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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17. 2023

꼴찌여도 괜찮아

꼴찌도 좋은 경험이다.

"엄마~~~"

고등학교 2학년 작은 아들의 잠꼬대를 들었다. 아들이 부르기에 대답을 해주었지만 말이 없길래 방을 열고 보니 자고 있었다.


'자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니? 귀여운 것!'


고등학생인 작은 아들의 관심사는 게임방송과 편집이다. 덕분에 집돌이가 되어가지만 무엇이라도 열심히 한다는 사실에 반대하지 않 지켜보고 있다.


큰아이와 달리 둘째의 외모는 쌍꺼풀 없는 큰 눈에 작은 얼굴의 소유자로 남들이 보기에는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정의롭고 속마음이 얼굴표정 그대로 드러나는  바른생활의 사나이다. 다만 공부를 못하고 안 할 뿐이다.


어릴 때 사주었던 '꼴찌여도 괜찮아'란 책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은 이 책을 좋아했다. 공부는 못해도 용서할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라는 나의 생각으로 강제로 책을 읽히던 시절이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던 녀석이었지만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책만 몇 번을 읽었다. 책의 구절을 통으로 외우는 경우도 있어서 칭찬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는 달리기를 잘해서 축구부에서 활동했고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학생이었다. 문구점에서 일을 했기에 선생님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선생님께서 에게 자주 해 주셨던 말씀이셨다.


초등학교 4학년때가 생각난다. 내 꿈에서 둘째 아이가 땅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꿈이었다. 꿈이 너무 생각나서 아들에게 물었다.


"요즘 학교에서 힘든 일 있어?"

"사실은 선생님한테 혼나서 너무 힘들어요"


아들은 울면서 선생님께 혼난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속상해했고 버거워했다. 엄마인 내가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을 필요를 느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선생님께 불량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며 그에 대한 분노로 아이의 인생이 삐뚤어질 것 같았다. 마로서도 너무 속상했지만 이성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선생님을 속상하게 해 드린 것 같은데요. 제가 선생님과 만나서 그 부분에 대해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나는 선생님과 상담시간을 정했고 학교로 방문하게 되었다. 남자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고 강하게 지도하려 했었다. 둘째도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자기의 방어기제는 있지 않던가. 나는 아이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제 아이가 축구부활동으로 수업시간에 늦은 것은 잘못된 행동으로 제가 집에서 잘 지도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만으로 아이를 평가하지 마시고 잘못된 행동은 좋게 타일러 주십시오. 학교에서 좋지 못한 언행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시고요. 제가 알아야 우리 아이를  지도할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닌다는 말에 선생님께서는 자신도 성당출신이라며 반가워해주셨고 나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좋은 대화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참 좋은 분이시군요"


선생님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으로 나는 아들을 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일로 작은 아들은 엄마라는 존재를 든든해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고 또 해결해 주었으니 나는 작은 아들에게 슈퍼우먼이었다.


나 역시 그때를 생각하면 내 꿈에 감사하다. 어린아이가 혼자 받기에는 부당한 프레임이었을 텐데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인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시선으로 '너는 불량학생이 될 거야'라는 프레임은 아이의 미래에 너무 가혹하다. 물론 학교생활에서 아이의 모습은 집에서와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꼭 양쪽의 상황을 파악하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결정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올바른 자세일 거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말썽 없이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이 아니겠는가. 다만 공부에서는 꼴찌여도 괜찮지만 다른 마음의 자세에서 만큼은 일등이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이 크기에 아이의 마음자세만큼은 신경을 쓰고 있고 공부에서는 꼴찌겠지만 사회에서는 일등이 될 거란 믿음으로 살아간다.


아들이라고 좋은 말만 해주는 엄마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온 날 수학과 영어의 점수가 한자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아들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너는 이 성적이 부끄럽거나 속상하지 않아?"

"아뇨. 나는 괜찮은데요'"

"그럼 됐다. 네가 괜찮다면 엄마도 괜찮다."

"그런데 사회에서 얼마나 잘하려고 그래? 넌 진짜 사회에서 일등 할 거다."


이런 식으로 위로하는 나를 보며 주변인들은 내가 더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런 성적을 보고도 긍정적인 내가 나도 신기하지만 아이의 미래가 현재의 공부성적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럴수록 사회에서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일찍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발견했지만 경험해봐야 하고 경험하고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번 반복할 수도 있지만 찾으면 반드시 나온다.


꼴찌도 하기 힘든 경험이다. 꼴찌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바닥을 경험한 것이기에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우리 아들들과 나는 공유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함 마음과 유연한 멘탈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일등이 될 거라 했지만 꼭 일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르고 정직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넌 훌륭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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