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선택한 공부
아이들은 각자의 원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3학점 때문에 졸업하지 못한 큰아들과 이제 대학에 입학한 작은 아들은 같은 대학교를 다니게 됐다. 선택한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라서 안심이 된다.
아이들의 바람으로 각자의 공간을 마련하고 같은 건물에 다른 층의 방을 구했다. 큰아들은 1층, 작은 아들은 3층. 이사할 때도 편했고 아이들의 생활동선이 비슷해 방문하기도 수월했다.
짐을 싸고 준비하면서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보낼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2년 간격으로 시작된 신체적 떨어짐은 아이들을 보낸 후와 보내기 전의 슬픈 감정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큰아이는 정신없이 준비하느라 슬플 겨를이 없었다. 어떤 게 슬픈 건지도 모른 채 준비하다 아이와 헤어지면 그제야 눈물이 났다. 곁에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잡고 있는 운전대에 하소연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은 아들이 집에 있어 괜찮다는 것. 아직은 혼자가 아니었다.
작은 아이는 준비할 때부터 감정이 올라왔다. 막내라 그런지 물건을 살 때부터 서운한 마음이 한그득이었다. 급기야 일주일 전 퇴근길 차 안에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런데 막상 헤어질 땐 괜찮았다. 오히려 내가 살던 집으로 빨리 오고 싶었다. 완전히 혼자인데도 말이다.
두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은 슬프지 않았다. 운전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후련한 마음과 이성적인 정신이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몫이고, 지금부터는 내 몫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차가워지니 이런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역시 난 튼튼한 엄마인 것이다.
두 아들과 헤어지는 슬픔은 보낸 후와 보내기 전에 눈물로 정리했다. 아직도 마음은 25살인데 현실은 두 아이의 엄마라니 믿기지 않는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나 꼽아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 빈 둥지 증후군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갱년기 증상이 나오면 그것과 싸워야 하는 나이가 됐음을 실감한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늘어나는 흰머리와 달라진 피부를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일이 있고 집에서 공부하는 취미생활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보내고 취미로 선택한 공부로 빈 둥지의 서운함과 갱년기를 날릴 수 있다면 좋겠다. 하기 싫은 공부도 두 증상 앞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바뀌니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는 대학생이다.
나이 든 대학생.
제 시기에 졸업 못한 대학생.
새싹 같은 새내기 대학생.
진짜 각자의 몫이 생겼다.
경희대 사이버대학 미디어 문예 창작과 강의의 첫 송출은 3월 3일 오후 12시 이후. 하루 한 시간씩 공부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짜인지 궁금하다. 또 일을 하면서 해볼 만한지의 여부도 알고 싶다.
지금부터는 내 몫을 챙겨야 할 때. 이것만 신경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