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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Sep 20. 2023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자존감

갱년기 남성의 인생재부팅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다 말았다. 이유는 자꾸 비교하게 되어서였다. 세상엔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성공한 사람이 글까지 잘 쓰는 줄은 몰랐다. 어줍잖게 좋아요!를 많이 받아보려고 몇 건 도전도 했는데 나 정도의 인맥으로는 소식이 멀리 퍼져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접었다. 소소하게 안부나 묻는 건 단톡방으로 충분했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Brad’s Status)”는 인생의 후반으로 접어드는 중년 남성의 회한과 좌절 그리고 성공한 친구들과의 비교를 통해 낮아지는 자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감동이 올 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갱년기 남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다. 


아니래도 오늘 아침엔 갑자기 고교 동창 M의 소식이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 보았다. 굴지의 대기업 전무 승진기사가 보였다. 인품도 좋았던 친구라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좀 지나니 갑자기 그의 연봉이 부러워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중학교 동창 K의 소식도 궁금했다. 유명 잡지의 편집인을 지낸 그 친구는 젊은 날의 꿈을 멋지게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는 나 자신의 형편(status)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둘러보니 여전히 부러운 게 천지다. 



브래드(벤 스틸러)는 비영리재단(NGO)에서 부자들과 어려운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겐 대학동창 네 명이 있었는데 모두 성공했다. 여기서 성공이란 꽤 많은 돈을 가졌거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 한 친구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도움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아픔을 가진 후로는 친구들과 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브래드만 빼고 모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좌절감이 느껴졌다. 브래드의 독백처럼 ‘그들을 묶는 끈은 우정이 아니라 성공’이었다.



그런 브래드의 아들 트로이가 대학진학을 앞두고 동부의 명문대로 면접을 가게 됐다. 이때부터 브래드는 갑자기 아들을 통해서 본인의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한다. 하버드 대학에 꼭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가장 싫어하는 유명인 친구에게 결국 전화로 부탁하기에 이른다(기부 이야기에 답을 하지 않았던 친구다). 게다가 아들의 친구인 하버드 여학생 두 명을 만나자 그들의 젊음과 신념까지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여학생이 NGO에 관한 논문을 쓴다고 하며 자문을 구하는데 이미 속물이 된 브래드는 이상을 뒤엎는 말을 뱉고 만다. 


“돈부터 벌어라. NGO는 불쌍한 직업이다.” 



브래드는 아마도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거절로 고통을 당한 것 같다. 그도 처음에는 이상적인 신념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의 냉정함이 그를 실패자처럼 느끼게 했다. 


‘난 선한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야. 세상은 날 미워했고, 나도 세상이 싫었다.'


아들의 대학면접 여행에 동참한 중년 브래드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결론은 이 세상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행복은 만족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의 인정과 평가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삶이라는 가치는 길이와 부피를 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브래드는 아들의 면접을 도와준 속물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그가 친구들의 뒷담화를 계속 이어가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한마디 쏜다.


 “근데, 너 페이스북 하잖아.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왜 생깠냐. 계속 친구들 욕이나 하고. 넌 도대체 뭐냐. 네가 내 친구냐, 이 *새끼야...


브래드는 곧바로 어제 만난 여학생들이 연주하는 공연장으로 간다. 거기서 플룻과 바이올린의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유모레스크’가 펼쳐질 때 ‘삶의 진한 생생함’으로 맘속에 남은 비루함의 찌꺼기들이 녹는 체험을 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브래드. 그 공연장에서 그는 새삼 세상을 향한 욕망이 아닌 사랑을 경험한다. 그렇게 47세 브래드의 인생이 재부팅을 한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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