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문 앞에서 선 순간.
나는 그렇게 ‘나경’이라는 사람과 서서히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언니처럼 따뜻했고, 내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었다.
"나보다 더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분이 계시는데 그 곳에서 듣는건 어때?"
그때는 차마 알지 못했다. 그 곳이 어디인지. 단지 내가 변화할수 있다는 그 믿음 하나만으로
아무런 의심없이 승낙을 했다.
나경언니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낸다고 생각했었으니까.
2015년 6월 19일, 종강날.
아직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경 언니와 나는 송화동의 한 카페에 있었다.
카페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스무디를 계속 휘저으며 앉아 있었는데,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강사님이 이번에 거의 무료로 수업해주셔.”
독일. 그 단어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언젠가 그곳에서의 유학을 꿈꾸던 나에게,
그건 너무 매력적인 소개였다.
“이제 시간 됐다. 우리 갈까?”
언니가 일어나며 가방을 챙겼다.
약속이 있었던 걸까. 나는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섰다.
그 건물은 겉으로 보기엔 오락실 같았다.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중형 강의실 크기의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신천지 세뇌의 문”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쭈뼛거리며 인사하자,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다가왔다.
“가람 자매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자매님.
그 단어가 낯설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곁에서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마치, 내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가 정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강사라는 남자가 미소 지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설득당하는 힘.
“…그래서 인쇄비용으로 7만 원만 주시면 돼요. 7개월 동안 나눠 내셔도 되고요.”
그건 ‘인쇄비’가 아니라 ‘헌금’이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때는 그저
‘부모님 몰래 7만 원을 어떻게 구하지?’
그 고민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는 나를 꾸짖듯 말했다.
“가람야. 너 너무 불편한 게 전부 눈에 보여. 얼마나 강사님이 당황하셨을지 생각해봤어?”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불편했던 건 강사님이 아니라, 그 곳 자체였는데.
하지만 언니의 눈빛에는 화가 섞여 있었다.
"죄송해요"
그 화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사과를 했다.
그로써 화를 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게 가스라이팅일거라고는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메르스 덕분에 네 자리가 난 거야. 근데 왜 넌 전혀 기뻐하지 않아?”
기뻐해야 한다는 말이 낯설었다.
언니의 기대가 무거웠다.
결국 나는 억지로 웃으며 언니가 들이민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니까 기념이니까 같이 찍자, 가람야.”
억지로 웃는 얼굴. 그 사진 속 나는, 이미 반쯤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언니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저 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 하나가 나를 그들의 세계로 끌어당긴 밧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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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웃음은 선택이 아니라 복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