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살롱 클럽을 꿈꾸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 - 특히 주말

by 노마드 김씨

흔적 남길 책들은 다시 열심히 읽고 읽고..


이제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고, 아, 그거 할 수 있고. 조직에서 Specialist라는 것도 지났고 (근데 이 타이틀이 알고 보면 상당히 무거운건데) 그러다보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와 같이 조직의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당신은 어땠나요. 저는 이게 힘든데, 더 좋은 접근 방식이 있을까요. 물어보고 싶고. 나처럼. 아, 이게 안되는건가, 좌절했을 때. 원래 그래요, 그런데 이러면 좀 달라져요. 라고 얘기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스물스물 든다.


방법은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얼굴 가린, 혼자 떠드는 podcast로 시작해야 하나.

이렇게 혼자 주절거리면서 쓰기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그래도 시작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흐지부지 되는 건 내가 진짜 좋아하지 않아서다 하하)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나, 실패 부터 짚어보고 싶다.


모든 계획을 다 짜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난 스타일이었다면,

이제는 해보고, 천천히 고쳐가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 고무적이다. 대견하다.


변화,

무언가를 변화시킨 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모르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무조건 없이 무언가를 한다고 할때, 꼭 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이었지만.

시험이라는 것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 나에게, 언론고시는 또 다른, 고3의 반복이었던것 같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난 모든 시험의 최종에서 낙방했고, '어쩔수' 없이. Corporate world, 외국계 회사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쓴다는, 쓸 수 있다는 것이 숨을 쉴 수 있었기에, 캐나다상공회의소가 그 첫 시작이었다. 그러다 들어간 곳이 제약회사. 매일 아침, 홍보 이사님의 3개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그 분의 밀크티를 타고, 홍보 언니들의 빵셔틀을 하다보니, 3년이 지났다.


그러다, 상당히 강한 캐릭터의 언니를 만났는데, 처음으로, 아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Internal Comms Manager. 내 씨다 일의 번외로 그 일을 '돕고' 싶었고 그래서 조금씩 그 일의 영역에 들어갔다. 그 다음이 기자관리였다. 회사의 명성을 관리한다는 팀이었지만, 그래서 그들도 정치적이었다. 조직이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기본이 예민한 나에게 더욱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준 시간이다.


이렇게 곱씹어보니, 체질 건망증인 나에게도 기억이란게 있구나, 감사하다. 과거를 봐야, 현재 나를 보고, 또 앞으로 나를 고민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정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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