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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하며 반은 쥐어 터지고 반은 때린단다.

운동으로 흘린 땀, 부상으로 흘린 피

by 글쓰엄

얼마 전 감기몸살로 아팠다는 큰아들의 전화.

"엄마. 나 복싱학원 다시 다녀요."

반가운 소리였다. 그동안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걸로 보아 컨디션이 괜찮아진 모양이다.


자취방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복싱학원을 발견한 것은 일 년 전이다. 고등학교 때 복싱학원을 등록하고 몇 개월 다닌 기억이 있어 취미 삼아 운동을 권했다. 다행히 관심을 보였고 두 달간 복싱학원을 다니게 됐다. 학기가 시작되고 띄엄띄엄 다니더니 복싱학원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흥미를 잃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니 흐뭇했다.


아들과 떨어져 지내며 잔소리처럼 하는 말이 있다.

힘들면 무조건 운동을 해라.

힘들면 무조건 책을 읽어라.

살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힘든 경우가 있기에 방황하지 말고 스스로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는 행동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있으니 내 말을 들어준 것 같아 고마웠다.


복싱의 기초인 스텝을 익히고 펀치를 날리며 운동에 재미를 느낀다던 어느 날. 카톡으로 사진이 왔다. 면장갑 위로 번진 빨간색이 피임을 인지하고 급하게 전화를 했다.

"웬 피야?"

"샌드백 치다가 피가 났어요."

"얼마나 세게 쳤길래 피가 났어? 글러브 없어?"

"글러브 끼고 했어요. 요즘 주먹에 힘이 늘면서 관장님도 소리가 달라졌다고 하시던데 너무 열심히 해서 피가 난 것 같아요."

"아이고 그 펀치에 맞으면 턱이 날아가겠어요."


특별히 부딪혀서 아픈 게 아니라 운동하다 생긴 부상정도라 안심이 됐다. 피가 날 정도로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있으니 복싱학원은 오래 다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파트너와 스파링을 하는 수준까지 오르며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서로 싸우는 듯한 운동이 뭐가 좋은지 싶다.

스파링을 하면서도 반은 쥐어 터지고 반은 때리면서 복싱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많이 맞아봐야 복싱실력도 느는 것이니 기분 나쁘지 않다지만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쥐어 터지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는데 그것이 배움이 된다니 내 기준에선 기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스파링 하다 입술에 피가 난 적도 있다고 했다.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 피맛을 봤다는데 이 정도면 운동이 맞나 싶다. 괜히 복싱을 추천했나 하는 후회도 들지만 펀치를 날리며 마음속 분노를 때리고 있으면 개운함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단다.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린 상쾌한 기분을 모르진 않지만 너무 과격한 운동이 아닐까란 걱정도 든다.


이젠 관장님의 추천으로 생활인 대회에 나갈까란 생각을 하며 내 의견을 물어본 적도 있었다. 속으론 심장에 지진이 나며 마음에 쿵 소리를 냈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경험과 목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말리진 않았다. 오히려 관장님이 실력도 없는 사람에게 대회를 추천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아들의 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어찌 되었든 본인이 좋다니 해줄 말이 없다. 부디 부상당하지 않고 오는 만큼 되돌려 주는 펀치가 되기를 바랄 수밖에. 반은 맞아도 반은 펀치를 날린다니. 그 말로 지진 났던 심장을 진정시키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다독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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