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3. 절벽 위에 핀 꽃

1부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by Hello

혜경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수능을 잘 봤어야 했다

갑자기 웬 수능 타령이냐만은 집을 떠나 지내려면 수능을 잘 봤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혜경이 원하는 데로 그리 쉽게 흘러진 않았다.


수능날은 이상하리만치 문제가 잘 풀렸다.

아침에 시험장에 도착해서 교실을 잘 못 찾아 들어갔다 다시 나온 후유증인지

더 덤덤하게 잘 풀리는 듯했다.

가채점해보고야 알았다.

숙고 없이 덜덜 떨리던 마음으로 풀어재꼈던 문제들은 함정에 족족 빠지고 있었다는 것을..


모의고사보다 수능점수는 몇십 점이

넘게 바닥에 내리꽂았다.

혜경은 한 번만 더 기회를 얻고 싶다고 혜경의 아빠에게 힘겹게 말하고 또 말했다.

방문을 닫고 식음을 전폐해보기도 했다.

돌아온 혜경아빠의 대답은

"한번 실패한 놈은 두 번 해도 또 실패해. 재수한다고 더 좋아지리란 법 없다. 결국 또 실패하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혜경을 타지로 보내기 싫었던 마음 반, 재수 뒷바라지 경제적 어려움 반..

"이게 하나님께서 너한테 허락하신 점수다. 더는 재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


그렇게 가나다군 원서 접수날 유난히도 길치였던 [*길치: 길을 잘 못 찾는 사람]

혜경의 아빠는 갓길에 세워져 있는 112 순찰차에 길을 물었었다.

"여기 최고 교육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돼요?"

"저희를 따라오세요"


그렇게 몇 분을 달렸을까..

순찰차에서 친절한 경찰관이 내리더니

"여기는 무진대학교인데요 여기서 조금 더 직진하셔서 좌회전 하지면 최고 교육대가 나옵니다. 저희는 여기까지만 알려드릴게요. 잘 찾아가세요~"


그런데,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하는 혜경아빠..

사실 혜경의 점수로 최고 교육대에는 무리였다. 내신이 좋았으니 그걸로 어찌해본다고 해도 문을 닫고 들어갈까 말까 한 위태로운 혜경의 점수였다.


"하나님.. 답을 주십시오........... 중략.........."

"혜경아 나 방금 하나님께 응답받았다. 경찰관들이 무진대학교 앞에까지만 데려다준 것은 하나님이 너를 무진대학으로 인도하시려는 거야! 오! 하나님... 이렇게 철저히 혜경이의 앞길을 예비하시다니요!"


"교대에는 원서 넣을 필요도 없다. 무진대학교 사범대로 가라는 거야, 그거야!"


기쁨의 눈물이 차오르는 듯, 환희가 끌어 오르는 듯 혜경의 아빠는 응답받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왜 그랬을까............ 왜 혜경은 늘 거절하지를 못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아니지 혜경아빠의 뜻대로 혜경의 고향의 지방대학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재수는 없었다. 절대로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원비를 벌어보려 했지만

부모동의 없이 휴학하기에도 겁이 났다.

그렇게 혜경은 집을 벗어날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지금 동석과 함께 교회 집회 앞에 서있는 혜경이다.

우리 이렇게 우리끼리 죽도록 이야기해봤자 결국은 답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교회문제는 일단은 좀 접어두고 생각하자, 시간이 가면 해결될지도 모르잖아.."


동석은 당장이라도 혜경의 손을 놓아버릴까 싶었지만, 또 막상 그래지 지는 않았다.

일단은 시간을 두고 "너 임용도 봐야 하고, 나도 국시도 봐야 하고 우리 일단은 교회문제는 좀 그대로 놔두자."


그렇게 혜경도 4학년, 동석도 졸업반이 되었다.

혜경의 머릿속은 그럴수록 죽도록 공부해서 빨리 임용고시 합격해서 집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혜경아빠의 결심은 확고했다. 늘 그랬다.

실패하면 그 길은 하나님이 주신 길이 아닌 것이다.

"임용고시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나는 네가 대학 졸업한 이후로는 십 원짜리 한 장도 보탤 생각이 없다.

이번에 떨어지면 끝! 너 알아서 살아야 된다. 공부하라고 돈 주는 거는 4학년 때까지가 끝이다 이 말이야!"


혜경의 마음속이 요동쳤다

. '이 기회가 마지막....... 떨어지면 끝........'


혜경은 절벽 위 낭떠러지에 핀 꽃과 같았다. 조금만 더 세찬 바람이 불어대면 그 길로 낭떠러지로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과 견딤 속에서 살았다.

동석은 그런 혜경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유복한 가정에서 삼수 끝에 의대에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동석은 늘 여유로웠다. 매사에 여유로웠고 혜경은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나 공부해야 한다고! 난 이번이 마지막이야!"

"오빠....... 나 왜 이렇게 바보 같아, 외운 거 다 까먹은 거 같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거 같아."

"오빠가 내 기분을 알기나 하냐고! 시험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거 같다니까!"

"잘 시간도 부족한데

지금 오빠랑 데이트나 하고 있겠냐고!"


왜 그럴까.......... 힘들수록 투정 부릴 곳은 동석밖에 없었다.


"나 지금 도서관 앞인데 잠깐만 나와봐, 여자친구가 통 만나주질 않으니 이렇게 잠깐이라도 얼굴 봐야지."


툴툴... 삐그덕 대면서도 거울을 보고 얼굴을 만지작, 립밤을 살짝 바르고 오랜만에 동석을 보러 가는 혜경이다.


"백 퍼센트 합격!

너는 늘 나한테 백 퍼센트 합격! 인 사람이야."

동석의 손에는 백합 꽃다발이 한아름 들려있었다. 백합 꽃다발보다도 환히 웃는 동석이 더 좋았다.


"오빠............. 나 꼭 빨리 합격하고

나 진짜 오빠한테 잘할 거야."


그때는 그랬다, 임용고시만 합격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교회도 아빠도 동석도 다 좋아지겠지

그 생각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다.

천만다행으로 혜경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꼭 합격해야겠다는 불안감에서인지 혜경이 선택한 지역은 혜경의 고향보다 더 시골로 시골로 발령이 났지만 다행히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진 않았다.

혜경이 발령 난 시골은 그래도 혜경의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출퇴근이 가능했다.

거기에 이제 동석도 국시에 합격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하고,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것만 같았다.

훨훨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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