리타를 만들던 주전자를 들고 바로 튀어나가서 쌍욕을 날리지. "야, 데니스 호퍼, 빨리 이 똥차 가지고 당장 꺼져." 운전자가 배우 데니스 호퍼를 닮아서 한 말이지. 옆에 앉은 여자가 노려보니까 "넌 뭘 쳐다봐, 대가리는 시뻘게 가지고."


Q: 그럼 실제로 그날 릭 달튼이 그런 행동을 한 건가요?

A: 아니지. 릭 달튼(리어나도 디카프리오)이나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는 타란티노 감독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야.


Q: 그럼 그날의 진실은 뭔가요?

A: 찰리 맨슨이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있어. 이마에 나치마크를 그린 사이비 교주이자 히피였지. 농장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젊은 여자들을 선동했어. 흑인들과 연예인들, 특히 TV와 영화에서 살인을 일삼는 배우들을 처단하면 천국이 도래한다고 뻥을 쳤는데 당시 젊은 애들이 그놈한테 속아서 마약에 쩐 생활 속에 미쳐버렸지. 그들을 가리켜 맨슨 패밀리라고 해. 근데 맨슨이 노래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리코딩 프로듀서가 혹평을 했대. 그런데 그 프로듀서가 살던 집이 로만 감독과 샤론이 새로 이사 온 그 집이었어. 그래서 맨슨은 하수인들(남자 1, 여자 2)을 시켜서 그 프로듀서를 없애라고 지시한 거지.


Q: 헐,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았네요.

A: 그렇지. 그들은 샤론의 집을 쳐들어가서 협박하기 시작했어. 번지수가 잘못된 것도 알았지. 하지만 어차피 연예인들이니 처단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샤론은 뱃속의 아이라도 살려달라고 부탁했대. 하지만 자비는 없었어. 그날 밤 함께 있던 샤론과 친구들 모두 처참하게 사살됐어. 그것도 칼에 의해 난도질 됐어. 너무나 억울하지.


억울하게 희생된 샤론의 집 광경


Q: 그럼 영화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군요.

A: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은 할리우드의 최대 비극이었어. 처음엔 그 집 관리인과 심지어 이소룡도 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했대. 하지만 얼마 후 다른 사건 조사 중 그들의 자백으로 이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지. 할리우드 전체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어. 그날 밤 다른 약속 때문에 샤론의 집에 오지 못했던 운 좋은 배우가 스티브 매퀸이었어. 영화 속 영화 "대탈주"로 유명한.



Q: 그런데 영화는 거꾸로 히피들을 잔인하게 복수하던데.

A: 타란티노의 평행세계관이 발동한 거지.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를 향해 난사했던 것과 유사한 결말이지. 타란티노는 과거의 억울했던 피해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 가해자들에게 받은 만큼 되갚아 줘. 아니 좀 더 세게 복수하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서 그날 쳐들어온 여자의 빨간 머리를 붙잡고 브래드 피트가 벽난로 위에다 한 다섯 번 처박고, 총든 남자는 맹견 브랜디에 의해 처단시키지. 불도그와 복서를 합친 브랜디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데 범인의 중앙급소를 물어버리지. 그리고 칼을 들고 수영장으로 다가간 여자를 디카프리오는 화염방사기로 구워버려. 여기서 타란티노의 속마음이 처절하게 드러나는 거야. 이 복수장면을 위해 2시간 남짓 밥을 뜸 들인 거지.


Q: 말하자면 인위적인 해피엔딩인 거군요.

A: 타란티노는 그렇게라도 억울하게 죽은 샤론을 추모한 거야. 그가 아는 영화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당시의 할리우드의 모든 역사도 함께 펼쳐본 거야. 그 복수극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정말 사이다일 수밖에 없어. 물론 사이다를 마신 후에도 눈물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


Q: 남편은 정말 충격이 컸겠어요.

A: 샤론이 죽은 후 로만은 본인의 존재의 반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10년이 지나 1979년에 개봉한 나스타샤 킨스키의 <테스>는 샤론에게 바치는 작품이었대. 샤론이 언제나 머리맡에서 읽고 자던 책이자 늘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했었대. 하지만 로만 역시 13살짜리 배우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지금까지 비난을 받고 있어. 아마 샤론을 잃고 그의 영혼은 심하게 파괴되지 않았을까.


로만과 샤론


Q: 듣고 보니 슬픈 얘기네요.

A: 응, 마지막에 히피들이 모두 죽고, 제이 세브링이 무슨 소란이냐고 묻자 릭 달튼이 답하지. 미친 히피들이 쳐들어와서 다 처리했다고. 그때 인터폰으로 샤론이 릭에게 인사를 하고 잠시 올라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해. 그리고 부감으로 샤론과 릭 달튼이 만나서 가볍게 포옹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 난 이 장면에서 많이 울컥했어. 그건 릭 달튼으로 분장한 타란티노가 부활한 샤론과 포옹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거든. 그래서 난 영화 속에서 가끔 질질 짜는 릭 달튼의 눈물이 다름 아닌 타란티노의 눈물로 보였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Q: 듣고 보니 새롭네요.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A: 그러길 바라. 그리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 "Twelve thirty"가 흐르는 장면부터는 집중해서 봤으면 해. 타란티노가 보여주고 싶은 복수와 회한의 판타지니까....



*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커피는 식었고,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는 20번쯤 반복되었나 보다. 코로나 마스크 속에 땀이 가득 찼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그렇듯 이 노래의 가사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당시 젊은이들이 느꼈던 시대와의 불화를 감미로운 음악에 담은 한 편의 시 같았다. 왠지 모를 구슬픈 멜로디는 샤론을 위한 추모곡 같았다.


이제는 편히 잠드소서. 샤론.



"Cloudy waters cast no reflection;  흐린 물은 반사를 하지 않고,

Images of beauty lie there stagnant. 아름다움의 이미지는 멎어있고,

Vibrations bounce in no direction, 진동은 방향성을 잃고,

And lie there shattered into fragments. 조각으로 깨진 채 흩어진다."
(Twelve thirty - Mamas and Papas 중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샤론 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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