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자존감

갱년기 남성의 인생재부팅

by 블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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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다 말았다. 이유는 자꾸 비교하게 되어서였다. 세상엔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성공한 사람이 글까지 잘 쓰는 줄은 몰랐다. 어줍잖게 좋아요!를 많이 받아보려고 몇 건 도전도 했는데 나 정도의 인맥으로는 소식이 멀리 퍼져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접었다. 소소하게 안부나 묻는 건 단톡방으로 충분했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Brad’s Status)”는 인생의 후반으로 접어드는 중년 남성의 회한과 좌절 그리고 성공한 친구들과의 비교를 통해 낮아지는 자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감동이 올 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갱년기 남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다.


아니래도 오늘 아침엔 갑자기 고교 동창 M의 소식이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 보았다. 굴지의 대기업 전무 승진기사가 보였다. 인품도 좋았던 친구라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좀 지나니 갑자기 그의 연봉이 부러워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중학교 동창 K의 소식도 궁금했다. 유명 잡지의 편집인을 지낸 그 친구는 젊은 날의 꿈을 멋지게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는 나 자신의 형편(status)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둘러보니 여전히 부러운 게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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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벤 스틸러)는 비영리재단(NGO)에서 부자들과 어려운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겐 대학동창 네 명이 있었는데 모두 성공했다. 여기서 성공이란 꽤 많은 돈을 가졌거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 한 친구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도움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아픔을 가진 후로는 친구들과 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브래드만 빼고 모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좌절감이 느껴졌다. 브래드의 독백처럼 ‘그들을 묶는 끈은 우정이 아니라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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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브래드의 아들 트로이가 대학진학을 앞두고 동부의 명문대로 면접을 가게 됐다. 이때부터 브래드는 갑자기 아들을 통해서 본인의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한다. 하버드 대학에 꼭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가장 싫어하는 유명인 친구에게 결국 전화로 부탁하기에 이른다(기부 이야기에 답을 하지 않았던 친구다). 게다가 아들의 친구인 하버드 여학생 두 명을 만나자 그들의 젊음과 신념까지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여학생이 NGO에 관한 논문을 쓴다고 하며 자문을 구하는데 이미 속물이 된 브래드는 이상을 뒤엎는 말을 뱉고 만다.


“돈부터 벌어라. NGO는 불쌍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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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는 아마도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거절로 고통을 당한 것 같다. 그도 처음에는 이상적인 신념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의 냉정함이 그를 실패자처럼 느끼게 했다.


‘난 선한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야. 세상은 날 미워했고, 나도 세상이 싫었다.'


아들의 대학면접 여행에 동참한 중년 브래드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결론은 이 세상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행복은 만족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의 인정과 평가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삶이라는 가치는 길이와 부피를 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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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브래드는 아들의 면접을 도와준 속물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그가 친구들의 뒷담화를 계속 이어가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한마디 쏜다.


“근데, 너 페이스북 하잖아.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왜 생깠냐. 계속 친구들 욕이나 하고. 넌 도대체 뭐냐. 네가 내 친구냐, 이 *새끼야...”


브래드는 곧바로 어제 만난 여학생들이 연주하는 공연장으로 간다. 거기서 플룻과 바이올린의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유모레스크’가 펼쳐질 때 ‘삶의 진한 생생함’으로 맘속에 남은 비루함의 찌꺼기들이 녹는 체험을 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브래드. 그 공연장에서 그는 새삼 세상을 향한 욕망이 아닌 사랑을 경험한다. 그렇게 47세 브래드의 인생이 재부팅을 한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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