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시라고요. 학예사님을 어디로 보내시려고요. 이 물건만 전해 드리면 되는데 누구를 어디로 보내신다고요?"
"아~ 잘 못 들었어요."
2m 간격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고함치듯 말해서 그런 걸까. 못 알아듣는다. 알아듣지 못한 불통상황으로 우리는 웃음이터졌다.
마실 물을 뜨러 간 사이 카운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토시 없어요?"
"토시는 없는데예."
매장에 토시가 있는데 없다고 말하는 아따씨를 향해 물었다.
"아따씨야!손님이 토시가 없냐고 물으신 건가요?"
"아뇨. 꽃씨를 찾으셨어요."
"아~ 그래요. 나는 토시가 없냐는 소리로 들려서 달려왔는데. 꽃씨였군요.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발음이 이상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컨디션에 따라 귀로 입력되는 소리는 그때마다 다른가보다.
정해진 요일에 오기로 한 업체가 오지 않아 아따씨에게 말했다.
"하나 프렌즈 안 오셨죠? 오늘은 그냥 넘어갈 모양입니다."
"예?"
"하나 프렌즈가 안 온다고요."
"뭐라고요? 하남 돼지가 안 온다고요."
"예? 하남 돼지요? 하남 돼지가 아니라 하나 프렌즈요. 우리 거래처요."
"아~ 전 식당이름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배 고프십니까?귀 청소 좀 하셔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남 돼지는 뭐예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하남 돼지를 몰라요? 메이커. 프랜차이즈점 식당인데 맛있어요."
"아~ 역시 그대는 먹거리에 반응하시는군요."
잘 듣고도 잘 못 알아듣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소통하다 생기는 불통의 경우니 웃어넘기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잘 못 알아듣고 말하는 경우 자신이 평소 관심 있던 주제가 나오게 된다. 아따씨 경우엔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먹는 것에 진심이고 먹는 것에 반응하는 그대 덕분에 불통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
내가 문구점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로 했던 말실수는 업체이름을 전달한 때였다. 전화를 받았을 때 들었던 업체명과 실제명칭이 다르니 전달받은 입장에서는 웃긴 일이다. 업체명을 알아듣지 못해 엉뚱하게 전달했으니 불통상황이 생긴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고 놀림도 받았다. 하지만 처음 듣는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엉뚱하지만 그렇게 들리기 때문이다. 통화를 하면서 몇 번씩 물어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들리는 데로 전달하다 바보가 됐던 시간이었다.
지나간 일이고 익숙해진 덕분에 업체명으로 불통상황은 적어졌지만 누군가 하는 말실수는 초짜였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했던 말실수를 아따씨가 하고 있으니 예전 일들이 생각나면서 되짚어 보게 된다. 알고 보면 초짜들이 하는 말실수는 익숙하지 않은 자의 고군분투이자 일하는 용어들과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매장에서 생기는 불통상황을 즐기고 있다. 누구라도 말실수를 하며 되묻는 상황을 만들게 되면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다. 조용히 손님을 보내드리고 두 손과 두 발을 모으며 허리 숙여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