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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테이블 Aug 09. 2024

제주여행 중에 만난 든든한 여름 레시피

조금은 긴 제주여행을 왔다.


제주 바다가 보이는 새벽 발코니의 창을 열어 두고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어 놓으며 새벽 5시, 낯선 주방을 연다.


깊은 바다로 떠나는 배의 항해, 파도 소리와 재즈 음악이 뒤엉킨 몽환적인 아침을 맞이하는 이 순간은 내가 이곳 여행자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준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내가 여행지에만 오면 새벽을 맞이하며 콩나물을 다듬고 국을 끓인다.


물놀이 후에 제주 사는 친구를 초대해 함께 먹기 위한 집밥 메뉴를 여행을 와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나의 오랜 베프를 위한 집밥을 먹이고 싶은 욕망이 제주의 새벽 공기라는 선물 같은 신비한 감각으로 인도했다.


육수를 내고 문어를 넣은 시원한 김치 콩나물국이 완성되어 갈 때쯤 땡초로 마무리하면 든든한 여름의 레시피 하나가 완성된다.


콩나물을 다듬지 않아도 되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늘 콩나물을 다듬어서 만들어주었던 기억의 잔상으로 인해 콩나물을 하나하나 다듬는 고단한 작업이 이어진다.


여름날의 바닷가 습도를 이기며 남편이 낚싯대를 드리웠다. 세월만 낚는 그의 낚싯대가 새벽의 풍경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쥐치를 잡았다.

처음 맛보는 생선이라 두근거렸고 손질한 쥐치를 소금 간을 한 후 노릇하게 구우니 식감이 쫀득거렸고 쥐치 가시가 몸통에 비해 굵어서 먹기에도 편했다.


고급 어종으로 분류되는 쥐치는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생선 같았다.


오래된 베프의 최애의 음식은 떡볶이었다.

제주 와서 비건 빵을 만들고 비건을 실천하는 그녀는 일부러 먹지 않는 음식이 많다.

가끔은 그런 그녀가 대단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한하는 의지가 안쓰럽기도 하다.


자주 보지 못하고 베프를 위해 육수를 내고 양파와 표고버섯을 잔뜩 넣은 치즈 떡볶이를 만들어주었다.


떡볶이와 함께 먹을 간장베이스의 소라 무침을 함께 만들었다. 양파를 얇게 썰어 찬물에 담가 매운맛을 빼 주고 오이는 씨를 뺀 후 물기를 제거해 주었다.


이 여름 제주 여행에서 가장 제주스럽고 여름스럽던 메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숙소 미니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집에서 챙겨 온 양념장과 주방도구로 친구를 위해 소박한 한 끼를 만들어주고 싶은 그 마음은 강렬했다. 잘 먹어주었던 그녀에게 감사할 뿐이다.


여름의 든든한 음식과 함께 우리는 삶과 추억에 대해 늘 이야기했다. 사람에게 더 단단해지는 친구와 그런 나를 위로하듯 응원하듯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는 그녀에게서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소박한 여행지에서의 레시피와 공기로 인해 더 기억에 남는 삶의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푸릉 바당과 맑은 하늘을 여행 내내 보고 왔다.

제주에서 누렸던 공기의 힘으로 다시 나의 주방에 대한 감사함과 더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정이 생긴 든든한 여행이었다.


긴 여행의 후유증이 끝나면 여름의 홈파티 레시피를 위해 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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