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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테이블 Aug 16. 2024

여름날의 짧은 기억의 조각들

여름의 서쪽,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 나른한 고양이가 된 것처럼 몸이 축 늘어진다.


그럴 때는 어디론가 가고 싶은 여행의 갈망보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책 한 권과 와인 한잔, 소소한 사람들이 머물고 간 추억의 기억에 빠지는 나만의 정신적 파티가 시작된다.



우리 집은 지리적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입지가 조금은 외진 곳이어서 멀리서 홈파티 손님들이 올 때면 늘 숙박을 하게 된다.


홈파티의 다음 날 아침 메뉴는 대부분 된장찌개와 달걀말이, 소소한 반찬들로 만들어준다.


할머니의 밥상 같은 느낌의 레시피가 좋다.



주방에 붉은 꽃이 있다면 분위기가 한층 더 좋아진다.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고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요리하는 즐거움은 나만의 강렬한 카타르시스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고단하고 귀찮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평범하고 지루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 행복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바다에 나가 남편이 소라를 잡아올 때면 나눠 먹고 싶어 진다. 소라를 된장을 푼 물에 푹 삶아 내장을 제거한 후 소라 살만 발라내면 어느 음식에 넣어도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루는 소라 내장을 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내장의 구수함을 느끼고는 싶지만 혹시 모를 배탈이 날까 싶어 소심한 마음에 소라 내장은 제거하게 된다.



주방에 꽃을 꽂으면 몸의 에너지가 성장하는 것 같다.

아무 탈이 없는 순수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는 집의 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느 날, 손님 중 한 분이 우리 집엔 늘 꽃이 있다며 좋아하셨는데 사실은 내 기분과 컨디션이 좋을 때만 꽃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면 꽃이 없는 날이 더 많은 일상이다.



샐러드 요리를 위한 드레싱으로 레몬을 이용하는데 한때는 제주산 레몬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제주산 레몬은 수입산 레몬보다 끝맛에 귤향의 달콤함이 있어서 드레싱의 풍미를 더욱더 깊이 만들어 주었다.



포도 드레싱은 색감자체가 이미 유혹적이어서 파티 드레싱으로 추천하게 된다.


드레싱의 기본 레시피는 넣고 싶은 메인 메뉴와 필수적인 올리브오일, 생레몬즙, 꿀과 소금으로 만들면 다 맛있어지는 마법이 있다.



여름의 상큼함은 바질과 레몬밤의 허브류에서 시작된다. 특히나 각종 요리에 레몬 사탕맛이 나는 레몬밤을 이용한 드레싱 소스나 음식 데코로 올려주면 특별한 음식의 재미나는 포인트가 되어준다.


여름날 주방에서 수경화분에 레몬밤을 키워보시길 바래본다. 그 산뜻한 향기가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데리고 가줄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면서 새로운 홈파티를 계획해 본다. 시원한 음료와 함께 짧은 조각들을 또 흘러 보내는 특별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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